농진청 ‘AI 이삭이 2.0’, 병해충 사진 진단 92%…자체 비교서 GPT 앞서
비료 처방·기상재해 경보 등 17개 시스템 연결하고 사투리 음성 질문 지원 올해 1~9월 질문 10만 건, 지난해 말까지 누적의 41배
병든 잎을 찍어 범용 생성형 AI에 무슨 병인지 물으면 틀린 답이 적잖게 돌아온다. 농촌진흥청이 병해충 사진을 보여주고 병명을 맞히게 한 자체 비교에서 GPT-5.6의 정확도는 46.5%로 두 번에 한 번꼴로 틀렸고, GPT-6 Astra도 77%에 그쳤다. 같은 시험에서 농진청 인공지능(AI) 영농상담 서비스 ‘AI 이삭이’는 92%를 맞혔다.
농진청은 지난달 30일 ‘AI 이삭이 2.0’을 내놓고 서비스 성격을 ‘영농상담 챗봇’에서 진단과 처방까지 하는 ‘영농비서 AI 에이전트’로 바꿨다. 농진청 신재훈 농업지능데이터팀장은 “챗GPT 같은 AI도 공개 데이터를 검색해 답을 잘하지만 농진청 전문가가 하는 병해충 진단이나 비료 처방, 기상 예측은 못 한다”며 “이삭이 2.0은 별도 시스템으로 갖고 있던 이런 기능을 이삭이가 불러와 답하도록 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농업인 반응은 숫자로 나타난다. 올해 1~9월 이삭이에 들어온 질문은 10만 4702건으로, 지난해 12월 대비 5배 이상 늘었다. 2월(6174건)을 빼고 매달 1만 건을 웃돌았고, 2.0 출시를 앞둔 9월에는 1만 4163건으로 가장 많았다. 누적 다운로드는 이달 10일 기준 2만 96건, 2.0 출시 뒤 새 버전으로 업데이트한 이용자는 6839명이다.
17개 정보시스템, 대화창 하나로
농진청은 그동안 토양 정보,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농약등록정보 같은 서비스를 시스템별로 따로 운영해 왔다. 이삭이 2.0은 이를 이삭이와의 대화 안에서 불러 쓸 수 있게 연결하는 작업이다. 9월 병해충 진단과 비료 처방을 먼저 붙였고,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와 병해충 예찰정보, 법령정보, 토양특성·검정정보, 과수 생육품질정보 등은 연말까지 차례로 연결해 17개 시스템 36종 서비스로 늘린다.
신 팀장은 “토양진단을 하려면 흙토람(농진청 토양환경정보시스템)에 들어가 이것저것 선택해야 하고, 조기경보를 받으려면 서비스를 따로 깔아 접속해야 해 농업인에게는 어렵다”며 “이런 것들을 모아 이삭이 하나로 해결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비료 처방은 253개 작물을 대상으로 필지별 토양검정 결과에 맞춰 적정 비료량을 추천한다. 검정 결과가 없으면 작물별 표준 사용량을 먼저 안내하고, 정확한 처방은 농업기술센터 토양검정 뒤 받도록 이끈다.
병해충 사진 30만 장, 전문가가 하나하나 판별
병해충 진단은 작물 사진을 찍어 올리면 병명과 방제 정보를 알려주는 기능이다. 현재 25개 작물의 병해충 190종(병 94종·해충 96종)을 가려낸다. 이 25개 작물은 국내 재배면적의 74.1%를 차지한다. 농진청은 2029년까지 대상을 60개 작물, 재배면적 기준 93.0%로 넓힐 계획이다.
정확도를 가른 것은 학습 데이터다. 범용 AI가 인터넷에 공개된 이미지와 글을 폭넓게 학습하는 것과 달리, 이삭이는 농진청 병해충 전문가들이 병명을 한 장씩 판별한 사진 30만 장으로 학습했다. 신 팀장은 “이삭이는 우리 병해충 전문가들이 30만 장을 모두 무슨 병인지 판별해 학습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사투리 음성·큰 글씨로 고령 농업인 배려
고령 농업인을 위한 장치도 더했다. 화면을 누르지 않고 말로 묻고 답을 듣는 음성비서 기능이다. 음성인식은 네이버 클로바 스피치를 쓰며, 농진청이 밝힌 사투리 인식 정확도는 99.2%다. 농업인이 경상도 사투리로 “풀이 천지삐까리네”라고 말하면 “풀이 너무 많아요”로 알아듣는 식이다.
이삭이 1.0 때 작다는 지적을 받은 글씨도 키웠고, 영농 활동을 기록하고 조회하는 영농일지 기능도 새로 넣었다. 신 팀장은 “어르신들은 휴대전화로 타자를 거의 안 치시고 대부분 받아쓰기(음성 입력) 기능을 쓰신다”며 “기존 정보시스템은 워낙 어려운데 말로 하면 알아듣고 답해 주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답변 근거는 농진청 검증 자료로만
생성형 AI의 고질병인 ‘환각(그럴듯한 오답)’은 답변 근거를 좁히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삭이는 농진청이 발간한 농업기술자료 56만 쪽 안에서 질문과 관련된 문서를 찾아 요약해 답하고, 외부 자료는 쓰지 않는다. 답변 아래에는 ‘농업기술길잡이 사과 335쪽’처럼 근거 문서와 쪽수를 함께 표시해 어느 자료에서 나온 답인지 확인할 수 있다.
신 팀장은 “등록된 문서를 뒤져 관련 문서를 뽑고 그걸 요약해 답하는 구조라 원칙적으로 환각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며 “흙토람이나 기상정보처럼 이미 검증된 정보를 활용해 환각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다만 근거를 좁혀도 질문과 맞지 않는 문서를 고르거나 요약 과정에서 내용이 어긋나는 오류까지 없앨 수는 없다. 농진청은 지난달 1일 품질보증단을 꾸려 답변 품질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전담 5명과 협조 인력 25명 등 30명이 농업 전문가가 작성한 정답지 300건과 이삭이 답변을 비교한다. 농업인 질의응답을 분석해 참조 문서 1000여 건도 추가로 등록했다.
전북 고창 마카 농가 “있는 정보만 갖고 말하니…믿음이 간다”
현장 반응도 달라지고 있다. 전북 고창에서 마카와 초석잠을 재배하는 김일수 한국정보화농업인중앙연합회 AI 교육사업단장은 1.0 출시 때부터 이삭이를 써 왔다.
그는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 같은 범용 AI도 일찍부터 썼지만 “폭넓게 답은 해주는데 전문적인 부분은 부족했다”고 했다. 이삭이 1.0도 처음에는 아쉬웠다. 마카 자료가 적다 보니 필요한 답 대신 다른 정보가 돌아오기도 했다. 김 단장은 “병해충 정보도 내 작목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데, 처음에는 농림축산식품부나 농진청 소식지를 받아보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삭이 2.0에서는 달라졌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9월에 심어 이듬해 3~4월에 거두는 겨울 작물인 마카를 물으면 흰가루병 같은 병해충 정보와 재배 기간에 맞는 정보가 나온다. 그는 “이삭이가 갖고 있는 자료를 근거로 보여주니 확실하다”며 “있는 정보만 갖고 말하니 AI와 달리 환각 증상이 없어 믿음이 간다”고 강조했다. 사투리를 심하게 써도 상당 부분 알아들을 만큼 개선됐다고 했다.
개선할 점도 짚었다. 김 단장은 “밭에서는 검색할 상황이 아닌데 음성 입력 마이크 버튼이 작아 장갑을 끼고 누르기 불편하다”며 “말로 더 많이 묻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정보를 가르쳐 주는 단계지만, 앞으로는 농업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업계획이나 보조금 신청까지 돕는 1대1 서비스로 발전해야 한다”며 “농업인들도 더 관심을 갖고 써 봐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사 550여 명 양성…민간 농업 AI와도 연계
농진청은 교육으로 이용자를 넓힐 계획이다. 오는 26일 지도직 강사 양성과정을 열어 시군 농업기술센터 현장 강사 433명을 기른다. 이들은 농업인대학(1만 명), 농기계교육(3만 명), 새해농업인실용교육(25만 명)에서 이삭이 사용법을 가르친다.
농업인 강사도 육성한다. 지난 8월 업무협약을 맺은 한국정보화농업인중앙연합회 회원 120명이 대상이다. 이달 6~7일 1차 과정을 마쳤고 내년 1월 2차 과정을 연다. 연말까지는 대동 ‘AI 대동이’, 농협 ‘NH오늘농사’,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농업ON’, 팜한농 ‘엑사원팜’ 등 공공·민간 서비스와도 연계한다.
11월에는 법령정보 검색 기능이 추가되고, 내년에는 경영진단 고도화와 웹 검색 기능을 담은 3.0 버전이 나온다. AI 이삭이는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 ‘AI 민주정부 실현 30대 핵심과제’에 선정됐다. 신 팀장은 “사용자가 만족할 때까지 계속 업데이트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