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404호 동기들,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 정상에 서다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 교육생 팀 ‘T404’, “서로 믿은 게 비결, 다음 무대는 스마트팜”
경북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 기숙사 404호. 1년여 전 청년농 교육과정에 입소하면서 이 방을 함께 쓰는 교육생 세 명과 이들 동기의 아내가 팀을 꾸려 9월 9일 농촌진흥청 농촌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열린 ‘제2회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에서 대상을 받았다. 팀 이름 ‘T404’도 방 번호에서 따왔다. 앞 글자 ‘T’는 팀(Team)이면서, 이들이 지금 실습하는 토마토(Tomato)의 머리글자이기도 하다.
팀원들이 걸어온 길은 저마다 다르다. 막내 박수미(24, 경북 구미) 씨는 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와 한국농수산대학교를 거쳐 자연스럽게 혁신밸리에 들어왔다. 박소현(33, 경북 칠곡) 씨는 공군 기술부사관으로 12년간 항공기 지원장비 정비를 맡다가 전역한 뒤 귀농을 준비하며 이곳에 왔다. 맏언니 박희정(38, 충남 예산) 씨는 오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충남 예산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는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로 했다. 희정 씨는 “노지는 노지만의 매력이 있지만 한계도 분명히 드러나는 상황이라 새로운 기술을 배워 접목해 보고 싶었다”며 “시설재배를 배운 다음 사과에 적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회에는 네 명이 한 팀으로 나섰다. 소현 씨가 경상북도농업기술원에서 70시간 농기계 교육을 받다가 대회 소식을 들었고, 인원이 모자라자 희정 씨의 혁신밸리 동기가 아내 사코 유미 씨를 추천해 팀이 꾸려졌다. 역할은 수미 씨가 트랙터·트레일러 운전과 콤바인 상하차 수신호, 희정 씨가 콤바인, 소현 씨가 관리기, 사코 유미 씨가 정식기를 맡았다.
콤바인 수신호부터 관리기 회전까지, 저마다 넘어야 했던 벽
본격적인 연습은 대회 한 달 전쯤 시작했다. 전주에서 열린 사전 연습에 두 번 참가했고, 경북농업기술원에 따로 요청해 1박 2일씩 두 차례 더 훈련했다. 경북에서는 대회 때보다 몸체가 큰 콤바인과 연결부가 긴 트레일러를 썼고, 트랙터 크기에 비해 연습 트랙이 좁아 난도가 더 높았다.
농기계를 다뤄본 경험이 가장 많은 수미 씨도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에서 빈 트레일러를 달고 연습한 게 3~4년 전이었고, 이번에는 콤바인을 싣고 달려야 했다. 그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수신호였다. 수미 씨는 “운전보다 수신호가 훨씬 어려웠다. 콤바인은 결국 저를 믿고 따라와야 하는데, 신호를 잘못 주면 위험해진다”며 “타이밍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하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농기계를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던 희정 씨에게는 두려움이 가장 큰 벽이었다. 외동딸이라 부모가 위험하다며 농기계 근처에도 못 가게 했기 때문이다. 콤바인은 변속 레버를 조금씩 끊어 움직여야 중립에 맞는데, 연습 중 중립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기계가 트레일러에서 미끄러져 내려간 적도 있다. 희정 씨는 “떨어질까 봐 겁이 나니 수신호 대신 바로 앞 바닥만 보게 되더라”며 “두려움을 이겨내고 동생에게 모든 걸 맡긴 채 신호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제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관리기를 맡은 소현 씨는 첫날부터 막혔다. 두둑 두 줄을 만들려면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엔진 힘을 이기지 못해 기계가 돌아가지 않았다. 역할을 바꿀지 고민할 정도였지만, 현장 강사가 무게중심을 뒤로 싣는 요령을 알려주면서 결국 해법을 찾았다.
콤바인 미끄러진 날 밤새 유튜브, 기계 없는 ‘작전회의’
빈틈은 팀워크로 메웠다. 콤바인이 미끄러진 날, 희정 씨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유튜브로 조작법을 공부했다. 수미 씨도 그날 집에 돌아가 수신호를 다시 익히고, 어느 시점에 어떤 신호를 줄지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기계가 없는 날에도 교육생 셋이 기숙사에 모여 동작을 맞추는 ‘작전회의’를 거듭했다.
희정 씨는 “동생들이 옆에서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계속 조언해 줬다”며 “맏언니인데 오히려 동생들이 더 의젓하게 이끌어줬다”고 말했다.
시동 안 걸려 ‘아찔’…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
실전에서도 고비는 있었다. 소현 씨는 출발선에서 관리기 시동이 걸리지 않아 진땀을 흘렸다. 연습 때는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진행요원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한 번만 더 해보겠다며 다시 줄을 당겼고,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관리기·정식기 조는 속도보다 완성도에 집중했다. 골이 일자로 곧게 났는지, 두둑 끝의 비닐 마감이 깔끔한지, 첫 모종을 심는 위치가 고르게 맞춰졌는지가 기준이었다. 소현 씨는 “밖에서 보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할 수 있게 마무리에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트랙터·콤바인 조는 수신호와 판단의 호흡에 집중했다. 트랙터는 후진을 한 번에 성공했고, 콤바인은 트레일러에 곧게 올라갔다가 그대로 일자로 내려왔다. 수미 씨는 “그때까지 연습한 것 중 가장 완벽했다.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실 이들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었다. 팀원끼리 추억을 만들고 20등 안에만 들자,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끝내자는 게 목표였다. 대회 도중 팀원이 바뀌는 팀도 여럿 있었지만, T404는 처음 네 명 그대로 완주했다. 시상식에서 이들은 최고 7등, 최하 15등을 예상했다. 15등이 지나고 7등이 지나도 이름이 불리지 않다가, 마지막에 대상 수상팀으로 호명됐다.
대상 이후 달라진 가족의 시선과 넓어진 영농 계획
수상 소식에 가족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희정 씨의 아버지는 딸을 위해 트랙터와 콤바인을 사야겠다며 농담 섞인 축하를 건넸고, 시댁에서는 ‘가문의 영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혁신밸리에 들어오면서 처음 운전을 시작한 수미 씨도 운전을 불안해하던 아버지에게서 이제 집 트랙터를 몰아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감은 영농 계획도 넓혔다. 시설재배만 생각하던 소현 씨는 노지까지 시야에 넣었다. 농촌 고령화로 귀농 청년이 주변 농지를 넘겨받는 경우가 많은 만큼, 벼나 감자 같은 노지 작목으로도 넓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희정 씨는 “배우면 할 수 있는데 겁이 나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농업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농기계를 배울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마토 경영형 실습에서 사과 과수원 재건까지
T404의 교육생 세 사람은 지금 상주 스마트팜혁신밸리 8기 교육생 51명 가운데 토마토팀에서 경영형 실습을 하고 있다. 20개월 과정 중 2개월 이론 교육과 6개월간 외부 농가에서 하는 교육형 실습을 마쳤고, 1년 동안 직접 재배하고 판매까지 해보는 단계다. 첫 작기 완숙토마토를 마치고 지금은 방울토마토를 키우고 있다. 수미 씨는 정식 직후 물을 줄여 뿌리가 물을 찾아 더 깊이 뻗도록 하는 ‘단수’ 관리를 가장 큰 배움으로 꼽았다.
2027년 4월 교육을 마치면 셋은 한 팀으로 상주 임대형 스마트팜 입주에 도전한다. 성적과 활동을 합산해 4개 팀(12~15명)을 뽑고, 선정되면 3년간 시세보다 저렴하게 온실을 쓸 수 있다. 선정되지 못하더라도 다른 지자체의 임대형 스마트팜에 지원해 최대한 많은 경험을 쌓겠다는 각오다. 군 정비 경력, 농업 전공, 직장생활로 쌓은 인력관리 경험 등 서로 다른 이력도 이들이 기대는 자산이다.
그다음 꿈도 각자 그리고 있다. 희정 씨의 목표는 ‘예산의 자랑’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직접 산을 깎아 3000~5000평 규모의 과수원을 일궜지만, 기후변화와 병해로 한 해 수확을 거의 포기한 뒤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 희정 씨는 혁신밸리에서 배운 기술과 농업기술원의 품종 개량 성과를 접목해 재배 면적을 늘리고 아버지의 과수원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했다. 그는 “당연히 괜찮아질 거라는 확신은 없지만, 괜찮아지게 만드는 게 이런 기관에서 배운 사람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수미 씨는 모교인 한국생명과학고와 한국농수산대학교 졸업생의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이 목표다. 기회가 닿으면 후배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농업은 결국 자기만의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졸업 후에도 공부를 이어갈 생각이다.
소현 씨는 교육형 실습을 했던 경북 고령 농장의 대표가 최근 농업마이스터로 지정되는 모습을 보며 목표를 세웠다. 꾸준히 공부하며 자기 농장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따라 창업하고, 언젠가 마이스터에도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판로까지 내다보고 대학에서 식품가공도 새로 공부하고 있다.
이 길을 택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세 사람은 망설임 없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