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삐딱선] 2027년 농식품부 예산 22조 2215억 원,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도달률이다
배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26.2% 내렸다. 토마토는 24.8% 떨어졌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2026년 8월 농산물 물가는 전년 같은 달보다 6.7% 하락했고, 낙폭은 7월(-2.2%)의 세 배로 커졌다. 소비자 입장에선 반가운 숫자다. 그런데 농민들에게서 먼저 나오는 말은 “올해도 값이 없다”다. 비룟값과 인건비 등 생산비는 올랐는데 농가 수취 가격은 내렸기 때문이다.
이런 국면에서 정부가 내놓은 2027년 농림축산식품부 예산안은 22조 2215억 원이다. 전년보다 2조 853억 원(10.4%) 늘어 증가액과 증가율 모두 2000년 이후 최대다. 농지관리기금·농산물가격안정기금·FTA기금(자유무역협정 이행지원기금)·축산발전기금 등 4개 기금의 누적 채무 3조 1000억 원 상환까지 더하면 총지출은 25조 3081억 원, 전년 대비 25.7% 늘어난다. 기금을 통합해 농업발전기금을 만들겠다는 구상까지 놓고 보면 재정 정상화라는 방향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구조조정 2조 7863억 원, 그중 집행부진은 4%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도달률이다. 농식품부가 예산안과 함께 공개한 ‘지출구조조정 사업 리스트’에는 195개 사업, 2조 7863억 원이 정리 대상으로 올랐다. 사유별로는 우선순위 조정이 1조 5645억 원으로 절반을 넘고 제도개선 7444억 원, 유사중복 정비 3088억 원이 뒤를 잇는다. 예산의 우선순위를 다시 매기고 겹치는 사업을 정리하는 것은 재정 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결국 문제는 남은 한 갈래다. ‘집행부진’을 사유로 깎인 예산은 26건·1131억 7500만 원이다. 전체 구조조정액의 4.1%에 지나지 않는다. 비중만 보면 사소해 보인다. 그런데 그 4%가 어디에 몰려 있는지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행부진 1132억 원 중 776억 원이 축사시설현대화
집행부진으로 깎인 26건 가운데 축산·가축·축사·조사료·축산물 관련이 16건·978억 9400만 원이다. 집행부진 감액의 86.5%가 축산 분야에서 나왔다. 더 좁히면 축사시설현대화 한 사업이 4건·775억 6100만 원(68.5%)이다. 집행부진으로 사라진 예산 10원 중 7원이 축사를 고치라고 편성했다가 남은 돈이다.
특히 축사시설현대화 융자는 두 개 내역 사업이 통째로 없어졌다. 축사시설개선 368억 원, 축산분야ICT융복합확산 300억 원이 모두 2027년 정부안에서 0원이 됐다. 668억 원이 한 해 만에 증발했고, 사유는 두 건 다 집행부진이다.
면면이 뼈아프다. 스마트 축산과 산지 유통, 농작업 안전. 정부가 미래라고 부르거나 안전이라고 부르는 분야의 예산이 정작 쓰이지 않아서 사라졌다. 과수거점산지유통센터 건립은 87억 원에서 55억 1400만 원으로, 물류기기공동이용지원은 110억 6800만 원에서 84억 8000만 원으로 줄었다. 농기계 등화장치 부착 지원은 6억 원에서 5억 원이 됐다. 야간 농작업 사고를 줄이자고 만든 사업이다.
축산악취개선은 갈래가 둘이다. 일반회계에서 30억 6000만 원, 융자에서 76억 5000만 원이 빠져 모두 107억 1000만 원이 줄었다. 악취는 축산 민원의 가장 큰 갈래이자 축사 인근 주민과의 갈등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도표에서 확인할 수 없는 항목도 있다. 학교우유급식은 352억 원에서 300억 원으로 52억 원, 귀농귀촌교육은 60억 8200만 원에서 40억 300만 원으로 20억 7900만 원 깎였다. 사유는 역시 집행부진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 수 없어서 남는다
왜 못 썼는지는 사업의 성격이 말해준다. 집행부진 감액의 3분의 2가 몰린 축사시설현대화는 융자 사업이다. 융자는 담보와 자부담, 사업계획 승인, 지방비 매칭이라는 관문을 차례로 통과해야 실제 집행으로 잡힌다. 축사 한 동을 고치려는 농가가 그 관문을 넘지 못하면 예산은 그대로 남는다. 축산분야ICT융복합확산은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어떤 기자재를 어떤 규격으로 넣을지 판단할 수 있어야 신청서를 쓸 수 있다.
농식품부는 이 사업들을 지출구조조정 대상으로 올리면서 사유란에 ‘집행부진’이라고만 적었다. 그러나 집행부진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을 찾지 않고 예산만 걷어내면, 스마트 축산 전환은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산을 없앤 탓에 늦어진다. 편성 단계에서 이 벽을 계산하지 않으면 증액은 이듬해 불용으로 되돌아온다.
소득·경영 안전망도 같은 잣대로 봐야 한다. 기본형 공익직불은 2조 9703억 원에서 3조 615억 원으로 늘고, 비진흥지역 밭의 지급단가는 논 수준에 가깝게 인상된다. 주요 농산물 평균 가격이 기준가격을 밑돌면 차액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전하는 농산물가격안정제 91억 원과 농작물 준보험 77억 원도 처음 편성됐다. 제도의 문을 연 것은 분명한 진전이다. 다만 어떤 품목을 어떤 기준가격으로, 얼마나 빨리 지급하느냐가 정해지지 않으면 첫해 집행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기후 재난이 상수가 된 시대에 이 두 제도는 최후의 보루다. 보루는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작동시키는 것으로 증명된다.
로봇 210대보다 로봇이 도는 환경이 먼저다
2027년 예산안의 무게추는 애그테크에 실려 있다. 농업 피지컬 AI 현장 확산에 208억 원이 새로 붙었고, 자율주행 트랙터 등을 공동 이용하는 AI 농기계 공유센터 15개소와 AI 농업로봇 210대 보급이 담겼다. 방향은 옳다. 다만 로봇 한 대가 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필요한 것은 로봇이 돌아갈 수 있는 농지 안의 스마트 환경, 수리 부품, 그리고 그것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첫해 성패는 몇 대를 보급했느냐가 아니라 그 로봇이 현장에서 실제로 돌아가는지에 달려 있다.
이 대목에서 축산분야ICT융복합확산의 전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2026년 본예산 534억 2500만 원(일반 234억 2500만 원, 융자 300억 원)이 편성됐던 이 사업은 집행부진을 사유로 2027년 140억 6200만 원만 남았다. 감액률 73.7%다. 농가에 기자재를 넣어주는 방식의 ICT 보급이 어떻게 멈춰 서는지를 축산이 먼저 보여준 셈이다. AI 농업로봇 210대가 같은 경로를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증명해야 할 지표도 분명하다. 무인자율 노지생산과 비료 사용량 절감 실증에 붙은 예산은 결국 인건비와 비룟값이라는 농가 경영비의 두 축을 얼마나 낮췄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도입 대수는 실적이지 성과가 아니다. 이 기술이 일부 대농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확대되는 공동영농법인을 통로로 삼는 설계도 함께 필요하다.
109개 통폐합과 동물복지진흥원 신설, 방향이 어긋난다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도 있다. 동물복지 정책 전담 기관인 ‘동물복지진흥원’ 설립 준비에 10억 원, 동물등록 기술 검증 체계에 5억 원, 펫보험 상품 개발 등에 활용하겠다는 (가칭) 동물의료정보통합관리시스템 구축에 39억 원이 신규로 마련됐다.
지출구조조정 명단에는 반대 방향의 숫자가 있다. ‘반려동물연관산업해외수출산업화’가 70억 1500만 원에서 23억 4100만 원으로 46억 7400만 원(66.6%) 깎였다. ‘동물보호시설환경개선’도 11억 5200만 원에서 8억 3300만 원으로 줄었다. 두 건 모두 사유는 집행부진이다. 이미 편성한 반려동물 예산은 쓰지 못해 걷어내면서, 새 기관과 새 시스템에는 54억 원을 붙였다.
정부조직법 제37조는 농식품부장관의 소관 사무를 농산·축산, 식량·농지·수리, 식품산업 진흥, 농촌개발 및 농산물 유통으로 규정한다. 반려동물 복지 행정이 그 안에서 어디쯤 놓이는지, 별도의 진흥원까지 필요한지는 따져볼 문제다. 더구나 정부는 지난 3일 109개 공공기관을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했다. 한쪽에서 기관을 줄이면서 다른 쪽에서 기관을 새로 세우는 것이 앞뒤가 맞느냐는 지적이 현장에서 나오는 이유다. 동물복지진흥원이 아니라 기술 진흥과 산업 발전, 수출 확대를 관장할 동물산업발전진흥원이 먼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국회 심의의 초점은 증액이 아니라 집행 설계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반려동물 정책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농식품부 예산으로 감당할 일과 다른 부처가 맡아도 될 일을 심의 과정에서 갈라야 한다는 뜻이다. 2027년 재량지출은 18조 289억 원으로 12.3% 늘고, 신규 사업은 40개·1조 7551억 원으로 2026년(53개·5305억 원)의 세 배가 넘는다. 사업 수는 줄었는데 금액은 3.3배다. 신규가 몰린 해일수록 첫해 불용 위험은 커진다. 사업마다 집행률 목표와 자부담·매칭 구조, 현장 전달 경로를 함께 따져 물어야 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예산안 발표 브리핑에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도 농업·농촌에 필요한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현장 체감은 편성액이 아니라 집행액에서 나온다. 22조 원이 얼마나 컸는지는 1년 뒤 불용액이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