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의 안전·보건 사령탑, 이승범 부장장
단톡방에 올라온 AI 상용화 공고 보고 직감…중견기업 규제 뚫고 컨소시엄 성사 “로봇 도입은 사람을 격리해 살리는 일…안전한 일터 구축이 나의 소명”
매일 아침 거대한 도체와 화약 총기 소음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도축 현장. 고령화되고 위험천만한 일터를 전 세계 최초의 ‘AI 로봇 도축장’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 있다. 농협경제지주 음성축산물공판장의 안전·보건을 총괄하는 이승범 부장장이다. 사내 팀장급 정보 공유 단톡방에 올라온 단 한 줄의 정부 공고문에서 축산업의 미래를 직감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28억 원 규모의 대형 국책 과제를 직접 따낸 그를 만나 전격적인 로봇 도입 과정과 현장 중심의 비전을 들어봤다.
"단톡방 뉴스 요약 보고 직감… 규제 장벽 뚫고 직접 발로 뛰어 성사"
이승범 부장장이 소 도축 자동화 로봇 도입을 결심한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어느 날 사내 팀장급 이상이 모인 정보 공유 단톡방에서 '축산관련 뉴스 헤드라인 요약' 자료가 공유됐다. 정부가 AI 상용화에 400억 원을 투입해 농식품 분야 응용제품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료를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 우리 공판장에 가장 시급한 안전사고 예방과 인력난 해소를 동시에 해결할 열쇠가 거기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해당 사업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식품 분야 AI 응용제품 산속상용화 지원사업’은 지원 대상이 ‘중소기업 단독’ 또는 ‘컨소시엄’으로 제한돼 있었고, 농협경제지주는 중견기업 범주에 속해 단독 참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여기서 이 부장장의 추진력이 빛을 발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직접 농식품부 및 한국농업기술진흥원과 긴밀히 소통하며 돌파구를 찾았다. 그리고 독보적인 도축 로봇 기술력을 가졌으나 현장 실증 인프라가 필요했던 애그테크 스타트업 ‘(주)로보스’를 발굴해 주관기업(로보스)-참여기업(음성공판장) 형태의 상생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최대 소 도축 물량을 자랑하는 농협음성축산물공판장의 상징성에 이 부장장의 적극적인 기획력이 더해지면서, 마침내 국고 70%(19억 원) 지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최종 선정을 이끌어냈다.
"쇠사슬 공포에 노심초사하던 직원들… 로봇은 단순 기계 아닌 '안전망'"
이 부장장이 적극적으로 로봇 도입을 밀어붙인 기저에는 현장 직원들에 대한 깊은 유대감과 보건 책임자로서의 책임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도축장 안전 보건 총괄책임자로서 직원들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무거웠다. 화약 도살총을 쏠 때마다 몸으로 전해지는 충격 때문에 만성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고, 수백 킬로그램의 소가 격렬히 저항할 때면 언제 다칠지 몰라 손에 땀이 난다. 심지어 소를 매단 쇠사슬이 끊어져 도체가 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현장 사슬을 통합 24톤을 버티는 해상 크레인용 고강도 사슬로 전면 교체했고, 음성군보건소와 협력해 심리 상담사 6명을 초빙, 직원들의 정신적 트라우마 치료 자리를 마련했다.
이 부장장은 “사람이 가장 힘들고 두려워하는 공정부터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 존중”이라며, “이번에 도입되는 유압식 타격 로봇과 이분도체 로봇은 연간 2억 7900만 원이라는 예산 절감 효과도 크지만, 무엇보다 작업자를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속도보다 품질… 기술 안착할 때까지 현장 직접 지킬 것"
소 도축 로봇 상용화인 만큼, 이 부장장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의 연착륙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로봇이 도입된다고 해서 당장 사람을 다 빼고 기계만 돌리는 과오는 범하지 않을 것”이라며 “속도만 올리다가 칼끝이 1㎜만 어긋나도 상품성이 떨어져 중도매인들에게 외면받는다. 우리 공판장이 전국 최고 시세를 받는 이유는 작업자들의 정교한 손끝 기술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범 부장장은 2027년 로봇이 본격 설치되면 초기에는 기계와 숙련공의 수동 작업을 철저히 병행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봇이 에러를 일으키지 않는지 사람이 옆에서 모니터링하며 세밀하게 보정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치겠다는 뜻이다.
그는 "기계 도입으로 현장 작업시간을 단 30분만 늦춰줄 수 있어도, 직원들이 충분한 여유를 갖고 정교하게 작업할 수 있어 지육 품질은 오히려 더 올라갈 것"이라며 "음성공판장에서 완벽하게 검증을 끝내 국내 60여 개 도축장의 안전 표준 경영 모델을 완성하는 것이 보건 책임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소명''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