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그테크 라이징] 긴트, 쓰던 농기계에 ‘AI 키트’ 달아 농작업 사고 막는다
NIPA AX 과제로 임대사업소 8곳서 실증 중 사고 시 책임 주체에 대한 명확한 규정 필요
행정안전부 재난연감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4년 동안 발생한 농기계 사고는 4708건이다. 연도별로는 2020년 1269건, 2021년 1076건, 2022년 1384건, 2023년 979건으로, 해마다 1000건 안팎의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고는 고령 운전자에게 몰려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농업기계 교통사고 실태조사 연구에 따르면 농기계 교통사고의 37%가 70세 이상 운전자에게서 발생했고, 60대 27.6%, 50대 17.6%가 뒤를 이었다. 원인은 전방 주시 태만, 판단 잘못, 조작 실수, 음주 같은 인적 요인이 대부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판단과 대처가 느려지는 것이 사고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농촌 고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통계청(현 국가데이터처) 농림어업조사에서 2024년 전국 농가 97만 3707가구 가운데 경영주가 70세 이상인 농가는 50.8%로 절반을 넘었다. 60대(33.0%)까지 더하면 83.8%에 이른다. 농가 인구가 줄어 한 사람이 맡는 작업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사람의 주의력에만 기대는 안전관리로는 사고를 줄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농업 자율주행 기업 긴트(GINT)가 이 문제를 AI로 풀겠다고 나섰다. 긴트는 아그모, 디버스와 컨소시엄을 꾸려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의 AX(인공지능 전환) 프로젝트로 ‘농작업 사고제로! AI 농기계 안전운행 서비스 개발·실증’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이번 과제는 2025년(1차년도) 1월 부터 2026년(2차년도) 12월까지 진행된다. 새 농기계를 사지 않아도 농가가 이미 가진 트랙터와 방제기 등에 ‘AI 통합 솔루션 키트’를 달아 농기계를 ‘AX화’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한눈팔면 경고, 장애물 만나면 우회하거나 정지
키트는 두 가지 위험에 초점을 맞췄다. 하나는 운전자의 부주의, 다른 하나는 작업 중 맞닥뜨리는 돌발 상황이다. 운전석 카메라는 졸음, 휴대폰 사용, 흡연, 안전벨트 착용 여부를 감지한다. 외부 카메라는 돌발 장애물이나 농기계가 들어갈 수 없는 지형을 판단해 운전자에게 경고하고 대처 방법을 알려준다. 긴트 정희종 수석은 “부주의나 불감증에서 오는 사고를 사용자에게 최대한 인지시켜 예방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장애물 대응은 이미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까지 구현했다고 긴트 측은 설명했다. 예를 들어 왼쪽에 두둑이 다 만들어진 상태에서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키트가 스스로 판단해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우회할 수 없으면 기계를 멈춘다.
학습 모델은 처음에 AI허브 공공데이터로 만들었고, 현장 실증을 거치며 성능을 높였다. 긴트에 따르면 1차년도 목표였던 장애물 인지 정확도 75%, 경로 재생성 10초 이내, 운전자 위험행동 검출률 85%는 모두 넘어섰다. 정 수석은 “항목별로 다르지만 90% 이상의 신뢰도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현재 판매 중인 2세대 키트에는 이 인지 기능이 없다. 내년 출시할 신제품부터 AI 모델이 들어간다. 출시 뒤에도 클라우드에서 학습 모델을 업데이트해 단말기에 실시간으로 내려보낼 계획이다.
30도 기울면 경보, 5초 더 움직이면 강제 정지
정 수석은 전복 사고가 나면 혼자 작업하다 발견이 늦어 목숨을 잃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키트는 단말기가 30도 정도 기울면 경보를 울린다. 경보가 울린 뒤에도 기계가 5초 동안 계속 움직이면 강제로 멈춘다.
그 뒤 1초 안에 10도 넘게 기울어지는 식으로 각도가 급격히 바뀌면, 미리 지정한 연락처로 비상 연락이 간다. 정 수석은 “앞으로 정책 건의를 통해 119나 112 같은 긴급 신고와 연동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차 옵션은 5000만 원, 키트는 1500만~2000만 원
기존 농기계에 키트를 다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정 수석은 “트랙터를 최소한으로 개조해 고가 트랙터와 대등한 자율주행 성능을 낼 수 있다”며 “신형 농기계에서 자율주행 옵션의 차이는 5000만 원 정도인데, 키트는 1500만~2000만 원이면 장착할 수 있어 초기 도입비를 3000만~3500만 원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제어 장치가 없는 오래된 기종에도 달 수 있다. 컨소시엄은 시판 고가 자율주행 농기계의 25% 수준 가격을 목표로 잡았다. 또 그동안 국내외 농기계 300종 이상에 장치를 설치한 경험을 근거로, 국내 농기계의 90% 이상에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긴트는 이번 과제를 진행하면서 (주)LS엠트론, (주)하다, (주) 아세아텍 등의 농기계 제조사와도 협약을 맺었다. 키트가 일정 성능 이상을 입증하면 제조사도 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반발에서 수용으로… 임대사업소 8곳서 실증
실증은 지난 9월부터 농기계 임대사업소 8곳에서 1대씩, 트랙터 7대와 방제기(SS기) 1대로 진행하고 있다. 임대사업소를 고른 이유는 데이터다. 정 수석은 “개별 농가가 1년에 트랙터를 운행하는 시간은 600시간이 채 안 되지만, 임대사업소는 그보다 3~4배 많이 운행한다”며 “초기에 가능한 한 많은 데이터를 모으려고 임대사업소를 택했다”고 설명했다.
현장 반응이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정 수석은 농기계를 오래 다룬 농민일수록 한눈을 팔며 운전하는 습관이 있어 경고가 뜰 때마다 불편함을 크게 느꼈다며 “사업 초기에는 뜯어가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전했다. 사용자 의지와 상관없이 기계를 멈추는 데 대한 반감도 커서, 일부 농가에는 정지 기능을 빼고 우회 기능만 넣었다.
지금은 이런 불만이 잦아들었다. 정 수석은 “설치 초기 숙달 과정에서 이야기가 있었지만, 현재는 클레임을 거는 농가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햇빛이 비닐에 반사되면 웅덩이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처럼 오인식 사례는 계속 보고되고 있어, 재학습으로 보완하고 있다. 그는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을 예로 들며 “써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쓰는 사람은 없다”며 “손가락 한 번이라도 덜 쓰게 해준다는 편의성을 느끼기 시작하면 제품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보존과 책임 소재는 숙제
과제가 남긴 숙제도 있다. 카메라 영상은 하루 8시간 운행 기준으로 20GB가량 생성된다. 키트 단말기에는 데이터를 저장하지 않고 필요한 데이터만 바로 서버로 보낸다. 개인정보 문제로 실증 농가와 협의해, 학습에 쓴 데이터는 학습이 끝나면 지우고 있다. 정 수석은 “AX 과제를 하면서 남는 것이 영상 데이터인데, 이를 보유하지 못해 다른 제품을 개발할 때 활용하기 어려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AI가 위험을 놓쳐 사고가 났을 때 누가 책임질지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 수석은 “제조사가 책임질지 사용자가 책임질지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책임 주체를 정하는 제도가 갖춰지면, 이미 확보한 제어 역량에 맞춰 기능을 더 적극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긴트 측의 설명이다. 올해부터 농기계 임대사업 예산이 지자체로 넘어가면서 보급 여건도 지자체 재정에 따라 달라지게 됐다. 긴트는 지자체와 협의하는 한편, 인증을 거쳐 보조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농림축산식품부에도 건의하고 있다.
기대 효과는 농지 안 사고로 한정했다. 키트의 자율 대응 기능이 농지 작업을 전제로 설계돼 도로 주행 중 사고는 대상에서 빠진다. 정 수석은 “사고가 예측되면 기체가 최종적으로 내리는 판단은 정지”라며 “10번 중 9번을 감지하면 사용자가 따로 조치하지 않는 한 9번 다 멈추기 때문에, 인식률이 90%면 예방률도 90%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가 쌓이고 업데이트될수록 91%, 92%로 높아질 것”이라며 “사용자가 키트를 신뢰하는 만큼 성능을 보장한다면 100%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예방률은 키트가 위험을 알아챌 수 있는 상황에만 해당한다. 정지 기능을 뺀 기계는 위험을 감지해도 멈추지 않고, 회전부에 몸이 끼이는 사고처럼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사고는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향후 계획에 대해 긴트 노동원 선임은 “올해 12월에 과제가 종료돼 11월 말부터 시범서비스를 순차적으로 종료하며, 이번 프로젝트로 개발한 산물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부처 등에 소유권 이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한 AI 기능을 농민들이 쓰기에 거부감 없도록 차세대 제품에 적용해 사업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