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현의 포커스] 자율에 맡긴 예산, 수요까지 맡길 순 없다
농기계 임대사업 예산, 지자체 자율편성의 그늘
밭농업기계화 및 농기계 임대사업 관련 현장 담당자들은 “농기계 임대사업은 고령화가 화두인 미래 농업에 꼭 필요한 사업이며, 실제로도 지역 농가들에게 농기계 임대사업 수요가 높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최근 관련 전문가 및 학계에서 수요가 실제로 있어도 지자체에서 배제되거나 무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올해부터 농기계 임대사업 예산이 시·도에 총액으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농특회계에서 균특회계로 옮겨가면서 어느 사업에 얼마를 쓸지는 시·군이 정한다. 지역 실정에 맞게 쓰라는 취지다.
농기계 임대사업 관련 예산은 전년 대비 국비 기준 53억 원이 줄었다. 실제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시·군일수록 낙폭이 큰 편이었으며, 이 데이터를 확인하면 일부 지자체는 열악한 지역 재정 때문에 꼭 필요한 예산도 삭감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행정안전부 기준 공식 재정자립도의 평균은 47.3%이며 이는 대도시들의 가중치가 적용돼 평균값이 상당히 높다.
지방재정365의 농기계 임대사업 분야(운영부문)를 조회해 보면, 재정자립도 10% 미만인 10개 시·군 가운데, 화천군은 올해 당초예산에 아예 편성하지 못했고, 영동군, 영덕군, 봉화군은 각 60%가 넘게 깎였다. 그 뒤를 영양군(-39.7%), 양구군(-28.2%), 정읍시(-18.3%), 신안군(-13.7%), 산청군(-11.3%), 함평군(-9.7%)이 뒤따른다.
바뀐 구조에서 자율은 곧 선택이고, 선택은 경쟁을 전제로 한다. 농기계 예산은 이제 복지·문화·지역개발 사업과 동일한 테이블에서 경쟁해야 한다. 쓰던 부서가 계속 쓰는 관성 속에서 신규 진입은 어렵고, 농업은 지자체의 관심사에 따라 뒤로 밀린다. 도농복합도시이자 농업 예산이 전체 4%인 천안시는 2022년 이후 농기계 임대사업 예산을 한 차례도 편성하지 않았다.
밀려난 것은 예산이지 수요가 아니다. 지자체 재정자립도가 낮다고 해서, 농기계 임대사업 수요가 낮을까? 고령화와 인력난이 깊어질수록 임대 수요는 오히려 늘고, 임대는 결국 대행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 예산이 빠진 자리에 수요는 그대로 남는다. 추경으로 되살아난다 해도 사업계획과 장비 발주는 반년가량 밀린다. 농사에서 반년은 한 해다. 그 공백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지자체가 아니라 농기계를 빌리지 못한 농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임대사업소가 전국 493개소로 어느 정도 확충됐고 지자체의 추가 요청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예산 이양이 감액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요청이 없었다는 말과 필요가 없었다는 말은 다르다. 농기계 담당 정규직이 한 명뿐인 곳, 전문경력관이 퇴직한 뒤 계약직으로 자리를 메우고 있는 곳에서 새 사업을 설계하고 예산을 따낼 여력이 있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요청하지 못한 것과 요청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않으면, 가장 열악한 곳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통계에서 사라진다.
자율을 되돌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율에는 최소한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수요조사 결과가 예산 편성에 닿도록 하는 장치, 스마트농업 육성지구 선정처럼 지자체가 움직이는 국가사업 평가지표에 인력·조직 요건을 반영하는 유인, 임대사업소 인력을 지침이 아닌 법으로 떠받치는 일이 함께 수반돼야 한다. 권한을 넘겼다면, 그 권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확인할 책임은 여전히 중앙에 남는다.
지방 이양은 지역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그 믿음이 유효하려면 잘 해내지 못하는 지역에서 누가 그 몫을 감당하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트랙터를 빌리러 농업기술센터를 찾는 농가는 소속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고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