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국 농업 ODA ② 권택윤 전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의 한국 ODA에 대한 제언
농업 ODA에 2조 원 가까이 썼는데…투입 대비 성과 설명할 체계가 없다 보여주기식 지원 멈추고, 문제 해결형 · 전략형 ODA로 전환 필요
우리 국민이 먹는 식량의 절반 이상은 해외에서 들어온다.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식품주요통계 2025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식량자급률은 47.9%, 곡물자급률(사료용 소비 포함)은 21.6%에 머물렀다. 기후변화로 주요 곡물 생산국의 작황이 흔들릴 때마다 국내 식탁 물가가 요동치는 구조다. 해외 농업 현장의 정보와 협력 기반을 쌓는 일이 곧 식량안보와 맞닿아 있다는 얘기다. 공적개발원조(ODA)는 그 통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농업 ODA가 그런 역할을 해왔는지는 물음표가 붙는다.
국무조정실 ODA KOREA의 사업분야별 통계를 보면, DAC 가입 이후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0년부터 2025년까지 정부가 농업 분야에 지원한 양자 무상원조는 13억 5242만 달러다. 현재 환율(9월 17일 매매기준율 1368.3원)로 환산하면 약 1조 8505억 원으로 임업과 어업은 뺀 금액이다. 2026년 국제개발협력 종합시행계획에도 농림수산 분야에 2379억 원이 편성됐다.
문제는 2010년 이후 농업 분야에만 2조 원 가까운 세금이 투입됐지만, 이 돈이 전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답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이다. 평가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위원회 평가와 시행기관 자체평가가 매년 이뤄지고, 농업 분야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별도로 성과관리를 맡고 있다. 그러나 평가는 사업 단위로만 이뤄져 분야 전체의 누적 투입 대비 성과를 집계한 자료는 나오지 않는다. 지표도 연수 인원이나 시설 준공 같은 산출 중심이어서, 수원국 농가의 소득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는 사업이 끝나는 순간 추적이 끊긴다.
한국 농업 ODA의 성과를 묻기 위해 만난 코이카 권택윤 전문위원은 사업을 설계하고 집행한 당사자다. 권 전문위원은 2018년 2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농촌진흥청 기술협력국장과 국제기술협력과장을 맡아 23개국(현재 22개국) KOPIA 사업을 총괄했고,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49개국(재직당시)이 참여하는 농업기술협력협의체(AFACI·KAFACI·KoLFACI) 사무총장을 지냈다. 퇴임 후에는 코이카 농업전문위원, 아프리카벼연구소 이사, 아프리카개발은행 농업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공여국 밖의 시선까지 갖췄다. 성과가 났다고 말할 유인이 큰 자리에 있었던 인사의 지적이라는 점에서 그의 문제제기는 가볍지 않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최근 권 전문위원을 만나 ODA 현장의 문제점과 대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업마다 성과는 있는데, 합치면 설명이 안 된다”
권택윤 전문위원은 “작은 프로젝트별로는 성과가 다 있지만, 백화점이 층별 매출을 합쳐 전체 매출을 내듯 농업 ODA 전체의 효과를 함께 측정할 틀이 없다”며 “사용한 총액에 상응하는 성과가 있었느냐는 질문에서 ODA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전문위원은 스스로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국장 시절 늘 총투자 대비 성과를 납세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가 고민이었는데, 나도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며 “이 질문을 던지면 여러 곳이 불편하겠지만, ODA를 자랑하는 사업에서 실질적 성과를 내는 사업으로 바꾸려면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라고 강조했다.
불도저로 논 만들고 사진 찍으면 ‘성과’
권 전문위원은 현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인프라 지원의 사례로 탄자니아 잔지바르를 들었다. 논을 평탄화하면 겉흙이 깎여 나가고 척박한 생땅이 드러나 이듬해 수확량이 절반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 소득이 끊긴 농민들은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 예전 방식대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그는 "불도저로 논을 새로 만들어 몇천 헥타르를 개발했다고 사진을 찍지만 3~4년 뒤 가보면 풀과 나무만 무성하다"며 "진짜 성과는 농민들의 소득이 늘어 그들의 문제가 해결됐느냐에 있다"고 지적했다.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농지 훼손에 대해 한국농어촌공사 최찬원 농식품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한 달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해 점검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접수된 민원은 없었다”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실시한 탄자니아 기초조사에서도 생산성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농로와 논 사이에 단차가 생겨 현재 브릿지를 설치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며 “제기된 민원이 있었는지, 현장 상황이 어떤지 다시 확인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지원 농기계가 현지에서 방치되는 문제도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고 봤다. 한국은 경제성장 속에서 농협 융자, 농기계 구입자금 지원, 부채 경감 같은 제도가 함께 작동했기에 기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제도가 없는 개발도상국에 기계만 옮겨 놓으면 쓰일 수 없다는 것이다. 권 전문위원은 “한국 것을 가져가면 다 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문제가 시작된다”며 “기계가 녹슬었다는 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집약적인 한국 농업기술과 고가의 종자도 현지 농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기 쉽다. 권 전문위원은 “비싼 하이브리드 종자를 들고 가 자랑하지만 현지에서는 살 수가 없다”며 “ODA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지속성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는 없고, 부처는 흩어져 있고
권 전문위원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은 것은 사람이다. 해외 농업은 작물 생태부터 현지 제도와 문화까지 폭넓은 전문성이 필요하지만, 본업을 두고 잠시 파견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그는 “통역사를 데리고 비행기는 탈 수 있지만 그걸 전략적 성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문제”라며 “농업 ODA를 제대로 하려고 사람을 찾으면 없다”고 말했다. 교육통계서비스(KESS)에 따르면 2026년 기준 농대 입학생(전문대 포함)은 6294명이다. 이들 중 최소 수십 명이라도 해외농업 전문인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추진 체계의 분절도 걸림돌이다. 농업 ODA는 코이카, 농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 농진청 코피아(KOPIA) 등이 제각각 추진한다. 감사원이 2026년 1월 공개한 한국국제협력단 정기감사에서도 지정된 연계사업 126건 가운데 연계 내용이 구체적인 29건을 점검한 결과 19건(65.5%)이 실제로는 연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제시한 사례로 농촌진흥청이 우량 품종을 개발하고 코이카가 이를 보급하기로 한 가나 쌀 가치사슬 사업은 코이카가 종자를 구매·배포할 시점에 농진청의 품종 개발이 끝나지 않아 연계가 무산됐다. 또한, 코이카의 농업기계·스마트팜 융복합 기술 연수는 농식품부의 라오스 농기계 활용도 제고 사업과 묶여 있었지만, 다국가 연수로 진행돼 라오스 참가자가 한 명도 없었다. 감사원은 애초 연계가 어려운 사업이 연계사업으로 선정되고 이행 지도·감독도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적은 돈으로 성공한 사례는 ‘문제 해결’에 있었다
권 전문위원은 성공 사례도 분명히 있다고 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강경호 연구관은 한-아프리카 농식품기술협력협의체(KAFACI)를 통해 세네갈에 파견돼 현지에 육종기지를 세우고 통일형 벼와 아프리카 유전자원을 교배한 품종을 개발했다.
이렇게 나온 ‘이스리’는 현지에서 전국적으로 재배되던 사헬 품종보다 수확량이 두 배 많고 밥맛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세네갈 2품종을 포함해 말라위·말리까지 5개 품종이 개발됐다. 한국이 답을 들고 간 것이 아니라 현지 과학자들이 농진청에 와 직접 연구하고, 그 결과를 자국 정책에 반영하도록 도운 방식이다. 권 전문위원은 “OECD에서 혁신적 국제협력 우수사례로 선정됐는데, 돈은 얼마 들지 않았다”며 “그냥 돈을 갖다 준 게 아니라 문제를 함께 해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단위의 전략형 ODA가 자국의 이익으로도 돌아온 사례도 있다. 권 전문위원은 “과거 일본은 장기간 브라질 콩 개발을 지원해 브라질이 세계 최대 콩 수출국으로 올라서는 데 기여했다”며 “일본 해외농업연구센터 담당자에게 직접 들으니 일본 납세자들도 해마다 그 이상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분석하더라”며 “그런 성과가 있으면 누가 예산을 따지겠느냐”고 말했다.
기회는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게 권 전문위원의 진단이다. 권 전문위원은 “아프리카 벼 농사에서 수확기 새 떼로 인한 손실이 평균 30%에 이른다는 연구가 있다”며 “이런 현장 문제를 풀 장치를 한국 기업이 개발하면 정부가 사주지 않아도 농민들이 사가고, 결국 문제를 해결해 주면 우리에게도 기회가 오는 것이 상생”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전략형’ 내세웠지만
정부도 방향 전환을 예고했다. 농식품부는 2026년 2월 수출과 연계한 전략형 농업 ODA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다만 성과를 측정할 체계와 이를 맡을 전문 인력 없이 구호만 바뀐다면 또 하나의 분산형 지원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 전문위원은 대안으로 해외농업개발을 전담할 독립 전문재단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사업만 잘하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국제기구 자금도 끌어올 수 있다”며 “누구를 탓하자는 게 아니라 ODA를 자랑에서 기회를 만드는 사업으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