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낫 대신 콤바인으로 거두는 팥…국립식량과학원, 아라리·홍미인 이어 너울·여울 2027년 보급
주영광 연구사·이석기 연구관이 짚은 과제는 착협고·동시 성숙 수확 노동 95% 줄이는 직립형 품종…현장은 억대 콤바인값에 망설여
AI브리핑
국립식량과학원은 팥 수확 기계화와 국산 팥 자급률 향상을 위해 기계수확용 품종을 개발하고, 2025년 육성한 ‘너울’과 ‘여울’을 2027년 주산지 중심 3개 지역에 5ha씩 보급할 계획이다. 콤바인 수확은 10a당 수확 노동시간을 인력 수확 17.44시간에서 0.86시간으로 줄이지만, 착협고·동시 성숙성, 장비값과 작은 재배 규모가 과제로 남아 있다.
충남 공주에서 팥 약 10ha(3만 평)를 재배하는 김대규 청춘팥작목반 대표는 수확철이면 낫을 든다. 베어 놓은 팥을 비가 오지 않으면 3~4일 말린 뒤 탈곡기를 들고 가 턴다. 3만 평을 거두는 데 일주일가량 걸리고, 그동안 계절근로자 4~6명을 부른다. 청년 농업인 24명이 모인 작목반 전체 재배면적은 약 23ha(7만여 평)에 이른다.
같은 일을 콤바인이 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이 2015년 분석한 10a(1000㎡)당 수확 노동시간은 낫으로 베어 말린 뒤 탈곡하는 인력 수확이 17.44시간, 콤바인 수확이 0.86시간이다. 수확 노동시간을 95% 줄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국내 팥밭 대부분에서는 여전히 낫을 든다. 국립식량과학원에 따르면 국산 팥 자급률은 20% 안팎에 머문다. 여기에 농촌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이 겹치면서 수확 기계화는 국산 팥 산업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이 됐다.
국립식량과학원은 지난 15일 충남 공주시에서 ‘팥 신품종 기계 수확 현장 연시회’를 열고 기계 수확용 품종 ‘홍미인’을 콤바인으로 거두는 모습을 공개했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이 연시회를 준비한 국립식량과학원 중북부작물연구센터 주영광 연구사와 이석기 연구관을 만나 팥 기계화가 어디까지 왔고 무엇이 남았는지 들었다. 연시회에 참여한 농가의 이야기도 함께 들었다.
낫 수확 10a에 17시간…콤바인 쓰면 노동 90% 줄고 소득 50% 늘어
기계화의 효과는 수확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2021년 농촌지도사업 시행지침에 실린 국립식량과학원 분석(2015년)을 보면, 10a당 전체 노동시간은 인력 점뿌림·인력 수확 25.66시간에서 줄뿌림·콤바인 수확 2.60시간으로 23.06시간 줄었다. 수확(11.78시간)과 탈곡(5.66시간)에 들던 17.44시간이 콤바인 수확 0.86시간으로 대체된 영향이 컸다. 같은 자료에서 10a당 인건비는 27만 9000원에서 2만 8300원으로 줄었고, 소득은 105만 8000원에서 159만 5000원으로 50% 늘었다.
생산비를 낮춰야 하는 이유는 가격에서도 드러난다. 연구진이 업계에서 들은 바에 따르면 최근 생산 감소로 산지에서 가공업체로 넘어가는 팥 가격은 kg당 1만 5000~1만 6000원까지 올랐다. 업계가 제품화에 적정하다고 보는 kg당 1만 원 선과 괴리가 크다. 수입산과의 경쟁도 과제다. 주 연구사는 “소비자들이 전통 작물로서 국산을 선호하고, 업체들도 중국산보다 맛과 향이 낫다고 말한다”면서도 “수입산 품질도 좋아지고 있어 국산 품종도 계속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러지지 않는 아라리·홍다·홍미인, 콤바인 수확 길 열어
두 연구자는 팥 기계화의 출발점으로 2011년 육성된 ‘아라리’를 꼽았다. 그전까지 주로 재배된 ‘충주팥’과 재래종은 줄기가 계속 자라는 덩굴성이어서 쉽게 쓰러졌다.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이 연구관은 “지금 보급 품종은 덩굴지지 않고 직립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변화”라며 “그러면서 10a당 수량도 150kg에서 200kg 수준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식량과학원에 따르면 현재 국내 팥 재배의 약 60%는 아라리다. 15%가량은 농가가 직접 종자를 받아 쓰는 충주팥이 차지한다. 2017년 나온 ‘홍다’와 2020년 나온 ‘홍미인’은 한국농업기술진흥원(농진원)을 통해 보급되면서 점유율이 10%를 넘어섰다.
품종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아라리는 어두운 적색에 앙금 수율이 높아 앙금용이다. 홍다는 100립중 14.1g의 소립종으로 팥차·통팥용이다. 홍미인은 100립중 20.5g의 대립종으로 가공하면 밝은 적색을 띠어 통팥용에 맞다. 이번 연시회에서 홍미인을 시연한 이유에 대해 주 연구사는 “알이 굵고 밝은 적색이어서 업체 선호도가 상대적으로 높다”며 “공주 지역 떡집에서 외형이 우수한 품종을 원했다”고 설명했다.
품종과 함께 재배 방식이 손실을 가른다. 같은 시행지침 자료에서 보통형 콤바인으로 수확했을 때 줄뿌림 재배의 예취부 손실률은 3.39%로, 높은이랑 재배(12.23%)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예취 높이도 줄뿌림이 6.9cm로 높은이랑(10.5cm)보다 낮았다. 연구진이 권장하는 방식은 이렇다. 트랙터 부착 줄뿌림 파종기로 150cm 너비의 넓은 두둑을 만든다. 이랑 너비 40cm, 포기 사이 15cm로 두 알씩 5cm 깊이에 뿌린다. 2016년 강원도농업기술원 시험포장(춘천)에서 아라리를 범용 콤바인으로 거둔 실증에서도 줄뿌림 재배의 예취·배진 손실률은 4.61%로 높은이랑 점뿌림(5.70%)보다 낮았다.
수확 시기도 중요하다. 주 연구사는 “팥은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잘 마른 상태에서 작업해야 막힘 없이 수확할 수 있다”며 “덜 익었을 때 들어가면 콤바인이 가다가 멈추는 경우가 있어 숙기를 잘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번 공주 연시회에서는 손실이 거의 없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시연을 지켜본 김 대표는 “홍미인이 너무 좋더라”며 재배를 계속 늘릴 생각이라고 했다. 손실에 대해서도 “일부 흘리긴 했지만 탈곡기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며 “말려서 털면 탈곡기를 약하게 돌려도 튀고 흘린다”고 말했다.
착협고·동시 성숙은 숙제…장비값·재배 규모도 걸림돌
그러나 연구진에 따르면 콤바인으로 직접 수확하는 곳은 일부 지역의 대규모 영농법인 정도다. 재배 규모가 작은 대부분의 농가는 낫으로 벤 팥을 콤바인에 넣어 탈곡만 한다. 결국 베는 일은 사람 손에 남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품종에 남은 과제부터 짚었다. 주 연구사는 ‘착협고’, 즉 지면에서 가장 아래 꼬투리까지의 높이를 들었다. 그는 “꼬투리 하단부가 지면에서 어느 정도 높이에 있어야 콤바인 수확 때 걸리지 않는다”며 “최소 5cm만 균일해도 숙련자는 수확할 수 있지만, 누구나 손실 없이 하려면 10~15cm는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가로서는 소득이 우선이다 보니, 꼬투리가 콤바인에 걸려 상품성이 떨어질 위험을 지느니 낫으로 베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주 연구사는 “착협 위치를 높인 것은 아직 계통 수준에서 연구하는 단계”라며 “착협 위치의 변동성이 커서 균일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지만 몇 년 안에 성과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숙제는 ‘동시 성숙성’이다. 팥은 아래쪽 꼬투리부터 차례로 익어 줄기와 꼬투리가 한꺼번에 여물지 않는다. 주 연구사는 “동시에 익는 형질은 지금까지 개발한 품종에서 덜 개선된 부분”이라고 했다.
품종 밖의 장벽도 있다. 두 연구자는 기계화를 가로막는 것이 기술보다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필요한 기계는 이미 콩과 함께 쓸 수 있는 형태로 개발돼 있다. 범용 콤바인도 선별용 채만 바꾸면 콩·팥·녹두에 함께 쓸 수 있고, 논콩 사업을 거치며 상당히 보급됐다. 문제는 농가나 조합 단위로 장비를 갖출 만큼 재배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벽도 장비값이다. 김 대표는 콤바인을 활용해 팥 수확을 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했지만 대당 1억 5000만~2억 원에 달하는 콤바인 기계 가격으로는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나 같은 청년농에게 기계 보조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너무 제한적”이라며, 2027년에 콤바인으로 수확할 지에 대해 2026년산 팥의 판매에 따른 소득과 지출 규모 등을 따져 본 뒤 정하겠다고 말했다.
연구와 장비 기반도 넉넉하지 않다. 이 연구관은 “팥의 전 과정 기계화를 위한 기술개발이 필요한데, 팥 품종을 만드는 인력은 3명뿐이어서 연구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기술센터가 임대사업을 많이 하지만 팥에 맞는 장비를 제대로 갖춘 곳은 많지 않다”며 “수확 후 정선과 건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농가가 훨씬 쉽게 원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라리보다 15% 더 거두는 너울, 저항성 전분 2.5배 여울
남은 과제를 풀 다음 주자로는 2025년 육성한 ‘너울’과 ‘여울’이 꼽힌다.
너울은 10a당 247kg으로 아라리(214kg)보다 15% 많이 거두고, 포기당 꼬투리 수도 33개로 22% 많다. 주 연구사는 “앙금용 업체들이 암적색을 선호해 아라리 재배가 60%를 넘는다”며 “아라리를 오래 재배하면서 수량과 성능이 떨어지는 만큼, 색은 그대로 두고 수량을 늘린 품종으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여울은 조생종인 홍다를 대체할 품종이다. 밝은 적색에 10a당 236kg으로 아라리보다 10% 많다. 주 연구사는 “여울은 기능성에 초점을 맞춰 저항성 전분 함량을 15%로 아라리보다 2.5배 높였다”고 소개했다.
식량과학원은 2027년 신기술보급 시범사업을 통해 두 품종을 주산지 중심 3개 지역에 5ha씩 보급할 계획이며, 대상 지역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현장 시연도 이어진다. 이 연구관은 “국산 팥을 써 온 황남빵으로 유명한 경주에서도 농업기술센터가 가공 연계에 관심이 많아 너울 기계 수확 연시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온 피하는 재배법 2027년 정립…고온 적응 품종도 개발
기후변화에 대응할 품종 개발도 과제다. 이 연구관은 “2023년과 2024년 고온으로 팥이 피해를 입으면서 연구에도 어려움이 컸다”며 “예상치 못한 고온과 기후변화가 연구 현장에도, 농가에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단기적으로 파종 시기를 조절해 고온을 피하는 재배법을 2027년까지 정립할 계획이다. 어느 생육 시점에 고온을 만나면 불임이 생기는지도 분석하고 있다. 주 연구사는 이를 토대로 유전자원을 선별해 고온 적응성이 높은 품종을 단계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이 연구관은 “팥은 아직 착협 위치처럼 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고, 수량을 늘리는 연구도 더 하고 싶다”며 “유전체 분석 등 다양한 연구를 접목해 내병성을 강화하고, 세대 단축으로 육종 기간을 줄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급률이 20% 정도에 그치는 만큼 신품종을 개발해 종자를 확산하는 것이 첫 목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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