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유신 칼럼] 밭에서 멈추는 기계화, 이제 ‘전환손익’을 볼 때다
-밭농업기계화 2.0, 마늘밭에서 본 농가 선택의 조건-
[전문가 칼럼] 경북대학교 하유신 밭농업기계개발연구센터장
농기계 시연이나 현장 실증이 끝나면 농업인의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그래서 실제로 남습니까?” 정책은 기계화율로 말하고 연구자는 작업 성능과 노동시간 절감을 이야기하지만, 농가는 자신의 계산을 보고 움직인다. 좋은 파종기와 수확기가 있어도 기존 방식보다 비용과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바꾸지 않는다.
멈춘 것은 기계가 아니라 농가의 선택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밭농업기계화 2.0’을 제안했다. 기계에 맞춰 재배양식을 표준화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파종, 관리, 수확과 수확 후 처리,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까지 연결해 전주기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질문이 남는다. 기술이 밭까지 왔는데도 농가는 왜 쉽게 영농 방식을 바꾸지 않는가. 필자는 그 답이 역설적으로 기계 바깥에 있다고 본다.
필자가 농림축산식품부의 마늘 기계화 표준재배모델 실증 연구과제를 맡아 주산지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마늘 파종기가 아무리 좋아져도 종구의 크기와 형상이 제각각이면 안정적인 배종이 어렵다. 그래서 기계의 성능 개선과 함께 종구의 선별과 규격까지 살펴야 한다. 양파와 배추의 기계정식도 마찬가지다. 기계만 준비해서는 기계화가 완성되지 않는다.
바꿀 것은 기계가 아니라 기계가 일할 조건
마늘의 비닐피복은 더욱 분명한 사례다. 관행적인 유공비닐 재배에서는 비닐의 구멍과 종구의 파종 위치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파종기를 적용할 수 없다. 수확기에도 남아 있는 비닐은 줄기 절단, 굴취, 수집 작업을 방해한다.
그렇다고 비닐을 모두 없애자는 뜻은 아니다. 비닐은 월동기의 보온과 수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 비닐 아래에서도 잡초는 발생한다. 다만 피복 여부와 제거 시기에 따라 잡초의 발생 양상과 관리 시기가 달라질 뿐이다. 중요한 것은 비닐의 유무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사용해야 기계화와 재배 안정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난지형에서는 무멀칭 재배와 이에 필요한 관수와 잡초 관리 체계를 함께 검토하고, 한지형에서는 월동기에는 비닐의 기능을 활용하되 이른 봄에 제거해 수확기 기계 작업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실증하고 있다. 표준화란 전국에 하나의 재배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작형에 맞는 몇 개의 모델을 만들어 농가가 선택하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농가가 보는 것은 절감액이 아니라 전환손익
여기에서 필자는 ‘기계화 전환손익’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수는 노동비다. 그러나 농가는 기계화로 줄어드는 노동비만 보지 않는다. 종구 선별, 추가 관수와 잡초 관리, 기계 구입 또는 작업 대행 비용, 생산량과 상품성의 변화까지 함께 계산한다. 여기에 새로운 재배 방식이 농작물재해보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기계 수확물이 기존 수매와 유통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지 같은 불확실성도 더해진다.
그렇다고 손익계산서를 전국 농가에 똑같이 적용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지역과 작형, 경영규모와 기계 이용 방식에 따라 숫자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기존 방식에서 기계화 방식으로 바꿀 때 무엇이 줄고 무엇이 새로 늘어나는지를 함께 보여주는 판단의 틀이다. 농가가 보는 것은 절감액이 아니라 결국 전환 이후의 차액이다.
보험은 이러한 전환손익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난지형 무멀칭이 제도 안으로 편입돼 가는 것과 달리, 한지형에서 실증 중인 비닐 조기 제거 방식은 아직 기존 보험 인수기준과의 정합성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방식이라도 보험이라는 안전망에서 벗어난다면 농가에 전환을 권하기 어렵다.
따라서 실증을 통해 안정성이 확인된 표준재배모델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거 시기와 생육 상태, 관수와 잡초 관리 등 관리 조건을 충족할 경우 보장을 인정하는 (가칭) 표준재배모델 조건부 인수를 주산지부터 시범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장 데이터를 축적한 뒤 보험 인수기준과 특약으로 연결한다면 기술의 변화와 제도 사이의 시차도 줄일 수 있다.
정책이 물을 것은 보급 대수가 아니라 전환 여건
제10차 농업기계화 기본계획의 질문도 하나 더 늘어나야 한다. “어떤 농기계를 개발하고 얼마나 보급할 것인가”와 함께 “농가가 이 방식으로 전환하려면 무엇을 바꿔줘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밭농업기계화 2.0의 다음 단계인 ‘기계화 전환손익’의 관점이라고 부르고 싶다. 기계 구입비만 낮추는 정책에서 종구, 재배 방식, 관수, 잡초 관리, 보험, 수매까지 전환 과정의 마이너스 요인을 함께 줄여주는 정책으로 범위를 넓히자는 것이다.
물론 전환손익은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업시간과 노동 투입, 농기계 작업 성능, 연료와 작업비, 재배환경과 수확물 품질 등 작목·공정별로 현장에서 측정할 수 있는 ‘기계화 원단위’가 먼저 쌓여야 한다. 이를 표준화해 농가가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판단 모델로 연결하고, 나아가 생육, 기상, 토양, 농기계 데이터를 결합해 AX(AI 전환) 기반의 전주기 작업 최적화로 확장하는 것은 필자를 포함한 밭농업기계 연구진이 풀어야 할 다음 과제다.
기계는 개발할 수 있다. 그러나 농가가 선택하지 않으면 기계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농가의 전환손익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기계화율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