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농(農)담'] 흙 속 탄소가 농가소득이 되려면
[글로벌 '농(農)담' : 미래 농업을 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럽사무소 김기철 소장
2020년 네덜란드 남서부에서 두 지역 에너지협동조합이 인근 농민들에게 제안했다. 농사 방식을 바꿔 흙에 탄소를 더 저장하면 풍력발전 수익 일부로 보상하겠다는 것이었다. 농민단체 ZLTO가 함께한 이 시범 사업에는 ‘윈드파크 크라머’ 주변 농가 15곳이 참여했다. 피복작물을 심고 밭갈이를 줄이는 일이 보상받을 수 있는 농사일이 된 셈이다.
사업 기간은 5년, 책정한 가격은 이산화탄소 1톤당 100유로였다. 보상금의 70%는 약속한 농법을 실천했는지 확인해 해마다 지급하고, 나머지 30%는 사업이 끝날 때 토양검사로 성과를 확인한 뒤 지급하도록 했다. 농민이 5년 치 비용을 먼저 들이고 마지막 날까지 기다려야 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흙에 쌓인 탄소를 어떻게 셀까
흙에 탄소를 저장하자는 말은 쉽다. 어려운 것은 그 양을 믿을 만하게 계산하는 일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 7월 ‘탄소제거 및 탄소농업 인증체계(CRCF)’에 적용할 세 가지 방법론을 채택했다. 농지와 나무를 함께 가꾸는 땅, 물을 다시 댄 이탄지, 새로 조성한 숲 등에서 탄소가 얼마나 늘거나 배출이 줄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기준이다.
평소처럼 농사를 지었어도 생겼을 변화까지 새 성과로 셀 수는 없다. 사업 전 상태를 살피고, 농법을 바꾼 뒤의 결과를 측정해야 한다. 직접 측정하기 어려워 모형을 쓴다면 그 오차도 계산에 넣는다. 농민에게는 새 농법을 익히는 일에 더해 기록과 검사, 검증이라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톤당 가격보다 농가에 남는 돈
네덜란드의 톤당 100유로가 유럽 어디서나 통하는 가격은 아니다. 프랑스 ‘저탄소 라벨’에 등록된 농업·산림 등 여러 유형의 사업은 톤당 가격이 8~125유로로 벌어졌고, 평균은 약 35유로였다. 정부가 일률적으로 정한 값이 아니라 사업비와 지역 여건, 환경에 주는 효과 등을 놓고 사업자와 자금 제공자가 정한 가격이다.
저장량에도 차이가 크다. 네덜란드 남부의 실증 사업에서는 토양과 농법에 따라 헥타르당 연간 1~4톤의 이산화탄소 저장량이 측정됐다. 이를 10헥타르 농지에 그대로 대입하면 톤당 35유로에서는 연간 350~1400유로, 100유로에서는 1000~4000유로다. 서로 다른 사업의 수치를 빌린 가상 계산일 뿐, 농가가 가져갈 소득은 아니다. 피복작물 종자와 추가 작업, 토양검사와 인증에 드는 돈을 여기서 빼야 한다.
벨기에 캄피네 지역의 낙농가 안드레 판 베츠가 실증사업에 참여한 이유도 판매 수입만은 아니었다. 모래가 많은 땅에서 탄소가 부족하면 기후변화 속에 생산력이 떨어지기 쉽다. 그는 흙에 탄소를 늘리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토양이 물을 더 잘 머금어 가뭄 피해를 줄인다면 농가에는 보상금 외의 이익도 생긴다. 반대로 작업비가 늘거나 수확량이 줄면 보상금만으로 손실을 메우기 어렵다. 검사비를 누가 내고, 기상이변으로 목표를 채우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정산할지도 계약 전에 따져야 한다.
장부를 덮을 때 얼마나 남는지 알아야
한국에도 저탄소 농축산물 인증제와 논물 관리·바이오차 투입을 지원하는 사업이 있다. EU의 CRCF는 기존 방식과 비교해 새로 저장한 탄소와 줄어든 토양 배출량을 성과로 인증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국내에서 쌓은 농가 교육과 인증 경험을 살리되, 우리 농지에서 측정과 검증에 얼마가 드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농가 한 곳이 토양검사를 받고 자료를 관리하며 구매자까지 찾으면 보상금이 비용으로 사라질 수 있다. 과수 주산지나 밭작물 공동 경영체처럼 여건이 비슷한 농가가 함께 참여하고, 농협이나 생산자 조직이 자료를 모아 검증 신청과 판매를 맡는 방식을 시험해 볼 만하다. 공공기관은 지역별 기준선과 측정 방법을 마련해 그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
시범 사업의 성과를 발표할 때도 탄소를 몇 톤 저장했는지만 알려서는 농민의 판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받은 보상금과 종자·작업·검사·인증에 들어간 비용, 수확량의 변화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농민이 장부를 덮을 때 얼마나 남는지 알아야, 흙 속 탄소가 얼마나 소득이 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