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균 칼럼] 피지컬 AI 시대, 농업 데이터에는 ‘동사’가 있는가
[전문가 칼럼] 전북대학교 생물산업기계공학과 양명균 교수
AI가 화면 속에서 답을 내던 시대를 지나, 현실을 보고 판단하고 직접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주목받고 있다. 농업에서도 수확, 방제, 운반, 환경제어에 AI와 로봇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그런데 로봇과 모델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행동을 배우려는 AI에게 우리는 무엇을 읽혀 줄 것인가.
지금까지의 농업 데이터를 품사로 나눠 본다면 대부분 ‘명사’다. 온도, 습도, 엽면적, 과실, 병징, 수확량. 그런데 피지컬 AI가 현실에서 행동하기 위해서는 명사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농업 데이터에도 ‘동사’가 필요하다.
단어는 많고, 문장은 드물다
농업 AI는 그동안 작물을 ‘보는’ 능력을 빠르게 키워 왔다. RGB 영상에 3차원, 분광·초분광, 열화상, 환경센서를 결합하는 멀티모달 접근은 작물의 상태를 한층 정밀하게 표현하게 했다. 이러한 데이터는 피지컬 AI의 ‘눈’이 된다. 행동하려면 먼저 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동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 온실의 제어기는 천창을 언제 열었고 양액을 얼마나 공급했는지 남긴다. 다만 기록은 대개 거기서 끝난다. 그때 작물이 어떤 상태였는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후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다른 곳에 있거나 남지 않는다. 적엽, 적과, 유인, 수확처럼 사람 손으로 하는 작업은 그 행동 자체가 데이터로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부족한 것은 데이터의 양만이 아니라 연결이다. 어떤 상태에서, 무엇을, 왜 했고, 그 결과 무엇이 달라졌는가. 이 네 가지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어질 때 비로소 AI가 배울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 된다. 우리의 농업 데이터에는 단어는 많지만 문장은 드물다.
기다리는 것도 동사다
수확 로봇을 떠올려 보자. 과실 위치를 찾아 로봇팔이 다가가 따는 궤적만 모은다고 충분한 행동 데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 그 과실을 선택했는지, 어느 방향에서 접근했는지,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수확 뒤 손상은 없었는지가 함께 있어야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따지 않은 과실이다. 숙련된 작업자는 보고도 손을 대지 않는다. 하루 이틀 더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농업에서는 ‘기다린다’는 것 역시 중요한 행동이다. 하지만 하지 않은 일은 보통 기록에 남지 않는다. 한 일만 기록한 데이터로 배운 AI는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는 배울 수 있어도, 언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지는 배우기 어렵다.
농업의 문장은 늦게 끝난다
많은 제조·물류 로봇 작업에서는 물체를 잡았는지, 제자리에 놓았는지를 짧은 시간 안에 확인할 수 있다. 농업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늘의 관수와 양액 조절은 며칠 뒤 생육과 품질에 영향을 주고, 적엽과 전정은 몇 주 뒤 수량과 품질의 차이로 나타난다. 같은 행동도 품종과 생육단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문장으로 치면 주어와 동사는 오늘 쓰였는데 마침표는 며칠 또는 몇 주 뒤에 찍히는 셈이다. 그사이 날씨가 바뀌고 다른 작업이 겹치면서 어느 결과가 어느 행동에서 비롯되었는지 가려내기 어려워진다. 살아 있는 생물을 상대한다는 점은 농업 피지컬 AI가 다른 분야의 자동화를 그대로 옮겨 오는 것만으로 완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암묵지는 정답이 아니라 가설이다
농업에서는 숙련 농업인의 경험과 감각, 곧 암묵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잎의 색과 자세, 그날의 날씨를 보고 ‘오늘은 물을 조금 줄이자’고 판단하는 능력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 판단을 그대로 AI에게 가르치면 될까.
같은 상황에서도 숙련 농업인마다 판단은 다를 수 있고, 오래 사용해 온 방법이 항상 최선이라는 보장도 없다. 좋은 결과에는 농업인의 판단뿐 아니라 시설, 품종, 기상과 같은 여러 조건이 함께 작용한다. 따라서 기록을 많이 모으는 것만으로 특정 판단의 효과가 저절로 분리되지는 않는다. 비슷한 조건에서 다르게 해 본 사례나 비교 실험이 함께 있어야 그 판단이 옳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암묵지는 AI가 따라야 할 정답이라기보다 검증을 기다리는 좋은 가설에 가깝다. 농업인의 경험을 데이터화한다는 것은 경험을 정답으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 유효하고 언제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식으로 바꾸는 일이다.
새 모델의 이름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
피지컬 AI에서는 VLA(시각·언어·행동) 모델, 여러 로봇의 경험을 함께 학습하는 모델, 가상 환경과 월드 모델을 이용해 경험을 확장하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모델이 무엇을 경험하며 배울 것인가다.
우리는 피지컬 AI를 위한 새로운 농업 데이터를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익숙한 데이터에 새로운 기술의 이름을 붙이고 있는가.
지금까지 농업의 상태를 기록해 왔다면, 이제는 농업의 행동을 기록할 차례다. 보고, 기다리고, 다가가고, 잡고, 자르고, 물을 주고, 환기하는 ‘동사’가 명사 곁에 놓이고 그것이 결과까지 이어져 하나의 문장이 될 때, 피지컬 AI도 비로소 농업을 움직이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