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삐딱선] 마중물 부은 국가 농업 AX, ‘빛 좋은 개살구’ 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마중물을 붓고 대기업이 깃발을 든 총 사업비 2546억 원 규모의 ‘국가 농업 AX(인공지능 전환) 플랫폼’ 사업이 본격적인 실행 궤도에 올랐다.
대표사인 대동을 필두로 한 컨소시엄이 연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전남 무안에 최첨단 AI 온실과 노지 농작업 대행 거점을 구축해 향후 20년간 장기 운영에 돌입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농업의 데이터 지도를 새로 그리고 영농 체질을 전환할 거대한 실험이자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기술적 청사진이 현장 농업인의 실리적인 이득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이 대형 프로젝트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위험이 상존한다.
국가가 주도하는 농업 AX 플랫폼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해결해야 할 세 가지 현장 과제와 두 가지 제도적 기반을 짚어봐야 하는 이유다.
전량 수출의 맹점…동부팜화옹 사태 재현 막아야
농민 입장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21.6ha 규모에서 생산된 토마토와 파프리카가 향할 소비 시장일 것이다. 조그마한 공급량 변화에도 가격 진폭이 커지는 농산물 특성을 감안하면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 국내 또는 수출 시장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기존 농가들과 경합하지 않아야 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생산되는 토마토와 파프리카를 전량 수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농가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전량 수출이 반드시 농가 보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격 경쟁력을 이유로 저가 판매에 나서 현지 수출 시장을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동부팜화옹은 2013년 화옹간척지에 첨단 유리온실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사업자 선정 특혜, 재배 품종 논란 등이 제기된 가운데 전국토마토생산자협의회는 동부팜화옹이 일본 바이어에게 저가 수출을 제안하는 등 수출 농가들의 거래처를 빼앗으려고 시도하고 수출 시장을 교란했다고 주장했다.
2025년 기준으로 토마토와 방울토마토 수출은 일본에 집중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식품수출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 물량 1194톤의 94.7%(1131톤)가 일본이다. 수출 물량 2~4위인 몽골·러시아·홍콩의 수출 물량은 1만~2만 톤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이곳에서 생산된 물량과 기존 수출 농가들의 토마토가 일본 시장에서 경합할 우려가 있다.
또 해외 유통 채널과의 장기 공급 계약을 확실하게 담보하지 못하면 현지 가격 변동에 따른 리스크가 민간 출자자와 공공 자본 모두에게 거대한 적자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을 정부와 유리온실 참여자들이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다면 2013년 동부팜화옹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
AI 농기계 대행의 실질적 경제성과 고령층 접근성
또 다른 과제는 농작업 대행 서비스의 실질적인 경제성 확보다.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을 겪는 농가에 최첨단 AI 농기계로 파종과 방제, 수확 등을 대신해 주는 사업이 전시성 행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존 대행 수수료 대비 확고한 가격 경쟁력을 지녀야 한다.
농업 특성상 농기계 사용 시기가 겹칠 수밖에 없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도 필요하다. 즉, 농가 요구에 맞춰 적기에 작업을 처리하면서도 기계가 쉬지 않도록 통제하는 ‘유휴 농기계 동선 제어 체계’의 완벽한 가동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고령 농업인의 접근성 확보와 구독료 부담 완화다. 초정밀 영농 처방이나 자율주행 제어 같은 고도화된 유료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모델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실제 경작자인 고령의 농민들이 사용하기에 너무 복잡하거나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현장의 외면을 면치 못한다.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 개발과 함께,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추는 연착륙 방안이 필수적이다.
데이터 공통 표준 수립과 애그테크 상생 생태계
이 세 가지 현장의 실익을 근본적으로 지탱하기 위해서는 ‘국가 농업 데이터 공통 표준’ 수립과 ‘상생 생태계’ 조성이라는 기술·제도적 인프라를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현재 제조사와 플랫폼마다 제각각인 농업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표준이 없다면 기술의 낙수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무안에서 축적할 AI 솔루션과 고도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애그테크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저렴하고 실용적인 로봇이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상생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기술 독점을 막고 농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보급형 적정 기술’을 전국 영농 현장에 확산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농업의 인공지능 전환(AX)은 수만 평의 거대 온실을 짓는 토목 사업이 아니다. 그 스마트팜 안에서 흘러나오는 데이터가 농가의 소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연내 설립될 특수목적법인(SPC)이 대기업의 기술 전시장이나 쇼케이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영농 현장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을 극복하는 진정한 ‘생산성 혁신 거점’이 될 수 있을지 농업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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