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테크 라이징] 성악가 출신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 박성호 대표, ‘이브 클레버’로 세계 농업 겨냥
벤처나라 조달 등록…노지형 ‘이브 클레버 아웃도어’ 2027년 1월 출시 미국 법인·북마케도니아 수출로 해외 공략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있는 백구면 한 온실에서는 2025~2026년 작기에 로봇이 딸기 3000주를 관리하고 수확했다. 이 딸기는 농협 하나로마트와 쿠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팔렸다. 재배부터 판매까지 맡은 곳은 로봇 기업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이다. 박성호 대표는 2024년 농업경영체를 등록한 농업인이자 백구농협 조합원이다.
독일 기센 극장 솔리스트에서 스마트팜 창업가로
박 대표는 음악을 전공한 오페라 가수다. 독일에서 8년 동안 유학하며 헤센주 기센 시립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했고, 귀국한 뒤에는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음악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농업에 발을 들인 계기는 한옥에 대한 로망이었다. 박 대표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한옥을 지을 때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며 “아내와 함께 스마트팜 교육만 300시간 정도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그는 복합환경제어 기업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지냈고, 서울대 벤처기업에서 생체정보 시스템 개발을 총괄했다. 76억 원 규모의 스마트팜 다부처 패키지 사업에서는 표현체(phenomics) 분석 카메라를 활용한 생체정보 시스템을 맡았다. 과제 도중 코로나19로 비대면이 대세가 되자 그는 영상 데이터를 로보틱스에 응용하기로 마음먹었고, 2020년 10월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을 창업했다. 박 대표는 “로봇에 필요한 백본 데이터를 AI로 가공하자는 생각으로 80만 장의 작물 이미지를 학습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브 클레버’, 수확기가 아닌 농작업 관리 로봇
주력 제품인 ‘이브 클레버(EVE Clever)’는 깊이 인식 카메라를 단 채 온실을 주행하며 작물을 분석한다. 딥러닝 알고리즘이 과실의 숙도를 판단하면, 실리콘 소재의 세 손가락 그리퍼가 과실을 수확한다. 작업하는 동안 잎·관부·화방·과실의 크기 같은 생육 지표를 함께 측정하고, 병해충 등 생육 저해 요인도 찾아낸다.
박 대표는 “많은 분들이 로봇이 잘 따느냐 못 따느냐만 보지만, 우리의 목적은 작물이 어떤 생육 상태인지 아는 것”이라며 “수분부터 전정, 수확까지 농업의 모든 주기를 관리하는 피지컬 AI 로봇”이라고 말했다.
이브 클레버의 가격은 4만 8570달러, 조달청에 6800만 원으로 조달가격이 등재돼 있다. 서비스형 로봇(RaaS) 방식의 월 임대도 운영한다.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월 임대료는 36개월 계약 기준 1790달러(약 247만 원, 2026년 9월 21일 매매기준율 기준), 60개월 계약 기준 1160달러(약 160만 원)다. 계약이 끝나면 조달가격의 약 10%를 인수 가격으로 내고 로봇을 소유할 수 있다.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실내형 모델은 딸기·토마토·파프리카·멜론에서 90% 이상의 수확 성공률을 기록했고, 토마토 기준 시간당 생산량이 200kg으로, 하루 기준 생산량은 3톤(15시간 운영 기준)이다. 회사 측은 이브 클레버 사용 시 6명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으며, 3년 대여 기준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월 100만 원씩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노지형·휴머노이드로 라인업 확장
신제품 ‘이브 클레버 아웃도어’는 사과·배·복숭아·포도·감귤 과수원을 겨냥한 모델이다. 바퀴형과 무한궤도형 가운데 선택할 수 있고, 방진·방수 등급은 IP65다. 위성항법시스템(GNSS)에 실시간 이동측위(RTK) 보정을 더하고 라이다(LiDAR)를 결합해 위치 오차를 ±5㎝ 수준으로 줄였다. 박 대표는 “무한궤도형은 경사도 30도까지 오를 수 있도록 설계했다”며 “평택과 영주에서 실증을 거친 뒤 2027년 1월 정식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은 양팔로 작업하는 휴머노이드형 ‘SUNGHO-RS-H’도 가능성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으며, 빠르면 2027년 하반기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생육 측정 시스템 ‘이브(EVE)’는 RGB·깊이·열화상 카메라와 YOLOv11 모델을 결합해 열매·줄기·잎·꽃을 실시간으로 구분한다. 컨테이너형 수직농장 ‘스페이스원(Space-ONE)’은 40피트 컨테이너(바닥면적 약 30㎡)에 4단 재배 선반과 통합 환경제어를 갖춘 제품으로, 전력 소비량은 월 약 3900kWh다.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계속 견적을 요청하는 제품”이라며 “10평 남짓한 컨테이너 1동에서 버섯 기준 작기당 1억 원 규모의 생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인증·조달·실증으로 ‘상용화’를 증명한다
이브 클레버는 조달청 벤처나라에 등록돼 있다. 회사 측은 벤처나라에 등록된 농업 수확 로봇은 이브 클레버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은 등록 특허 3건과 소프트웨어 저작권 4건을 확보했고, 신기술 농업기계 지정도 마쳤다. 신기술(NET) 인증은 현장 평가만 남겨두고 있으며, 국제 인증은 유럽연합(EU) CE 인증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인증을 추진 중이다.
국내 실증도 본격화하고 있다.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은 경기 평택시가 산업통상부 AI 실증사업 대상지로 확정됨에 따라 2026년 말까지 배 자율 수확을 검증한다. 경북 영주시와는 사과 과원 실증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표는 “두 지자체를 통한 농가 실증 규모가 10억 원 정도”라고 밝혔다.
미국 법인·북마케도니아 수출…해외 무대를 넓힌다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은 2025년 CES·MWC·IFA·GITEX 등 주요 IT 전시회에 참가했다. 북마케도니아 N99 테크놀로지스와 맺은 수출 계약에 따라 2026년 11월 제품을 납품한다. 박 대표는 “북마케도니아 파트너가 사실상 지사 역할을 맡아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권과 EU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SANX정보시스템과는 10만 달러 규모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북미 시장에는 직접 진출한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미국 워싱턴DC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입주가 확정되면서 미국 법인 설립도 확정됐다. 10월에는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시, 캘리포니아대 리버사이드캠퍼스(UC리버사이드)와 현지 실증을 논의한다. 박 대표는 “캘리포니아를 감귤 주산지 현지화 거점으로 삼아 5년 안에 ‘메이드 인 USA’ 이브 클레버를 내놓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곡물 생산용 피지컬 AI 도입 제안이 들어와 협의하고 있다.
"목표는 경운기 한 대 가격…로봇은 농사를 돕는 도구"
남은 과제는 가격이다. 박 대표는 "대량 생산 단계에 들어서면 로봇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며 "농가에서 경운기 한 대를 살 수 있는 가격대를 맞추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술보다 농업이 먼저라는 원칙도 분명히 했다. 박 대표는 "농사를 위한 로봇을 만드는 것이지, 로봇을 위해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다"라며 "농사를 더 잘 짓고 소득을 높이려고 만든 로봇이니 주객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성호에스아이코퍼레이션은 경북 영주에서 진행할 사과 과원 실증을 노지형 상용화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과수 농가가 수확보다 가지치기를 더 힘들어하는 만큼, 로봇이 전정 작업의 일손을 덜어준다면 현장의 수요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영주 실증 결과가 이브 클레버의 노지 시장 안착을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