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브리딩] 고온·뿌리혹병 이긴 배추 ‘청명가을’ 대통령상…NH농우바이오 단고추는 유럽 공략
일본산 ‘추광’ 대체하며 가을배추 재배면적 29% 차지…순무 자원으로 뿌리혹병 잡아 이탈리아노 고추 ‘19ITP4719’ 국무총리상…스페인서 재배, 올해 종자 수출 최대 180만 달러 전망
AI브리핑
NH농우바이오의 배추 ‘청명가을’은 고온결구력과 뿌리혹병 레이스 4 저항성을 바탕으로 ‘2026 대한민국우수품종상’ 대통령상을, 유럽 수출용 단고추 ‘19ITP4719’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청명가을은 2025년 가을배추 재배면적의 29%를 차지했고, 19ITP4719 종자 수출액은 2025년 112만 달러를 기록했다.
배추는 18~20도에서 잘 자라는 호냉성 작물이다. 그러나 최근 여름철 강원 고랭지 기온은 30도를 웃도는 날이 잦다. 추석 무렵 출하하는 조기가을 배추는 바로 이 한여름에 밭에 심겨 더위를 견뎌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이 작형 종자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 사카타종묘의 ‘추광’이 90% 가까이 차지해 왔다.
NH농우바이오는 이 시장을 국산 품종으로 파고든 배추 ‘청명가을’로 국립종자원 주관 ‘2026 대한민국우수품종상’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같은 회사가 유럽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이탈리아노 타입 단고추 ‘19ITP4719’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두 품종을 개발한 주역들을 만났다.
청명가을, 여름배추·가을배추 특성 함께 갖춰야
경기 여주시 NH농우바이오 여주육종연구소에서 만난 채원기 소장은 조기가을 작형 육종의 어려움부터 설명했다. 한여름에 고랭지에 심어 고온기를 나야 하는 만큼 더위에 강한 내서성과 속이 차는 고온결구력이 필수다. 반면 출하는 추석 무렵, 사실상 가을이어서 수분이 적당하고 김장했을 때 맛있는 가을배추의 품질도 갖춰야 한다. 채 소장은 “여름배추와 가을배추의 특성을 모두 가져야 하는 품종이라 육성이 까다로웠다”며 “배추는 선선한 기후를 좋아해 환경이 나빠지면 약해지고 병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연구팀이 특히 공을 들인 것은 뿌리혹병이다. 뿌리혹병 가운데서도 레이스 4는 독성이 강해 기존 배추 자원으로는 저항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순무 유전자원인 ‘ECD4’에서 내병성을 끌어왔고, 병리접종시험과 분자마커 이용 선발(MAS)을 활용해 계통을 선발했다. 2003년 계통 육성을 시작해 2015년 조합 작성, 2016~2017년 지역적응시험을 거쳐 2018년 품종을 출시했고, 2020년 7월 품종보호 등록(제8295호)을 마쳤다. 채 소장은 “순무를 배추 형태로 끌어올리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돌아봤다.
뿌리 활력은 현장에서 먼저 확인됐다. 채 소장에 따르면 춘천 지역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추광과 청명가을이 함께 심겨 있던 밭이 물에 잠겼는데, 추광은 상당수가 상한 반면 청명가을은 침수 뒤에도 많이 살아났다.
성과는 숫자로 이어졌다. 청명가을은 2025년 한 해 매출 15억 4000만 원을 기록했고, 2018년부터 2025년 10월 기준 누적 매출액은 60억 5000만 원에 이른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8%다. 회사 측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 재배면적 자료와 자사 매출을 바탕으로 산정한 결과, 2025년 전국 가을배추 재배면적 1만 3182ha 가운데 청명가을은 3848ha로 29%를 차지했다. 초기에는 9월 말~10월 초 수확하는 조기가을 작형에 머물렀지만, 이상기후 속에서도 작황이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9월 말~11월 중순 수확하는 가을 작형 전반으로 재배가 넓어졌다.
최근에는 해발 800m 안팎 이기작(1년 2작) 가운데 7월 말~8월 초에 심는 뒷그루로도 들어가고 있다. 수량에 대해 채 소장은 “노지 작물은 환경이 조절되지 않아 정량화가 쉽지 않지만 기존 품종보다 10~20% 정도 늘었다고 보면 된다”며 “반도체처럼 100%, 200%씩 오르는 분야가 아니어서 이 정도 개선이면 굉장히 많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채 소장은 청명가을도 한계에 다가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배추가 버틸 수 있는 온도를 훌쩍 넘어 35도까지 오르니 사실상 키울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며 “온도가 높아지면 온갖 병이 다 붙기 때문에 다음 품종은 뿌리혹병과 바이러스병 등에 함께 강한 복합내병성 쪽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위에 강한 배추 소재가 거의 없어 무 등 다른 작물에서 자원을 찾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NH농우바이오 입사 27년째인 채 소장은 수상 소감으로 “육성가로서 열심히 살아와 이런 영광을 얻었다”며 “제가 만든 품종으로 농민들이 소득을 올리고, 우리 배추로 농업경제가 성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단고추 ‘19ITP4719’, 라이크즈반 독주 시장서 새 세그먼트 열어
국무총리상을 받은 ‘19ITP4719’는 유럽 시설재배용 이탈리아노 타입 단고추다. 유럽 단고추 주산지인 스페인 남부 알메리아의 시설하우스 단지에서 재배돼 독일·노르웨이·덴마크 등 유럽 각지로 공급된다. 현지에서는 우리나라의 오이맛고추처럼 주로 샐러드 등 생식용으로 소비된다. 회사가 국립종자원에 제출한 수출 실적서에 따르면 이 시장은 네덜란드 라이크즈반(Rijk Zwaan) 품종이 70~75%를 점유하고 있다.
NH농우바이오 고추연구2팀 정영호 팀장은 농가와 유통상인, 소비자를 동시에 만족시킨 것을 이 품종의 경쟁력으로 꼽았다. 흰가루병 내병성을 갖췄고 저온기 착과성이 좋아 생산량이 많다. 저장성이 뛰어나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도 과실이 쉽게 무르지 않고, 끝이 둥근 과형이어서 유통 중 상처도 적다. 녹색에서 진한 적색으로 익으면서 당도가 높아지는 점도 차별점이다. 정 팀장은 “원래 맛있는 품종은 생산량이 적은데 이 품종은 맛, 생산량, 저장성 세 가지를 다 갖췄다”며 “기존 이탈리아노 타입을 풋고추처럼 먹던 시장에서 맛 중심의 다른 세그먼트로 옮겨가 현지에서 비교적 비싸게 팔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출 실적은 상품화 이후 매년 가파르게 늘었다. 종자 수출액은 2023년 22만 달러, 2024년 65만 달러, 2025년 112만 달러로 증가했고, 올해 상반기에만 90만 달러를 기록해 회사 측은 연간 160만~180만 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2025년 수출 단가는 종자 1kg당 2만 달러 수준이다. 정 팀장은 시장 점유율을 20% 정도로 추산했다.
개발에는 10년 넘게 걸렸다. 2010년 무렵 이탈리아노 타입 개발에 착수했고, 2015년 골든시드프로젝트(GSP) 지원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수출용 육종에 나섰다. 품종명의 ‘19’는 조합을 작성한 2019년, ‘ITP’는 이탈리아노 타입 고추(Italiano Type Pepper)를 뜻한다. 유전자원은 현지 출장을 통해 직접 수집했고, 국내에서 만든 조합을 알메리아로 보내 2~3년간 현지 평가를 받은 뒤 거래처 승인을 거쳐 2023년 상품화됐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중해 기후와 달리 국내에서는 겨울철 시험에 난방비 부담이 커 시험 여건에 한계가 있었다. 정 팀장은 “현지 환경이 다른데도 국내에서 개발해 그 시장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품종을 개발한 연구원은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회사는 현재 이탈리아노 타입 육종 계통을 알메리아와 환경이 비슷한 튀르키예 안탈리아 법인으로 모두 넘겨 현지에서 1차 선발과 적응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정 팀장은 “처음 진입하기가 어렵지 한번 들어가면 그다음은 수월하다”며 “이 품종이 2~3년 더 유지되는 동안 내병성을 추가한 후속 품종을 계속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이름도 없는 한국 회사 종자를 누가 시험해 주려 했겠느냐”며 “유럽의 글로벌 기업들이 파는 시장에서 우리 품종이 팔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10년 넘는 육종, “품종만으론 기후변화 못 막아…기반 투자 뒷받침돼야”
두 품종은 모두 시장에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청명가을은 계통 육성부터 출시까지 15년, 19ITP4719는 개발 착수부터 상품화까지 13년 안팎이 소요됐다. 채 소장은 이런 성과가 이어지려면 품종 개발만으로는 부족하고 재배 현장과 연구 기반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은 품종 개발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그가 각종 기후변화 대응 회의에서 제시해 온 방안은 세 가지다. AI·ICT를 결합한 온도 변화 예측과 관배수·차광 시설 같은 재배환경 개선, 한여름 재배를 피하고 봄 재배 물량을 저장해 공백기를 메우는 작형 전환과 저장시설 확충, 그리고 고온기를 조금 비켜서라도 재배할 수 있는 품종 육성이다.
산업 기반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채 소장은 정부가 디지털 육종을 국책과제의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위한 스마트팜·영상·드론·기후관측·유전체 데이터 인프라에는 최소 300억 원이 들어 국내 종자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농업 분야 국책과제 예산이 크게 줄었다”며 “종자 주권을 한번 빼앗기면 복구가 어렵고 먹거리를 내주는 상황이 올 수 있는 만큼, 기간산업 보호 차원에서 예산을 계속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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