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테크 라이징] 밤새 혼자 딴다… 7000만 원 딸기 수확 로봇 '픽키', 연말 상용화
비욘드로보틱스, 온디바이스 경량 AI로 야간 무인 수확·선별 동시 구현 경북농업기술원과 기술협력 협약… 구매의향서 기준 12억 5000만 원 규모
사람이 잠든 사이 온실을 돌며 잘 익은 딸기만 골라 따고, 크기별로 나눠 트레이에 담는 로봇이 2026년 말 시장에 나온다. 딸기 수확 로봇 개발사 (주)비욘드로보틱스(대표 변성호)가 실증을 마치고 정식 출시를 준비 중인 '픽키(Picky)'다. 가격은 한 대당 7000만원. 성능을 먼저 만들고 값을 매긴 것이 아니라, 농가가 감당할 수 있는 값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서 성능을 맞춘 숫자다.
인건비에서 거꾸로 계산한 7000만 원
변성호 대표는 "1억원이 넘으면 안 쓰겠다는 농가가 많고, 5000만~6000만 원이어도 지원사업 없이는 안 사겠다는 분들이 상당수"라고 말했다.
회사는 기준점을 인건비에서 찾았다. 외국인 근로자 1명 고용에 연간 3500만~4000만 원이 든다는 현장 조사를 근거로, 1.5~2년 안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가격을 역산했다. 트레이를 자동 교체해 주는 '픽키 허브'를 3000만 원에 더하면 총 1억 원 수준에서 야간 무인 순환 작업 구성이 갖춰진다. 이 경우 투자금 회수 기간은 2.5년 안팎으로 늘어난다.
이 가격을 맞추기 위해 센서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했고, 수확용 그리퍼를 비롯한 엔드이펙터(End Effector·로봇 팔 끝단 장치)는 자체 설계·제작으로 원가를 낮췄다. 다만 화재 위험을 고려해 배터리 품질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정영훈 부대표는 "저사양·저가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 기술력으로 푸는 것이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와이파이도 없는 온실… 대형 AI 모델은 답이 아니었다
최근 로봇업계 화두는 대형 언어 모델과 비전 모델을 결합한 '피지컬 AI'지만, 비욘드로보틱스는 이 흐름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변 대표는 "우리는 모바일 로봇이고, 와이파이 연결조차 되지 않는 현장에서 온디바이스로 AI가 돌아가야 한다"며 "대형 모델은 애초에 구동될 수가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대신 경량화한 소형 모델 여러 개를 로봇이 필요로 하는 지점마다 순차적으로 배치하고, 창업팀의 강점인 3D 비전·정밀 제어 기술을 결합했다. 그 결과 픽키는 외부 전원 없이 배터리만으로 구동되며, 어떤 딸기를 수확할지와 어느 경로로 진입할지를 스스로 판단한다. 조도 변화나 잎에 가려진 과실 같은 변수도 이 판단 과정에서 처리된다.
분당 14~16개, 수확률 85~95%… 밤새 따고 크기까지 나눈다
변 대표는 "로봇이 돌아가기에 양호한 환경에서 최대 성능을 냈을 때 분당 14~16개를 수확한다"고 밝혔다. 같은 조건에서 숙련 작업자가 분당 20개를 수확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환경에서는 95% 수확률을 보이지만, 잎에 열매가 많이 가려져 있거나 그 밖의 수확이 쉽지 않은 환경에서는 85% 안팎의 수확률을 보인다.
수치 해석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회사가 말하는 '수확률'은 인식률이 아니라, 따야 할 익은 딸기 100개 중 실제로 몇 개를 수확했는지를 뜻한다.
변 대표는 "무리하게 시도하면 딸기가 손상될 수 있어 방어적으로 동작하도록 설정했다"고 말했다. 손상 방지를 우선하도록 설계된 탓에 환경이 복잡할수록 수확률은 낮아진다. 배터리는 8시간 연속 작업 기준으로 설계됐고 최대 10시간까지 가동된다.
주목할 지점은 야간 무인 작업이다. 딸기는 새벽에 수확해야 경도와 당도가 높지만, 이 시간대 작업이 농가에는 가장 큰 부담이다. 변 대표는 "아침에 나와 보면 트레이가 수십 개 쌓여 있어, 새벽 5~6시에 모두 나올 필요 없이 오전 9시쯤 출근해 선별하고 오후에 출하하는 일정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트레이가 구획으로 나뉘어 있어 대과·중과·소과를 담을 때부터 분류되고, 기형과나 병해충 피해 과실은 별도 폐기통에 담긴다.
정 부대표는 적시 수확 실패 문제를 짚었다. 그는 "오늘 100개를 따야 하는데 70~80개밖에 못 따면 남은 20~30개는 다음 날 폐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는 야간 8~10시간 가동 기준으로 인력 1명분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정 부대표는 "이는 이상적인 수치이며 실제 현장에서는 달라질 수 있다"고 전제했다.
경북농업기술원과 기술협력 협약… 구매의향서 12억 5000만 원
전환점은 경북에서 찾아왔다. 경상북도농업기술원 성주참외과채류연구소가 임대 계약을 맺고 3개월간 픽키를 사용한 뒤 1대 구매를 확약했다. 로봇과 픽키 허브를 포함해 1억원 규모로, 2027년 1분기 매출로 잡혀 있다. 비욘드로보틱스는 올해 6월 17일 경북농업기술원과 딸기 수확로봇 기술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회사는 이 협약을 내년도 보급사업으로 잇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계약을 논의 중인 농가는 10여 곳이다. 구매의향서(LOI) 기준으로는 12억 5000만 원을 넘어서며, 실제 계약과 납품이 이뤄질 경우 10억 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하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정 부대표는 "수확 로봇을 실제로 써 본 사례가 없다 보니 '내가 첫 사례'라는 데 부담을 느끼는 농가가 많다"며 "공공에서 레퍼런스를 만들고 보급사업으로 시장이 깔리면 확산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회사는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등록과 조달청 혁신제품 지정도 추진 중이다.
딸기 다음은 토마토… 로봇 깔고 데이터로 버는 구조
비욘드로보틱스는 2024년 딸기 수확 기술을 일부 변형해 방울토마토를 인식·수확하는 개념검증(PoC)을 마쳤다.
변 대표는 "딸기는 열매가 허리 높이에서 맺히지만 토마토·파프리카·오이는 위로 유인해 키우기 때문에 하드웨어가 커져야 한다"며 "그 외 소프트웨어는 거의 대부분 공유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차기 모델은 딸기와 토마토를 함께 다루는 플랫폼이다. 다만 정 부대표는 "딸기 농가가 오이·토마토까지 되는 플랫폼을 더 비싼 값에 살 이유는 없다"며 만능 로봇에는 선을 그었다.
장기 수익 모델은 데이터다. 로봇이 수확하며 촬영한 영상과 수확량·시간·과실 상태 정보가 축적되면, 이를 기반으로 관제나 병해충 탐지 기능을 농가가 선택해 구독하는 구조다. 정 부대표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다크 팜(dark farm)'이 궁극적인 비전"이라고 말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협업·투자 제안이 이어지고 있지만 회사는 진출 시점을 2027년 말~2028년으로 잡고 있다. 정 부대표는 "국내 농민을 위해 만든 로봇을 먼저 정착시키고, 여기서 만든 레퍼런스를 갖고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변 대표가 제시한 장기 목표는 5년 안에 농장 작업의 60~70%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는 "온실에서는 다리가 필요하지 않다. 바퀴로 달리되 그 위에 사람 손을 대체할 만큼 정밀한 팔과 센서, AI 모델을 얹는 것이 우리의 방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