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호 칼럼] 농업을 배우던 학생에서 농업을 가르치는 교사로
농업 기술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황민호 칼럼] 원주 영서고등학교 산업기계과 황민호 교사
나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조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며 고추와 감자, 고구마를 심고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일을 거들었다. 당시에는 그 시간이 특별한 농업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농사는 조부모님의 생업이자 가족의 일상이었고, 나는 그저 필요한 일손을 보탰을 뿐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흙을 만지고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농작업을 경험했던 그 시간이 내가 농업을 처음 배운 교실이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 진학을 고민하던 중 조부모님께서는 기숙사와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홍천농업고등학교를 알게 되셨고, 나는 홍천농업고등학교 농업경영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형편을 고려한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선택이 앞으로 내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흙을 만지던 시골 소년, 농업기계의 매력에 눈뜨다
고등학교에서는 조경과 농업기계를 공부했다. 조경 공부를 통해 조경기능사를 취득했고, 당시 FFK 전진대회로 불리던 전국 단위 농업계고 학생 경진대회의 농업기계 분야에도 출전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농업기초기술, 농업이해, 농업정보관리, 농업기계 등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단순히 교과서를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엔진에서 발생한 동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기로 전달되는지, 유압장치는 어떤 원리로 힘을 전달하는지, 각각의 부품은 왜 그러한 구조와 형상으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고 이를 실제 기계와 연결해 생각해야 했다.
그렇게 농업기계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에서 1학년 때 동메달, 2학년 때 은메달, 3학년 때 금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메달을 따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대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따로 있었다. 농업기계라는 분야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아가 내가 배운 농업기계를 언젠가 다른 학생들에게 가르쳐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다.
인생의 길을 열어준 두 은사님과의 만남
그 목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두 분의 은사님이 계셨다. 담임선생님이셨던 서윤희 선생님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와 훗날 내가 진학할 대학교를 졸업한 선배이기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여러 길을 찾아주시고, 현재의 환경에 머무르지 않고 더 큰 목표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셨다.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언젠가는 학생들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진로의 길을 열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농업기계를 가르쳐주신 신부균 선생님은 또 다른 모습으로 내 진로에 영향을 주셨다. 복잡한 기계의 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하셨고, 이론뿐 아니라 실제 기술 능력도 뛰어나셨다. 농업기계는 단순히 부품의 이름이나 정비 순서를 암기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기관, 동력전달장치, 유압, 전기, 작업기 등 여러 시스템이 하나의 기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원리를 학생의 눈높이에서 설명하고 실제 기계에서 직접 확인하게 하는 수업을 경험하면서 ‘농업기계 전공 교사’라는 꿈은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두 분의 선생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한 명의 교사가 학생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셨다.
현장 경험과 공학 이론이 맞물려 깊어진 배움
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은 자연스럽게 대학 진학으로 이어졌다. 전국대회 수상 실적을 바탕으로 2012년 순천대학교 사범대학 농업교육과에 입학했고,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던 조경과 농업기계 지식을 토대로 식물자원·조경을 전공하면서 농공 전공을 복수전공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전공과목은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깊고 어려웠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농업계고에서 익힌 지식과 실습 경험이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든든한 기초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일반계고를 졸업한 동기들과 공부하면서 일부 기초학문에서는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다. 반면 농업과 전공 분야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었다. 특히 공부가 깊어질수록 농업기계가 얼마나 다양한 학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분야인지 알게 되었다. 열역학은 기관의 연소와 에너지 변환을 이해하는 기초가 되었고, 유체역학은 유압장치와 연료계통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했다. 재료와 기계요소에 관한 지식은 축과 기어, 베어링 등 농업기계를 구성하는 부품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연결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나의 기계로만 보였던 농업기계 안에 대학에서 배우는 수많은 공학적 원리가 담겨 있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대학에서 어렵게 배우는 이론 역시 농업기계라는 실제 대상과 연결했을 때 훨씬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고등학교 시절 배운 농업기초기술과 농업이해, 농업정보관리, 조경, 농업기계 등의 교육이 대학 공부뿐 아니라 이후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데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기초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모교 교단에 서다: 배움을 다시 돌려주는 삶
2015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강원도 농공 교사 선발 소식을 접했다. 고향인 강원도에서 내가 받았던 농업교육을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임용시험을 준비했다. 교육학과 농업교육학은 물론 열역학, 재료역학, 유체역학, 농업기계학, 농작업기계학, 기계요소설계 등 여러 과목을 공부해야 했다. 특히 대학에서도 어려움을 느꼈던 기초학문의 벽을 다시 마주해야 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넘어가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그 노력은 합격으로 이어졌고, 2016년 3월 1일 첫 근무지로 모교인 홍천농업고등학교에 발령받았다. 학생으로 공부하던 학교에 교사가 되어 돌아와 교단에 섰을 때의 감정은 지금도 말로 모두 표현하기 어렵다. 한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진로를 찾았던 학생이 이제는 후배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는 교사가 된 것이다. 기쁨도 컸지만 그만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책임 역시 크게 다가왔다.
미래 농업기계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홍천농업고등학교에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근무한 뒤, 2020년부터는 원주 영서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 학교에서는 농업기계, 농업용 기계 설치·정비, 건설기계 정비, 피복아크용접, 농업기계공작 등의 교과를 지도하고 있다. 학생 시절에는 기술을 배우는 입장에서 농업기계를 바라봤다면, 교사가 된 뒤에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관점에서 농업기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농업기계 교육은 단순히 기계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드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더욱 분명해졌다. 실제 정비 현장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부품을 분해하는 능력보다 어떤 증상이 왜 발생했는지를 판단하고, 측정값을 근거로 이상 부위를 찾아내며, 기계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엔진 정비에서 부품을 분해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압축압력이나 밸브 간극, 베어링 오일 간극과 같은 측정값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기관의 상태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유압장치 역시 호스를 연결하거나 부품을 교환하는 기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압력과 유량, 밸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실제 나타나는 증상으로부터 고장 원인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전기·전자에 대한 이해까지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 농업기계가 기계적 구조와 유압장치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면 현재의 농업기계는 각종 센서와 전자제어장치, 전기회로가 결합되면서 진단과 정비에 필요한 기술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기관과 기계요소, 유압에 관한 기본적인 정비 기술을 충실히 가르치면서도 전기·전자와 제어 분야를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의 범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결국 앞으로 필요한 농업기계 기술자는 단순히 ‘고장난 부품을 교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필요한 값을 측정하며, 그 결과를 해석해 고장의 원인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이러한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농업기계 교육이 앞으로 더욱 중요하게 다뤄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교육의 힘,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는 교사의 자세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농업계고등학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농업계고는 단순히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직업기술만을 배우는 학교가 아니다. 학생들이 직접 기계를 만지고 작물을 재배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능력을 확인하고, 전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며 대학이나 산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 역시 그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선택했던 농업계고 진학을 통해 농업기계라는 전공을 만났고, FFK 전진대회를 준비하며 목표를 세우는 방법을 배웠다. 두 분의 은사님은 대학과 교직이라는 다음 길을 보여주셨고, 그 경험은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교육이 학생이 처한 환경을 곧바로 바꿔줄 수는 없지만, 그 환경을 넘어설 수 있는 기술과 경험, 그리고 새로운 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농업교육의 가장 큰 힘이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두 은사님께서 내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길을 열어주셨듯이 나 역시 학생들이 아직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각자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동시에 빠르게 변화하는 농업기술보다 교육이 뒤처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그것을 다시 학생들의 교육으로 연결해야 한다.
교사가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잘 가르치는 교사가 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교단에 서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지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농업기계 역시 계속 변화하고 있다. 기계와 유압 중심의 기술에 전기·전자와 제어 기술이 더해지고 있고, 자동화와 정밀농업 기술이 확대될수록 농업기계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함께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계속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던 아이에서 농업고등학교 학생으로, 농업교육과 대학생을 거쳐 농업기계 교사가 된 지금까지 나의 역할은 여러 번 바뀌었다. 하지만 농업을 배운다는 점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농업을 배우던 학생에서 농업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지금도, 나는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다시 학생이 된다. 그리고 앞으로도 농업 기술이 변하는 만큼 배우고, 내가 배운 것을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주는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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