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농진원 양민호 종자사업본부장 “박람회만으로는 안 된다”…중견 종자기업 키워야
10회 맞은 국제종자박람회, 올해 농민·지역 주민으로 관람 대상 넓혀 종자업체 92%가 판매액 5억 원 미만…골든시드프로젝트 후속 연구개발 촉구
AI브리핑
농진원 양민호 종자사업본부장은 국내 종자업체 92.3%가 연 판매액 5억 원 미만인 구조에서 박람회 효과를 높이려면 R&D·재정 지원과 생산능력을 갖춘 중견 종자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500억 원 내외 중견기업을 10곳 이상 키우고, 우수 품종 후속 R&D와 전문인력 양성, 수출 이후 현지 적응 기간을 지원할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종자원의 ‘2024년 종자산업 현황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답한 국내 종자업체 2561곳 가운데 종자 판매액이 연 5억 원 미만인 업체는 2365곳으로 92.3%에 이른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국제종자박람회를 주관하는 한국농업기술진흥원(농진원) 양민호 종자사업본부장은 박람회의 효과를 키우려면 이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다. 양 본부장에 따르면 연 매출 1000억 원을 넘는 종자기업은 한 곳, 500억 원대 중견기업도 한 곳뿐이다. 그는 “박람회와 R&D, 정책적 지원이 맞물려 가야 박람회 효과도 커질 수 있다”며 “박람회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지난 22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민간육종연구단지에서 열린 ‘2026 국제종자박람회’ 현장에서 양 본부장을 만났다.
토양·기후 비슷한 나라 바이어 불러 전시포에서 품종 검증
양 본부장은 지난 10년간 박람회가 남긴 가장 큰 의미로 ‘해외 경쟁력 검증 통로’를 꼽았다. 국내 유일의 종자 박람회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 종자가 해외에서 통하는지 확인할 길이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다. 박람회는 토양·기후 여건이 비슷한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 바이어를 초청한다. 전시장 실내 대신 실제 전시포에서 작물 크기와 생육 상태, 장단점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이다.
양 본부장은 “바이어들이 현장 체감형으로 계속 접촉하다 보니 수출이 매년 80억~90억 원 사이로 일어나고 있다”며 “종자 비즈니스의 저변 확대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금액은 박람회에서 맺은 수출 협약 금액 기준이다.
올해는 농민·주민 초청…461개 품종 실물 전시
올해 박람회는 성격을 바꿨다. 9회까지는 바이어 중심의 기업 간 거래(B2B) 행사로 일반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올해는 지역 농협 조합원과 농민을 대거 초청하고 전북권 주민 홍보도 강화했다. 첨단 농기계 체험, 농자재, 치유농업 등 종자 전후방 산업 전시도 늘렸다. 최종 집계 전이었지만 양 본부장은 “작년보다 관람객 수가 많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비즈니스 박람회에 그치지 않고 국민이 종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안호근 농진원장의 방향에 따라 국민 친화적으로 바꿨다는 설명이다.
올해 전시포에는 25개 종자기업이 30개 작물, 325개 품종을 심었다. 농촌진흥청 등 공공기관 품종 136개를 더하면 모두 461개 품종이 실물로 전시됐다. 기업 전시품종 가운데 기후변화 대응 품종은 14개 작물, 69개 품종으로 양배추·상추·배추·무 순으로 많았다. 대부분 고온이나 저온에 견디도록 육성된 품종이다. 해외 바이어는 멕시코·중국·베트남 등에서 88명이 찾아 2025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농진원은 행사가 끝난 뒤 바이어 관심 품종을 분석하고 있다.
협약 금액이 곧 수출은 아니다…현지 적응 기간 버틸 마중물 필요
올해 박람회의 수출 협약 목표는 83억 원 이상이다. 양 본부장은 숫자 자체보다 사후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협약 금액에는 의향서나 양해각서(MOU) 단계도 포함돼 있어 전액이 실제 거래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농진원은 협약 이후 추적 조사로 이행 상황을 점검한다. 부족한 점은 참가 기업에서 피드백을 받아 이듬해 박람회에 반영한다. 기업이 직접 섭외한 해외 바이어의 초청도 지원하고, 박람회 전후로 사전·사후 바이어 미팅도 진행한다.
박람회가 ‘보여주는 행사’를 넘어 실제 거래 시장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양 본부장은 종자 수출의 특성부터 짚었다. 한국에서 좋은 품종이라도 현지에서 그 형질이 제대로 발현되는지 적응성 시험을 거쳐야 하고, 실제 보급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판매액 5억 원 미만 기업이 대부분인 구조에서는 그 기간을 자력으로 버티기 어렵다.
그는 “박람회는 좋은 품종을 개발했으니 보러 오라는 자리”라며 “수출 계약 이후 실제 판매가 이어지는 단계까지 가려면 그 기간 동안 마중물 역할을 할 재정적 지원이 보강돼야 실질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출 품목이 채소 종자에 몰려 있다는 지적에는 현실적인 한계를 설명했다. 민간 육종기업이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고부가가치 채소류다. 화훼는 민간육종연구단지 입주 기업 중에도 다루는 곳이 거의 없다. 벼·보리 등 식량작물은 부가가치가 낮아 민간 연구개발(R&D)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국가가 주도하는데, 국가는 직접 수출에 나서기 어렵다. 양 본부장은 “작목 확대는 필요하지만 당분간은 배추·고추·브로콜리·양배추 같은 채소 종자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종자 가공처리센터·디지털 육종으로 중소 종자기업 지원
종자사업본부는 박람회 외에도 민간육종연구단지 유지·보수와 입주 기업 교류 지원을 맡고 있다. 단지 안 종자 가공처리센터는 건물 공사를 마치고 설비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종자는 채종 뒤 정선·소독·코팅·포장을 거쳐야 판매할 수 있는데, 국내에는 민간 채소 종자를 맡길 곳이 많지 않다. 가공처리센터는 이 과정을 저렴한 비용으로 대행해 중소 종자기업의 판매를 돕는 시설이다.
디지털 육종 지원과 DNA 분석 서비스도 운영한다. 양 본부장은 “품종 하나를 육종하는 데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데, 디지털 육종으로 이를 절반 이하로 줄이는 것이 목표”라며 “중소기업들이 저렴한 가격에 활용할 수 있어 수요가 꾸준하다”고 말했다.
500억 원 내외 중견 종자기업 10곳 이상 키워야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양 본부장은 박람회보다 기업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지난해 부임해 1년간 현장을 지켜보니 박람회에서 바이어를 만나도 수출 물량을 감당할 생산 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종자기업들이 육종할 수 있는 자본력과 생산 능력을 갖춰야 박람회도 빛을 발할 수 있다”며 “박람회에 아무리 돈을 쏟아붓는다 한들 기업이 크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양 본부장은 국내 종자산업의 ‘허리’가 사라진 원인으로 외환위기를 들었다. 당시 국내 주요 종자기업의 지분이 해외로 넘어가면서 중견기업층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는 “500억 원 내외의 튼튼한 중견기업이 적어도 10곳 이상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본부장은 강한 종자기업을 키우는 데 필요한 정책으로 후속 R&D와 전문인력 양성을 꼽았다. 그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 것은 우수 품종 R&D에 대한 정책적 투자다. 2021년 골든시드프로젝트(GSP)가 끝난 뒤 디지털 육종 지원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사업 규모나 지원 분야로 볼 때 이를 GSP의 후속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기업들의 시각이라고 양 본부장은 설명했다. 그는 “GSP가 끝난 지 5~6년이 지났다”며 “2단계 GSP 사업이 만들어져야 성장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대다수 기업의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출, 품종 개발, 인재 양성 등 종자기업별 맞춤형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력 문제도 짚었다. 그는 “우수한 인재가 종자기업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전문인력 양성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며 “종자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이 더 개발돼야 한다는 현장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농진원은 입주 기업 17개사로 구성된 민간육종연구단지 입주기업협의회 등을 통해 이 같은 현장 의견을 농림축산식품부에 계속 전달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준비 중인 종자산업 관련 보고서에도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는 “밸류체인의 시작은 종자기업”이라며 “박람회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고, 강한 종자기업이 박람회를 통해 더 뻗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