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기철 유럽사무소장 “첫 관문으로는 독일을 권하고 싶다”
유럽 시장의 한국 농식품 ③농업기술은 독일에서, 기존 장비에 붙이는 기술부터 “전시회 시연을 잘하는 것과 농번기 10시간 연속 작업을 수년간 책임지는 것은 다른 문제” EU 데이터법·수리할 권리 대비 없으면 농번기 고장 한 번이 계약 해지로 이어질 수도 EU 청년농 지원은 직접지불 예산의 최소 3%…지원금 크기보다 패키지 설계가 핵심
〈편집자주〉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유럽 시장에 선 한국 농식품의 현주소를 두 차례 기획으로 짚었다. ①편은 수출 통계에 드러난 품목별 격차와 재주문의 문제를, ②편은 2026년 본격화한 EU 규제 장벽과 대응 실무를 다뤘다. 두 기획의 바탕이 된 것은 한국농업기술신문의 해외 필진인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김기철 유럽사무소장의 서면 인터뷰다. 마지막 회는 한국 애그테크 기업의 유럽 진입 경로와 유럽 청년농 정책 등 기획에 담지 못한 대목을 문답 형식으로 싣는다.
김기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장은 유럽 농기계 시장의 화두가 더 이상 기계의 크기가 아니라고 진단했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를 연결하는 표준, 필지 단위 데이터와 작업 이력, 카메라와 AI를 이용한 선택적 방제, 자율주행과 예지 정비가 한 묶음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농가가 장비 가격만큼 데이터 소유권과 가동 중단 위험을 따진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한국 기업이 센서와 통신, 제어, 빠른 제품 개발에 강점이 있지만 유럽 농가가 요구하는 다년간의 내구성 데이터와 표준 기반 상호운용성, 다국어 매뉴얼, 부품과 정비망에서는 부족함을 보일 때가 있다고 봤다. 진입 경로를 잘못 잡으면 기술력과 무관하게 문턱에서 멈출 수 있다는 경고다.
김기철 소장은 2012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권역에 문을 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를 개소 때부터 이끌고 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가 유럽에 설치한 첫 사무소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8월 26일 김 소장에게 6개 블록 25개 문항의 질의서를 보냈고, 9월 15일 답변을 받았다.
농식품은 핵심 축, 광주 기술·제조업은 두 번째 축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를 소개해 달라.
“유럽사무소는 2012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권역에 문을 열었다. 한국 지방자치단체가 유럽에 설치한 최초의 사무소다. 설립 당시 전남은 육상·해상풍력 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던 시기였고, 유럽의 선진 풍력 기업과 관련 기술·투자를 지역으로 유치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당시에는 사업 구상과 기반 조성 단계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동안 축적된 정책과 산업 기반을 토대로 지역 에너지산업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외 기업과 기술을 발굴하고 관계를 구축해 온 노력이 지역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사무소의 역할도 기업 수출 지원과 바이어 발굴, 지방정부 간 교류, 관광·문화 홍보, 유럽의 정책과 시장 동향 파악 등으로 확대됐다.”
-올해 7월 1일 통합특별시 출범으로 사무소의 소관이 바뀌었다. 업무 범위와 인력, 예산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가장 큰 변화는 서비스 대상과 산업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전남의 농수산식품과 중소기업 제품, 지역 교류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광주의 자동차·부품, 에너지, 의료·헬스케어, 인공지능 등 도시형 산업과 기술 기업까지 함께 보게 됐다. 유럽 시장에서는 농식품과 공산품의 유통 경로와 규제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통합은 단순히 업무량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산업별 지원체계를 더 정교하게 나눠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농업·농식품의 비중이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무소가 축적해 온 아마존 브랜드관, 상설 판매장, 바이어 네트워크와 최근 EU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 대응 지원 업무가 모두 농식품 수출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다만, 통합에 따라 농식품을 핵심 축으로 유지하면서 광주의 기술·제조업을 두 번째 축으로 키우는 방향으로 확대하고 있다.
인력과 예산은 통합에 맞춰 실제 업무량과 전문 분야를 반영해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특히 식품 규제, 기술 인증, 디지털 마케팅을 한 팀이 모두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본청·전문 기관·현지 파트너와의 협업을 촘촘히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사무소장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의 지방정부와 기업이 유럽의 제도·시장·기관을 이해하도록 돕고, 반대로 유럽의 바이어와 파트너가 우리 지역의 기업과 기술을 신뢰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다. 최근에는 농수산식품 수출, 온라인·오프라인 유통망 개척, EU 규제 대응, 지방 정부 교류와 농업 기술 협력에 특히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유럽 농업기술 첫 관문은 독일…기존 장비에 붙이는 기술부터
농식품 수출이 규제와 서류의 문제로 좁혀지는 동안, 사무소가 두 번째 축으로 꼽은 기술·제조업에서는 다른 종류의 장벽이 기다린다. 유럽 농기계 시장은 오랜 거래 관계와 촘촘한 정비망 위에 서 있고, 신규 진입자에게 요구하는 것도 성능만이 아니다. 김 소장에게 한국 애그테크 기업의 현실적인 진입 경로를 물었다.
-한국 농업기술 기업이 유럽에 진출한다면 어느 나라, 어느 분야가 가장 현실적인 관문인가.
“첫 관문으로는 독일을 권하고 싶다. 농기계·부품·정밀농업의 큰 시장이 있고, 농기계공동이용조직, 작업 대행업체, 연구 기관, 전시회를 통해 실제 농가 실증 파트너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성기계를 한 번에 판매하기보다 센서, 비전, 작업 모듈, 예지 정비, 에너지관리처럼 기존 장비에 붙일 수 있는 기술부터 시작하면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시설원예 기업은 네덜란드가 기술 수준은 가장 높지만 경쟁도 치열하다. 완성형 스마트팜을 그대로 수출하기보다 현지 시스템 통합업체와 손잡고 에너지 절감, 작물별 제어, 노동력 절감처럼 분명한 틈새를 공략해야 한다. 프랑스의 농업로봇 시장도 유망하지만 현지 판매·정비 파트너와 장기간 실증이 필수다. 결국 국가는 기술 분야와 파트너에 따라 선택해야 하며, 유럽 전역을 한 번에 공략하는 방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유럽 농가는 데이터 소유권과 ‘수리할 권리’에 민감하다. 한국 스마트팜·농기계 기업이 이를 준비하지 않고 진입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히나.
“유럽 농가는 장비 가격만큼 데이터와 가동 중단 위험을 본다. EU 데이터법은 연결 제품 사용자가 자신이 생성한 데이터에 접근하고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강화했다. 장비 데이터를 제조사 서버에만 가두거나 다른 농장 관리 시스템으로 내보낼 수 없다면, 계약 단계에서부터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수리할 권리’는 모든 농기계에 하나의 규칙으로 적용되는 표현은 아니지만, 농가가 요구하는 핵심은 분명하다. 합리적인 기간에 부품을 공급하고, 진단 정보와 정비 매뉴얼을 제공하며, 현지에서 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준비하지 않으면 농번기 고장 한 번이 계약 해지·손해배상·평판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진출 제품에는 데이터 내보내기 기능과 외부 시스템 연동 방식, 사용자별 접근권한 관리, 오프라인 운용 기능뿐 아니라 부품목록과 원격진단 체계를 갖춰야 한다. 또한 고장 접수 후 대응 시간과 수리 기한, 부품 공급 기간 등 현지 사후관리 기준을 제품 설계와 진출 계획 단계부터 마련해야 한다.”
-최근 유럽 농기계·정밀농업 흐름 가운데 한국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무엇인가.
“최근 흐름의 중심은 더 큰 기계 자체보다 연결성과 작업 결과다. 서로 다른 제조사의 장비를 연결하는 표준, 필지 단위 데이터와 작업 이력, 카메라·AI를 이용한 선택적 방제와 제초, 자율주행, 전동화·대체 연료, 예지 정비, 작업 대행 서비스가 함께 움직인다. 기술의 성능만큼 농가의 기존 장비와 연결되고 규정 준수 자료를 자동으로 남기는 능력이 중요하다.
한국 기술은 센서, 통신, 제어와 빠른 제품 개발에는 강점이 있다. 다만 유럽 농가가 요구하는 다년간의 내구성 데이터, 표준 기반 상호운용성, 다국어 매뉴얼, CE 인증·사이버보안·데이터 거버넌스, 부품과 정비망에서 부족함을 보일 때가 있다. 전시회 시연을 잘하는 것과 농번기 10시간 연속 작업을 수년간 책임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유럽형 제품개발은 현지 실증과 서비스 설계를 연구개발(R&D)의 일부로 봐야 한다.”
EU 청년농 정책, 지원금 크기보다 농지·기술·판로 패키지
유럽 농촌도 고령화와 후계 문제를 겪는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 다만 대응 방식은 차이가 있다. 김 소장은 EU가 청년농 지원을 단일 사업이 아니라 여러 제도의 묶음으로 설계한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했다.
-유럽의 청년농 지원·세대교체 정책 가운데 한국이 참고할 만한 제도는 무엇인가.
“EU 공동농업정책(CAP)은 회원국이 직접지불 예산의 최소 3%에 해당하는 재원을 청년농 지원에 쓰도록 하고, 청년농 추가소득 지원, 창업 지원, 투자 지원, 농촌 사업 창업을 조합한다. 여기에 국가별로 농지 임대·매입, 승계, 연금, 저리금융, 교육·자문을 연결한다. 중요한 점은 창업 자금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농지·기술·판로·생활 기반을 묶어 본다는 것이다.
한국이 참고할 부분도 ‘지원금의 크기’보다 패키지 설계다. 은퇴농과 청년농을 연결하는 승계 중개, 초기 5년의 소득 안정, 공동 농기계와 전문 작업 서비스, 경영·기술 멘토링, 지역 내 주거·돌봄·교육을 함께 다뤄야 한다. 청년을 농촌에 데려오는 것보다 10년 뒤에도 농업을 계속할 수 있는 수익모델과 조직을 만드는 것이 세대교체 정책의 핵심이다.”
-앞으로 유럽사무소가 이뤄내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사무소의 지원을 단순한 상담이나 행사 참가에서 끝내지 않고, 기업이 실제로 규제 서류를 완성하고 재주문과 현지 실증까지 이어가는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첫째, PPWR 대응지원센터를 전남광주형 EU 규제 대응 플랫폼으로 정착시키겠다. 향후 1년은 참여기업의 제품별 포장 구성표를 작성하고, 포장재 공급업체 자료를 확보해 기술문서(TD)와 적합성선언서(DoC)를 실제로 완성하는 데 집중하겠다. 이 과정에서 개발한 자료 요청서와 점검표, 문서 작성 양식을 표준화하고, 반복되는 보완사항은 기업 정보를 제외한 사례집으로 만들겠다. 이후에는 기업 수요와 시급성을 기준으로 식품 접촉 안전, 산림전용방지, 탄소·제품 안전 및 데이터 규제까지 지원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둘째, 수출 지원의 기준을 ‘몇 개 제품을 입점시켰는가’에서 ‘얼마나 팔리고 다시 주문받았는가’로 바꾸겠다. 아마존과 상설 판매장에서 확보되는 판매량, 소비자 반응, 반품 사유와 재주문 데이터를 제품별로 분석해 가능성이 높은 제품에 마케팅을 집중하겠다. 전남의 농수산식품과 광주의 디자인·포장·디지털 마케팅 및 제조 기술을 연결한 공동 판촉도 시도해, 단발성 판매가 재주문과 장기 유통 계약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
셋째, 농업기술 분야에서는 독일과 네덜란드의 농가 조직, 연구 기관 및 농기계 딜러를 대상으로 기술 수요를 먼저 조사한 뒤, 국내 기업의 스마트팜·농기계 가운데 현지 적용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선정하겠다. 전시회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농가에서 한 작기 동안 실증하면서 생산량, 노동시간, 에너지·용수 사용량, 고장과 가동 중단 시간 등을 수치로 확인하겠다. 실증 단계부터 현지 설치·교육·수리를 담당할 서비스 파트너를 참여시켜, 실증 종료 후에는 판매와 유지보수 계약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전남광주 기업이 유럽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안정적인 판로와 현지 파트너를 확보하도록 돕는 것이다. 일회성 수출을 재주문과 장기계약으로 연결해 기업의 유럽 수출 확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
〈김기철 소장 프로필〉
김기철 소장은 한국에서 환경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01년 독일로 건너가 뤼네부르크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 연구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대한상공회의소 산하 지속가능경영원과 삼정KPMG에서 지속가능경영 컨설팅을 했고, 다시 독일로 이주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유럽연구소 기술경영팀과 한·EU 연구비즈니스협력센터에서 기술 사업화와 국제협력 업무를 맡았다. 2012년 5월 전라남도 유럽사무소 설립(6월 개소) 때부터 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2026년 7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출범 이후 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를 이끌고 있다. 한국농업기술신문 해외 필진으로 유럽 애그테크·농식품 시장 동향 등에 대해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이 인터뷰는 2026년 8월 26일 질의서 송부, 9월 중 서면 회신으로 이뤄졌다. 유럽 시장에서 한국 농식품이 놓인 좌표와 EU 규제 대응 실무는 [기획] 유럽 시장의 한국 농식품 ①·②편에서 다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