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멀칭비닐, 다시 움직인 관리기…‘여성도 농기계 잘 다룰 수 있다’

농진청 ‘제2회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전국 41팀 175명 참가, 4개 종목서 농기계 실력 겨뤄 부대행사 ‘농작업 런웨이’서 작업복·보호구 착용 중요성 알려

백철현 기자
승인 2026.09.11 20:23수정 2026.09.14 13:06
두둑만들기 및 멀칭 종목이 열리고 있다.
두둑만들기 및 멀칭 종목이 열리고 있다.

참가자는 곧바로 기계를 멈춰 세우고 비닐 상태를 살폈다. 엉킨 부분을 바로잡은 뒤 다시 기계를 움직였다. 멀칭비닐이 두둑 위에 차분하게 깔리기 시작하자 작업도 다시 속도를 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9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열린 ‘제2회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 현장이다. 농기계 경진과 부대행사를 합쳐 전국에서 41팀 175명이 참가했다. 

경진대회는 △관리기를 이용한 두둑 만들기와 멀칭 △정식기를 활용한 옥수수 기계 정식 △수신호를 활용한 콤바인 상·하차 △트레일러를 연결한 트랙터 ‘ㄷ’자 코스 운전 등 4개 종목으로 진행됐다. 여기에 농작업 안전 행동을 시연하는 부대행사 ‘농작업 런웨이’까지 더해져 행사장 곳곳에서 참가자들의 긴장과 웃음이 교차했다.
 

손발 맞춘 정식 타이밍…“눈빛을 교환할 때 안정감이 생겨”

두둑 만들기와 멀칭에 이어 옥수수 기계 정식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의 손길은 한층 빨라졌다. 정식기가 일정한 속도로 나아가는 가운데 참가자들은 말 대신 눈빛을 주고받으며 정식 타이밍을 맞췄다. 한순간의 호흡이 작업 속도와 결과를 좌우하는 만큼 서로의 손놀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종목을 다른 팀보다 한발 앞서 마쳐 눈길을 끈 팀도 있었다. 충남 예산에서 온 예가정성팀이다. 팀원 전진희 씨는 “충남농업기술원의 지도와 지원을 받아 하루 8시간 정도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긴장됐지만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교환할 때 안정감이 생겨 잘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가자들 가운데는 외국 출신 여성농업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에서 참가한 글로벌한마음팀(남원농협)에는 러시아와 베트남 출신 여성농업인이 함께했다.

러시아 출신 방따찌야나 씨는 “연습할 때는 잘했는데 실전에서는 떨려서 잘 안 돼 아쉬웠다”고 말했다. 베트남 출신 이지아 씨는 “잘하는 팀이 너무 많아 수상은 못 할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글로벌한마음팀은 이날 특별상을 받았다.
 

수신호로 통하고, 트레일러 방향 잡고…팀워크도 실력

이어진 콤바인 상·하차와 트랙터 코스 운전에서는 팀워크가 더욱 중요했다. 특히 콤바인 상·하차에서는 운전자가 주변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팀원들이 평소 맞춰 온 수신호로 운전자를 유도했다. 

참가자가 트레일러에 콤바인을 상차해 트랙터를 주행하고 있다.
참가자가 트레일러에 콤바인을 상차해 트랙터를 주행하고 있다.

트랙터에 트레일러를 연결한 채 ‘ㄷ’자 코스를 통과하는 과정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나타났다. 후진 구간에서 트레일러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아 앞뒤로 오가며 진로를 다시 잡는 모습도 보였다. 다소 긴장한 참가자들도 있었지만, 이내 자신의 페이스를 찾으며 주어진 코스를 하나씩 통과했다.

트랙터 코스 운전에 출전한 팜므파탈팀 박다겸 씨에게 이번 대회는 단순한 경진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대회 준비 전까지 트랙터를 몰아 본 적이 없던 박 씨는 “농사를 짓고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농기계를 잘 맡기지 않아 한 번도 트랙터를 타 보지 못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저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농기계를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게 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박 씨는 “팀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이다 보니 농진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 모여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연습했다”며 “멀리서 모이기가 어렵고 시군에서 연습할 수 없는 상황이라 조금 아쉬웠다”면서도 “막상 실전에서 해 보니 생각보다 잘됐다”고 말했다. 
 

작업복·보호구 갖추고 오른 마지막 무대 ‘농작업 런웨이’ 

오전 경진이 끝난 뒤 행사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점심시간 직후 ‘농작업 런웨이’가 이어져 농기계 대신 작업복과 안전 보호구가 무대의 주인공이 됐다. 

런웨이가 끝나고 참가팀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런웨이가 끝나고 참가팀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11팀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전한 작업 차림을 선보였다. 농기계를 다루는 기술만큼 농작업 과정에서 안전을 생활화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무대마다 담겼다. 

은상을 받은 농사꾸미팀 조태우 씨는 “예초 작업 전 과정을 작업복과 안전 보호구를 갖춘 모습으로 보여 주며 ‘농업이 안전해야 농업이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설명했다.

준비 과정은 이들에게도 녹록지 않았다. 조 씨는 “각자 생업이 있어 미리 만나 맞춰 보지는 못했고 행사 당일 아침에 최종적으로 맞춰 봤다”며 “다행히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좋아 수상할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농기계가 멈추고 행사가 끝난 뒤에도 대회가 남긴 의미는 참가자들에게 이어졌다. 두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는 일부터 정식기와 콤바인, 트랙터를 다루는 일까지 참가자들이 보여 준 것은 단순한 농기계 조작 능력만은 아니었다. 이번 대회는 서로의 신호를 읽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대응하며 무엇보다 ‘여성도 농기계를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직접 확인하는 자리였다. 
 

런웨이 우승팀인 고양파머스.
런웨이 우승팀인 고양파머스.

한편, 이번 농기계 경진 부문 대상(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은 경북 T404팀이 받았다. 금상은 해나루·예가정성·섬진강모터스·진주악바리 4팀, 은상은 질풍여걸·에너지영광·함해보까·가야여걸·땡초누야들·제주것들·영크크 7팀, 동상은 막무가네·영농호걸·팜므파탈·렛츠고양·기어퀸즈·파도타는비치걸즈·음성드림·육군병장 8팀이 차지했다.

런웨이 부문 금상(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은 웨어러블을 착용해 독창적이고 세련된 무대를 연출한 경기 고양파머스팀에 돌아갔다. 은상(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장상)은 그린런웨이·농사꾸미 2팀, 동상은 호미로운 여주·천마모네·진주하모 3팀이 받았다.

쇼츠 경진 부문에서는 렛츠고양·질풍여걸·장수애인·진주악바리·팜므파탈 5팀이 입상했다. 특별상은 농기계 경진 부문에서 에그리포스·여인천하아지매들·감자바우·단풍미인·장수애인·어벤저스4·파워우먼·세종클러치·글로벌한마음·농린이 10팀에 돌아갔다.

백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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