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럽 시장의 한국 농식품 ② PPWR에서 잔류농약까지, 서류가 판로를 가른다
PPWR 시행 한 달…“품질이 좋아도 포장 때문에 상담이 중단될 수 있다” 다층필름·알루미늄 파우치 쓰는 가공 김·김치·장류, 2026년 상반기 대EU 수출 5552만 달러 지자체 첫 유럽 현지 PPWR 대응지원센터 가동, 아마존 44개사·상설 판매장 64개사 지원 대상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기철 유럽사무소장, 규제 충격 1순위로 잔류농약 꼽아
〈편집자주〉
한국농업기술신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권역에서 2012년부터 한국 기업의 유럽 진출을 지원해 온 해외 필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기철 유럽사무소장과 함께 유럽 시장에 선 한국 농식품의 현주소를 두 차례에 걸쳐 짚는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수출 통계에 드러난 품목별 격차와 재주문의 문제를 다뤘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2026년 본격화한 EU 규제 장벽과 대응 실무를 다룬다. 두 편의 기획에 이어 김 소장의 서면 인터뷰를 싣는다.
8월 12일 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일반 적용에 들어갔다. EU 산림전용방지규정(EUDR)은 12월 30일 중대형 사업자와 기존 EU 목재규정 적용 대상 영세·소기업부터 적용되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2026년 1월부터 확정 단계에 들어섰다. 한국 농식품이 유럽 매대에 오르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이 한꺼번에 높아지고 있다.
부담이 큰 쪽은 산소와 수분을 막아야 하는 품목이다. 김과 김치, 장류(고추장·간장·된장)는 맛과 색, 향, 유통기한이 차단 성능에 걸려 있어 다층필름이나 알루미늄 파우치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가공 김과 김치, 장류 세 품목의 2026년 상반기 대EU(영국 포함) 수출액은 5552만 달러로, 전체 대EU 농식품 수출의 8.3%를 차지한다. 2025년 연간으로는 1억 710만 달러였다.
포장 규제가 곧바로 이들 제품을 막아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활용성 의무가 단계적으로 강화되는 구조여서, 지금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2030년 이후의 시장 접근성이 갈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기철 유럽사무소장은 한국농업기술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PPWR이 적용됐다고 다층필름이나 알루미늄 파우치를 즉시 일괄 교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규정은 8월 12일부터 일반 적용됐지만 재활용성 관련 의무는 단계적으로 강화된다”고 말했다.
PPWR 재활용성, 2028년 1월까지 세부 기준·원칙적으로 2030년 A·B·C 등급 의무
김 소장의 설명을 따라가면 일정은 이렇다. EU 집행위원회가 2028년 1월 1일까지 재활용 설계 세부 기준을 마련하고, 원칙적으로 2030년부터는 재활용성 A·B·C 등급을 충족한 포장만 출시할 수 있다. 2035년부터는 실제로 대규모 재활용이 이뤄지고 있는지도 평가하며, 2038년부터는 C등급 포장마저 시장 출시가 제한된다. 다만 2030년과 2035년 적용 시점은 관련 위임법령과 시행법령의 발효 시기에 따라 늦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 김 소장은 포장재 교체보다 진단이 먼저라고 했다. 그는 “각 포장의 층 구조와 재질·중량, 잉크·접착제, 내용물 보호기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다층 구조 자체가 곧바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재질이 쉽게 분리되지 않거나 접착제와 코팅이 재활용 공정을 방해하면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순서도 제시했다. 불필요한 포장과 과도한 면적·중량을 먼저 줄이고, 차단 성능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서 단일 재질 폴리에틸렌(PE)·폴리프로필렌(PP) 계열이나 재활용 친화적인 고차단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라는 것이다.
재활용성만 좇다 품질을 잃는 역효과도 경고했다. 김 소장은 “김치와 장류, 건해조류는 산소와 수분 차단 성능이 맛과 색, 향, 유통기한을 좌우하기 때문에 재활용성만 보고 포장을 바꾸면 식품 변질이나 폐기 증가라는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포장 변경 전후의 산소·수분 투과율, 실링 강도, 식품 접촉 적합성, 운송 안정성 및 실제 유통기한을 함께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에 전 제품을 바꾸기보다 대표 제품부터 대체 소재를 시험하고 결과를 확인한 뒤 확대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조언이다.
까르푸·리들, 법 시행 전부터 자체 포장 기준 적용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법 시행보다 먼저 왔다. 유럽 대형 유통기업들이 자체 포장 기준을 공급업체에 적용해 왔기 때문이다.
김 소장에 따르면 까르푸는 과대포장 감축과 리필·재사용 확대를 추진하면서 2030년까지 자체 브랜드 일회용 포장의 버진 플라스틱을 1만 5000톤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리들과 카우프란트를 운영하는 슈바르츠그룹도 2025 회계연도 기준 자체 브랜드 1차 포장과 플라스틱 운송 보조제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2017년 대비 36% 줄이고, 자체 브랜드 플라스틱 1차 포장의 평균 재생 원료 비중을 26%까지 높였다고 밝혔다.
그 결과 준비 정도에 따라 상담 결과가 달라진다는 게 김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실제 차이는 이제 친환경 이미지를 갖췄느냐가 아니라, 바이어 상담이 바로 발주로 이어지느냐 아니면 포장 개선 과제로 되돌아오느냐에서 나타난다”며 “이제 지속 가능한 포장은 기업의 선택적 홍보 요소가 아니라 유통업체의 구매 기준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리 준비한 기업은 바이어가 불필요한 포장 제거나 단일 재질 전환, 재생 원료 사용 비율을 물었을 때 대체 사양과 견적, 샘플을 바로 내놓는다. 포장재 사용량 감축은 원자재비와 운송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분담금 부담을 낮추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실제 비용은 포장 구조와 국가별 분담금 체계, 소재 전환 및 시험 비용에 따라 달라진다. 김 소장은 까르푸가 위생·세제 제품의 포장 플라스틱을 리필형 등으로 30% 줄이고 리필 제품 가격을 10~20% 낮추겠다고 발표한 사례를 들어 “지속 가능한 포장이 비용과 가격경쟁력에도 직접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반대로 준비가 늦으면 상담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 김 소장은 “준비가 늦은 기업은 제품 자체의 품질이 좋아도 포장 때문에 상담이 중단될 수 있다”며 “김 스낵의 복합재질 파우치를 바꾸려면 포장업체 선정부터 보존기간과 식품 접촉 적합성, 운송 안정성 시험, 디자인과 라벨 수정까지 다시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제작한 포장재 재고도 부담이다. 그 사이 바이어가 입점을 미루거나 더 빨리 대응하는 공급업체를 택할 수 있다.
캡·라벨·접착제까지 증빙 대상…포장은 단일 부품이 아니다
실무에서 기업이 가장 많이 놓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완제품 포장을 단일 부품처럼 다루는 습관이다.
김 소장은 “용기나 파우치뿐 아니라 캡, 라벨, 실링필름, 인쇄층, 접착제, 코팅제, 지퍼, 건조제, 테이프, 운송용 박스까지 각각 확인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시험성적서가 있어도 실제 납품된 포장재와 시험시료가 동일한 제품인지 연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특히 인쇄잉크와 접착제, 코팅제가 난관이다. 완제품 제조기업조차 정확한 성분을 모르는 경우가 많고, 공급업체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 제공을 꺼리기도 한다. 김 소장은 “추정에 의존하지 않고 포장재 공급망을 따라가며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며 포장 구성표, 기술자료와 물질안전보건자료(TDS·SDS), 식품 접촉 적합 선언, 잉크·접착제·코팅제 확인서, 시험성적서와 변경 관리 정보를 요청 목록으로 제시했다.
전체 배합 공개가 어려운 경우의 우회로도 있다. 공급업체가 규정 적합 여부를 직접 선언하거나, 관련 정보를 시험기관에 비공개로 제출하는 방식이다. 김 소장은 “이렇게 확보한 자료를 먼저 검토한 뒤 입증되지 않은 위험 항목만 선별해 추가시험을 진행함으로써 불필요한 시험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첫 유럽 현지사무소 연계 PPWR 대응지원센터, 포장 한 건을 실제 거래까지 지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는 PPWR 일반 적용에 맞춰 '전남광주 EU PPWR 대응지원센터'를 통해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전남광주는 이를 지자체 최초의 유럽 현지사무소 연계형 PPWR 대응지원체계로 소개하고 있다. 2026년 8월 기준 유럽 아마존에 진출한 44개사와 독일 등 상설 판매장에 입점한 64개사가 주요 지원 대상이다.
센터는 적용 규정 안내부터 자료목록 진단, 증빙 검토, 미비한 자료 보완 요청, 기술문서(TD)·적합성선언서(DoC) 초안 작성, 바이어 보완 요구 대응까지 맡는다. 다만 경계는 분명하다. 김 소장은 “최종적으로 포장의 적합성을 확보하고 TD를 관리하며 DoC에 서명·발행하는 법적 책임은 제조자에게 있다”며 “사무소의 지원문서는 기업의 사실 확인과 최종 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요 기간은 서류 완성도에 달렸다. 제품 규격과 포장 구성·중량, 공급업체 증빙, 시험성적서, 수입자 정보가 모두 갖춰진 단순 포장이면 접수 후 1~2주 안에 1차 초안을 만드는 것이 실무 목표다. 반대로 잉크·접착제 자료를 새로 받아야 하거나 시험이 필요하고 품목 수가 여러 개면 수주 이상 걸린다.
중앙기관과의 역할 분담에 대해 김 소장은 대체가 아니라 연결이라고 했다. 그는 “중앙 지원기관은 폭넓은 제도 안내와 전문 인프라에서 강점이 있고, 현지 사무소는 개별 기업의 특정 제품과 포장 한 건을 실제 거래로 이어질 때까지 밀착해 지원하는 데 강점이 있다”며 “현지 수입자의 보완 요구가 발생했을 때 언어와 시차의 장벽을 줄이고, 국내 기업과 포장재 공급업체의 자료까지 추적해 해결 과정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이 현지 사무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시행 한 달여가 지난 9월 15일 현재, PPWR을 이유로 한 바이어의 공식 보완 요구나 제품 반려, 판매 중지 사례는 센터 지원 기업 가운데 확인되지 않았다. 김 소장은 “일반 적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이어 요구가 뚜렷하게 달라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현재 지원은 사후 대응보다 예방적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이 꼽은 2~3년 내 주요 규제는 잔류농약·포장 문서·EUDR·CBAM
앞으로 2~3년 안에 한국 농식품 수출에 가장 큰 충격을 줄 규제로 김 소장은 △잔류농약·식품 안전 기준 △PPWR을 포함한 포장·문서 의무 △EUDR △CBAM 순으로 꼽았다.
잔류농약 허용기준(MRL)을 첫손에 꼽은 이유는 파급 방식 때문이다. 김 소장은 “특정 성분 하나가 초과해도 해당 로트가 직접 영향을 받고, EU 기준은 품목·성분별로 수시 변경된다”고 말했다. PPWR은 거의 모든 포장제품에 넓게 영향을 주되 의무가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EUDR은 소·코코아·커피·팜유·고무·대두·목재와 이들에서 유래한 부속서상 대상 제품이다. 구체적인 적용 여부는 품목 코드에서 확인해야 한다. CBAM은 직접 대상이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여서 일반 식품보다 비료와 소재, 일부 농자재에 영향이 크다.
농자재·농기계 기업은 순위가 달라진다. 김 소장은 “비료나 철강·알루미늄 소재가 직접 대상 코드에 들어가면 CBAM 대응이 앞서고, 스마트기계는 CE 적합성, 기계안전, 사이버보안, 데이터 의무가 더 직접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통관·검역 단계에서 되풀이되는 실수도 지적했다. EU와 한국의 품목분류·성분 기준 차이를 선적 후에 확인하는 것, 최신 MRL 대신 과거 성적서를 쓰는 것, 원료명·알레르기·영양표시·현지어 표기를 누락하는 것, 수입자와 EU 통합품목분류(CN) 코드·책임 주체를 사전에 정하지 않는 것이다. 김 소장은 “제품은 같다고 생각해도 제조일·공급업체·포장 사양이 달라지면 증빙 연결이 끊긴다”며 “선적 전 제품별 규제 체크리스트와 서류 버전관리가 가장 기본적인 예방책”이라고 말했다.
바이어 서류 요구, 인증 개수보다 로트·공급망 연결
바이어가 요구하는 서류의 성격도 달라졌다. 김 소장은 “몇 년 전에는 인증서 한 장과 기본 시험성적서로 상담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제품과 공급망을 연결한 증빙 묶음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법정 표시와 식품 안전 문서에 더해 유기, 글로벌갭(GLOBALG.A.P.), 글로벌식품안전이니셔티브(GFSI)가 인정한 식품 안전 인증, 탄소발자국·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포장재 자료까지 바이어의 내부 기준이 겹친다.
핵심은 인증의 개수가 아니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김 소장은 “해당 인증이 실제 로트, 생산지, 포장과 연결돼 있고 갱신·변경이 관리되는지가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농가와 영농법인을 위한 경로도 제시했다. 생산자단체·농협·수출 조직을 통한 그룹 인증과 공동 품질관리, 바이어가 확정된 1~2개 품목 중심의 단계적 인증, 공공 시험·컨설팅 지원과 공동 문서 담당자 활용이다. 김 소장은 “시장성이 확인되기 전부터 인증을 늘리기보다 목표 국가·바이어·제품을 먼저 정하고, 법적 필수사항과 거래상 필수사항을 구분해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①편에서 살펴봤듯 한국 농식품의 대EU·영국 수출은 2025년 9억 6130만 달러로 10억 달러에 다가섰다. 그러나 조미김 등 조제한 김의 증가세는 2년째 한 자릿수에 머물렀고, 김치 수출도 정체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흐름을 규제 대응이나 재주문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첫 수출을 꾸준한 거래로 이어가려면 제품의 맛과 품질뿐 아니라 바이어가 요구하는 자료를 제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공급업체와 함께 포장 정보를 확인하고 규정 준수를 입증할 자료를 갖추는 일은 유럽 판로를 지키고 넓히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되고 있다.
〈김기철 소장 프로필〉
김기철 소장은 한국에서 환경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1년 독일로 건너가 뤼네부르크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 연구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지속가능경영원과 삼정KPMG에서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을 했고, 다시 독일로 이주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기술경영팀과 한·EU 연구비즈니스협력센터에서 기술 사업화와 국제협력 업무를 맡았다. 2012년 5월 전라남도 유럽사무소 설립(6월 개소) 때부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2026년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한국농업기술신문 해외 필진으로 유럽 애그테크·농식품 시장 동향 등에 대해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이 기획은 한국농업기술신문 해외 필진인 김기철 소장과 함께 준비했다. 김 소장 발언은 한국농업기술신문이 2026년 8월 26일 질의서를 보내 9월 중 회신받은 서면 인터뷰에서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