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호 칼럼] 가르치기 위해 다시 학생이 되다
학생들의 불합격에서 시작된 나의 자격증 공부
AI브리핑
원주 영서고등학교 산업기계과 황민호 교사는 학생들의 농업기계정비기능사 불합격을 계기로 더 책임 있게 가르치기 위해 운전·정비·전기·용접·안전 분야 자격과 기술을 익혔다. 2024년 농업기계기사까지 취득한 그는 자격증을 학생들을 가르치며 마주한 부족함을 채운 배움의 기록으로 보고, 숙련 기술을 향한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
[황민호 칼럼] 원주 영서고등학교 산업기계과 황민호 교사
지난 글에서 나는 농업을 배우던 학생에서 농업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지금도,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다시 학생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돌이켜보면 교사가 된 뒤 여러 자격증에 도전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결국 그 생각에서 출발했다. 2016년 교사로 임용된 뒤 이듬해인 2017년부터 농업기계 수업과 농업기계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실제 농업기계와 각종 장비를 다루는 일이 많아졌고, 교과서에도 지게차 운전과 관련된 내용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장비의 구조와 조작 방법을 설명하면서 ‘학생에게 장비를 가르치려면 적어도 교사인 내가 먼저 직접 운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게차운전기능사에 도전해 2017년 자격을 취득했다. 당시에는 앞으로 여러 분야의 자격증을 계속 취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기술이라면 내가 먼저 해보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학생들의 불합격, 다시 배우게 된 계기
같은 해 나에게 더 큰 계기가 된 일이 생겼다. 농업기계정비기능사 필기시험 면제자 검정에 응시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 매년 학생들이 응시하던 시험이었고, 나 역시 농업기계를 전공한 교사였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지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시험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당연히 학생들이 대부분 합격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내가 지도한 학생들이 대거 불합격했다. 결과를 받아 들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미안함이었다. 시험에 떨어진 것은 학생들이었지만 그 학생들을 지도한 사람은 나였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농업기계를 전공했고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었던 것 같다. 농업기계에 대한 이론을 알고 있다는 것과 실제 기술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지만, 그 차이를 충분히 알지 못했다. 당시 신규 교사였던 나에게 정비 실기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들의 불합격을 설명할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결국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그때 마음속에 한 가지 약속을 새겼다. “처음 만난 제자들에게 남은 이 미안함을 잊지 말자. 내가 모른다는 이유로 학생의 가능성이 멈추는 일은 다시 만들지 말자. 앞으로 만날 제자들만큼은 내가 먼저 배우고 익힌 만큼 책임 있게 가르치자.” 그 약속은 이후 내가 여러 자격증과 전문 기술을 공부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정비기술을 가르치려면 나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농업기계는 기관과 동력전달장치, 유압장치, 차체와 각종 기계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복합적인 기계다. 이러한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건설기계정비기능사를 시작으로 농업기계정비기능사, 농업기계산업기사, 건설기계정비산업기사까지 공부의 수준을 높여갔다. 자격을 준비하며 기관과 유압장치를 분해하고 조립했고, 공구와 측정기기를 반복해서 사용했으며 체결요소와 기계요소의 구조와 역할도 다시 익혔다. 그만큼 수업도 조금씩 달라졌다. 공구의 이름과 사용 순서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왜 이 공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볼트와 너트를 체결할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베어링과 기어가 기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전보다 쉽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유압 역시 펌프와 밸브, 실린더의 명칭을 외우게 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유압유가 어떤 경로를 따라 흐르는지, 압력은 어디에서 형성되는지, 밸브의 작동에 따라 실린더의 운동 방향이 왜 달라지는지를 실제 장치와 연결해 설명할 수 있게 됐다. 내가 기술을 깊이 이해할수록 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교과서 밖의 기계를 배우다
농업기계 수업에서는 다양한 장비의 운용 능력도 필요했다. 농업기계라고 하면 흔히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을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농업 현장에서 필요한 기계기술의 범위는 그보다 넓다. 자재를 운반하고 적재하거나 토양을 굴착하고 정리하는 등 다양한 작업이 이뤄지고, 농업기계를 운용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도 건설기계와 관련된 기술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장비를 학생들에게 제대로 지도하고 현장에서 활용하려면 내가 먼저 직접 운전하고 그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게차를 시작으로 굴착기, 로더, 기중기, 롤러, 천공기, 불도저, 타워크레인 등 여러 건설기계의 운전 자격을 취득했다.
직접 운전해본 경험은 수업에서도 도움이 됐다. 장비마다 다른 조작 특성과 작업 시야, 작업장치의 움직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학생들에게 단순한 조작 방법뿐 아니라 작업할 때 무엇을 확인하고 주의해야 하는지까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농업기계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필요한 기술이 농업기계라는 이름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나를 배우니, 또 다른 부족함이 보였다
정비기술을 깊이 공부할수록 또 다른 부족함이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의 농업기계는 기계장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시동회로와 충전회로를 비롯한 전기회로가 사용되고 각종 스위치와 릴레이, 센서와 신호가 기계의 작동에 관여한다. 기계적인 구조만 이해해서는 고장의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내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전기기능사에 도전했다. 전기회로와 전기기기의 기본 원리를 공부하면서 기계의 이상이 기계적인 문제인지, 전원의 문제인지, 회로나 신호의 문제인지 구분해서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농업기계를 전공하는 교사에게 전기는 별개의 분야가 아니라 현대 농업기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기술이라는 생각도 더욱 분명해졌다.
용접 역시 정비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농업기계를 사용하다 보면 볼트와 너트가 파손되거나 구조물과 주요 부위가 손상되는 경우가 있다. 모든 문제를 부품 교환 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며, 파손된 부분을 보수하거나 필요한 구조물을 제작하려면 용접 기술이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피복아크용접기능사를 취득했고, 정비 과정에서 필요한 수리와 제작 기술까지 학생들에게 지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운전과 정비, 전기와 용접을 공부하면서 또 하나 반드시 갖추어야 할 전문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안전이었다. 농업기계를 다루는 수업과 농작업 현장에는 다양한 위험 요인이 존재한다. 회전체와 유압장치, 전기 설비, 고온부와 중량물을 다루고 여러 기계를 직접 운전하기 때문에 작은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에게 단순히 ‘조심하라’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떤 작업에 어떤 위험 요인이 있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 지를 근거를 가지고 설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농작업안전보건기사에도 도전해 자격을 취득했다. 기술을 잘 가르치는 것만큼 그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 역시 교사가 갖춰야 할 중요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취득한 자격들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장비를 가르치기 위해 운전을 배웠고, 기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정비를 공부했다. 정비를 깊이 공부하다 보니 전기를 알아야 했고, 기계를 수리하고 구조물을 제작하기 위해 용접을 배웠다. 그리고 이 모든 기술을 학생들에게 안전하게 가르치기 위해 농작업 안전까지 공부했다. 하나를 배우면 배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던 또 다른 부족함이 보였다.
돌고 돌아, 다시 농업기계로
그렇게 여러 기술을 공부하다 보니 결국 다시 내가 처음 시작했던 농업기계로 돌아오게 됐다. ‘그렇다면 나는 정작 내 전공인 농업기계를 어느 수준까지 이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농업기계기사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농업기계를 전공하고 학생들에게 농업기계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이 자격만큼은 꼭 취득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면서 농업기계기사의 의미는 단순히 자격 하나를 더 추가하는 것 이상으로 커졌다.
특히 필답형 시험을 준비하며 기계요소설계와 역학을 다시 공부하게 된 것이 의미 있었다. 일과 힘, 동력과 속도, 효율, 축과 기어 등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내용들을 다시 마주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을 공부해도 교사가 된 뒤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에는 주어진 문제를 풀고 정답을 구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문제를 풀면서 동시에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동력을 단순히 공식으로 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일을 더 짧은 시간에 수행하려면 왜 더 큰 동력이 필요한 지를 실제 농업기계의 작업과 연결해 설명할 수 있었고, 속도와 효율 역시 시험 문제 속 숫자가 아니라 기관에서 만들어진 동력이 작업기까지 전달되는 실제 과정과 연결해 가르칠 수 있게 됐다. 한때 임용시험을 위해 외웠던 공식들이 이제는 학생들에게 기계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언어가 된 것이다.
농업기계기사의 작업형 시험을 준비하며 익힌 CAD 설계 역시 수업의 범위를 넓혀줬다. 기존에는 완성된 기계를 분해하고 고장을 찾아 수리하는 정비 기술을 중심으로 공부했다면, CAD를 배우면서 필요한 구조를 생각하고 기계요소를 배치해 도면으로 구현하는 설계기술까지 공부하게 됐다. 축과 베어링, 볼트와 너트 같은 기계요소를 단순히 분해하고 조립하는 부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위치에 배치되었는지, 어떤 구조로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이 경험은 Autodesk Inventor와 같은 3차원 CAD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지도할 때에도 도움이 됐다. 프로그램의 명령어를 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기계요소와 구조물을 어떻게 모델링하고 설계하는지를 함께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기계를 분해하고 고장을 찾아 수리하는 정비기술과 기계요소를 이해하고 필요한 구조를 도면으로 구현하는 설계기술이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2024년 농업기계기사 자격을 취득했을 때 특히 의미가 컸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학생들에게 장비를 가르치기 위해 운전을 배웠고, 학생들의 불합격을 경험한 뒤에는 정비를 공부했다. 정비를 공부하면서 전기와 용접의 필요성을 알게 됐고, 학생들을 안전하게 지도하기 위해 농작업 안전도 공부했다. 그리고 그 모든 배움의 끝에서 다시 농업기계라는 나의 전공으로 돌아왔다. 그 과정에서 농업기계를 운전하는 방법뿐 아니라 고장을 진단하고 정비하는 방법을 배웠고, 나아가 기계요소를 계산하고 구조물을 설계하는 방법까지 익힐 수 있었다. 정비 현장의 실무와 설계 현장의 실무를 학생들에게 함께 지도할 수 있는 교사로 조금씩 성장했다는 사실은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자격증은 부족함을 채워온 기록이었다
물론 자격증이 많다고 해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격 하나를 취득했다고 그 분야를 모두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공부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였다. 다만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때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데 그치기보다, 내가 직접 운전하고 분해하고 수리하고 회로를 이해하고 계산하고 설계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취득한 자격증들은 단순한 경력의 목록이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마주했던 나의 부족함을 하나씩 채워온 배움의 기록이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하나를 배우고 나면 그 뒤에 또 다른 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나 자신을 다시 성장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자격증을 하나씩 취득하고 기술을 익혀갈수록 또 다른 질문이 마음에 남기 시작했다.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기술과, 정말 숙련된 기술은 같은 것일까.’ 자격증은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줬지만, 그 기술을 얼마나 정확하고 깊이 있게 익혔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 질문은 다시 나를 교실 밖으로 이끌었다. 가르치기 위해 시작했던 배움은 이제 ‘숙련’이라는 다음 길을 향하고 있었다.
기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