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85% 배 시장에 농촌진흥청이 던진 초록 승부수…조생 녹색배 ‘설원’
시장성 평가 응답자 90% “신고와 차별화된 상품 가치 있다”…당도·식감은 100% ‘우수’ 이상 kg당 1만~1만 5000원 거래, 신고의 최대 두 배…과제는 과피색·수량·공급 안정성
우리나라 배 재배면적의 85% 안팎을 한 품종이 차지한다. 1927년 일본에서 육성돼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신고’다. 실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관측 12월호(과일)를 보면 2025년 배 품종별 재배면적에 따른 비중은 신고가 85.4%로 나타났다. 국내 육성 품종, 원황(5.0%)과 신화(4.6%) 점유율은 각각 5% 안팍에 그친다. 나머지 품종을 모두 합쳐도 5% 수준이다. 신고는 저장성과 유통성이 뛰어나 반세기 넘게 배 산업을 떠받쳐 왔지만, 그러는 사이 시장은 명절 선물용 대과(大果) 중심으로 굳어졌다. 소비 흐름이 평소에 먹기 좋은 과일로 옮겨가는 사이 배는 제사상과 선물세트 안에 갇혔다.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배연구센터가 내놓은 녹색배 ‘설원(雪圓)’이 이 구조를 흔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과육이 눈처럼 희다는 뜻의 이름 그대로 껍질은 녹황색, 속은 백색에 가깝다. 소비자가 진열대에서 ‘기존 배와 다른 배’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 이 품종의 출발점이다.
설원 14브릭스 이상 고당도…높은 경도로 유통성 강점
‘설원’은 2011년 품종을 출원해 2013년 등록(품종보호권 등록번호 제4457호)을 마쳤다. 전남 나주 기준 8월 하순~9월 상순에 수확하는 조생종이며 농촌진흥청이 밝힌 설원의 평균 과중은 600g 안팎, 표준 당도는 14브릭스 이상이다. 배 육종을 담당하는 정해원 연구사는 “신고가 12브릭스만 나와도 소비자는 굉장히 달다고 느낀다. 설원은 품종 자체가 기본적으로 13~14브릭스”라고 소개했다.
단맛만이 전부는 아니다. 설원의 평균 경도는 43.2N으로, 신고의 약 1.5배로 높아 아삭한 식감이 오래가고, 눌림에 강해 대량 유통에도 유리하다. 갈변 효소 함량이 적어 깎아 두어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다. “신고는 하루 이틀이면 갈색으로 변하는데, 설원은 일주일을 놔둬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정 연구사의 설명이다. 상온 30일, 저온저장 3개월 이상 보관이 가능하다.
도매유통인 90%, 시장성 평가에서 ‘우수’ 이상 평가
시장의 평가는 이미 한 차례 검증대에 올랐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9월 8일 서울 중앙청과 회의실에서 도매유통인 2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시장성 평가에서 설원은 종합평가 ‘매우 우수’ 20%, ‘우수’ 70%를 받아 응답자의 90%가 우수 이상 등급을 줬다. 특히 당도(매우 우수 60%·우수 40%)와 식감(매우 우수 40%·우수 60%)은 100% 우수 이상을 받았고, 신고와 차별화된 상품 가치가 있느냐는 물음에도 90%가 긍정했다. 최대 장점으로는 고당도(37%)와 아삭한 식감(26%)이 3분의 2 가까이 차지했다.
이날 토론 참석자들은 “생식용으로 경쟁력이 충분하며, 갈변이 없어 조각 과일이나 식당 후식용으로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차별화 상품을 찾는 백화점과 젊은 층이 주요 타깃으로 지목됐다. 설원과 신고의 가격은 이미 벌어져 있다. 정 연구사에 따르면 설원은 kg당 1만~1만 5000원 선에 거래되는 반면 신고는 6000~7000원 수준이다.
남은 과제는 과피색·수량·공급 안정성
설원의 약점은 과피다. 과피색은 유일하게 ‘우수’ 응답이 0%였다. 보통 70%, 나쁨 30%로, 녹색 과피의 코르크화가 도매시장의 익숙한 기준에서는 여전히 낯설다는 뜻이다. 다만 중도매인들은 “맛과 경도가 모두 우수해 코르크화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거래의 장애 요인으로 보지 않았고, “셀링포인트로 잡으면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수량과 공급 안정성이 관건이다. 설원의 10a당 생산량은 다수성 품종인 신고의 80% 수준이다. 높은 단가가 수량 감소분을 상쇄할 수 있느냐가 농가의 실제 판단 기준이 된다. 신고의 10a당 수량은 약 2100kg(2025년 배 생산량·통계청)으로 책정하면 설원은 그 80%인 1680kg 수준이다. kg당 6500원인 신고의 조수입은 1365만 원이다. 설원의 조수입은 단가 1만~1만 5000원에 따라 1680만~2520만 원으로, 신고보다 23~85% 많다. 중간값인 1만 2500원 기준이면 약 54% 많은 셈이다. 다만 조수입 기준이어서 묘목 교체 비용과 성목까지의 기간은 반영돼 있지 않다.
추석 성수기 경쟁력을 두고도 “신고는 출하 안정성과 품질 일관성이 이미 확보돼 있어, 설원도 안정적인 공급 체계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28일 소매유통인 시장성 평가에 참여한 MD(상품기획자)들은 “한번 먹어 본 고객은 재구매 의사가 있겠지만 비싼 가격이 걸림돌”이라며 제수용보다 디저트로 자리매김시킬 것을 제안했다.
개화는 늦고 수확은 빠르다
생산 현장에서 설원의 가장 실질적인 이점은 시기다. 꽃 피는 시기의 경우 설원이 신고보다 5~7일가량 늦어 봄철 저온기를 시차로 비껴갈 수 있다. 과거에는 저온 현상이 3월 초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꽃이 피는 3월 말~4월 초에도 나타나는 것은 물론 온난화로 개화까지 앞당겨져 피해가 급증한 터라 의미가 작지 않다.
반면 수확은 빠르다. 지난해 나주에서 8월 27일에 땄고 올해도 8월 넷째 주에서 9월 첫째 주 사이가 될 전망이다. 정 연구사는 “이른 추석 영향으로 수확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사용하는 지베렐린을 처리하지 않은 신고가 9월 셋째 주에나 수확되는 것과 비교하면 설원의 수확 시기는 3주가량 이르다”고 말했다. 추석이 이른 해에 덜 익은 배를 억지로 출하하지 않아도 된다.
재배면적 10ha…2030년 40ha, 수출까지 겨냥
현재 설원의 재배면적은 10ha 남짓으로, 전국 배 재배면적 9316ha(농촌진흥청)의 0.1% 수준이다. 농촌진흥청은 개별 농가 단위 보급으로는 물량 확보와 인지도 제고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지방자치단체·전문 유통조직이 참여하는 전문 생산단지 조성에 나섰다. 울산시와는 지난해, 나주시와는 올해 8월 13일 협약을 맺었고 2029년 울산 10ha, 2030년 나주 30ha 보급이 목표다.
수출도 시야에 있다. 경도가 높아 장거리 유통에 유리해서다. 나주시가 재배 단계부터 지베렐린 처리 여부와 품질 규격을 확인하는 시장인증제 품목에 설원을 추가했고, 나주배원예농협은 설원 생산 물량의 일부를 수출 물량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정 연구사는 “생산단지 조성 등으로 어느 정도 물량이 나오기 시작하면 소비자가 맛을 볼 수 있게 되고, 거기서 반응이 좋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