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로 밭에 농업용수 댄다…농진청 무동력 기술, 물 부족량 최대 57% 줄여

인터뷰/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밭농업기계과 유석철 연구사 행안부 ‘대한민국 재난안전 연구개발 대상’ 장관상…전력 없이 쓸 수 있어야 현장 기술 초기 투자비 870만 원, 태양광 기반 지하수 관정 대비 37.4% 절감

이현우 기자
승인 2026.09.30 02:08수정 2026.09.30 02:08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석철 연구사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재난안전 연구개발 대상’에서 장관상을 수상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유석철 연구사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재난안전 연구개발 대상’에서 장관상을 수상했다.

경남 합천의 실증 현장에서 일일 평균 98.3㎥에 달하던 물 부족량은 41.3㎥로 줄었다. 가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진 기간, 즉 최대 연속 물 부족 일수도 18~21일에서 13~16일로 짧아졌다. 전기도, 지하수 관정도, 끌어다 쓸 물줄기도 없는 합천 실증지에서 나온 수치다. 물을 끌어온 동력원은 없었다. 빗물과 지형의 높이차, 그리고 물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압력이 전부였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밭농업기계과 유석철 연구사가 개발을 이끈 ‘무동력 통합 농업용수 공급 기술’ 이야기다. 유 연구사는 이 기술로 9월 2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재난안전 연구개발 대상’에서 장관상을 받았다. 행안부가 2019년부터 매년 전국 대학·연구기관의 재난안전 분야 연구개발 성과를 대상으로 시상해 온 상으로, 올해는 기관 추천과 발표 평가를 거쳐 8명이 선정됐다. 

“공동연구진 덕분에 대표로 받은 상”

유 연구사는 수상 소감부터 연구진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나 혼자 한 것이 아니라 공동연구진 덕분”이라며 “경상국립대학교와 순천향대학교, 국립농업과학원이 함께 과제를 수행했고, 연구진이 열심히 해 준 덕에 내가 대표로 상을 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립농업과학원 추천으로 응모하긴 했지만 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있었다”며 “기대하지 않았던 터라 심사 발표 뒤 기쁨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

수상으로 이어진 연구는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진행한 공동 과제지만, 빗물 연구에 매달린 시간은 훨씬 길다. 유 연구사는 2013년부터 빗물을 이용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 왔다. 그는 “그동안은 평야지 농가가 활용하도록 저장 용기를 보급해 왔는데, 중산간지나 고지대는 관정과 지하수 활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며 “전력 없이 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자 이번 연구를 시작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짧은 시간에 급격히 진행되는 돌발 가뭄이 늘면서 밭작물 재배지의 물 부족 위험은 상시화하고 있다. 특히 중산간·고지대 재배지는 관정 개발이 어렵고 전력 공급도 곤란해 하수 재이용이나 지하수 관정 같은 기존 대체 용수 확보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대체 농업용수 확보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집수-전처리-저장-이송, 전기 없이 농업용수 만드는 4단계

유석철 연구사가 9월 2일 장관상을 받은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농촌진흥청)
유석철 연구사가 9월 2일 장관상을 수상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 제공=농촌진흥청)

개발된 기술은 ‘집수-전처리-저장-이송’의 4단계가 전력 공급 없이 자동으로 순환하는 통합시스템이다. 비가 내릴 때 땅에 스며들지 못하고 지표면을 따라 흘러가 버리는 강우 유출수를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농업용수로 붙잡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작동 원리를 묻자 유 연구사는 물길을 따라가며 설명했다. 소류천은 비가 올 때 산지 경사면을 따라 물이 흐르는 작은 물길을 말한다. 그는 “중산간지역에서 비가 왔을 때 물이 흐르는 소류천을 활용해 집수장치에 배관을 연결하고, 통과한 물이 5톤짜리 메인 물탱크로 들어온다”며 “큰 이물질은 집수장치에서 걸러지지만 작은 것은 자체 개발한 하이드로사이클론 필터에서 거른다”고 말했다. 이어 “메인 물탱크가 만수되면 넘치는 물이 필터를 한 번 더 거쳐 다음 물탱크로 넘어가면서 농가와 마을 단위까지 가도록 설계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에 따르면 원심력을 이용해 흙과 이물질을 분리하는 하이드로사이클론의 분리 효율은 최대 96%, 집수장치의 최대 집수 가능량은 시간당 8.4㎥다.

저장된 물을 밭까지 보내는 방식은 지형에 따라 갈린다. 유 연구사는 “고지대와 저지대를 구분해 이송하는데, 저지대는 높이차를 이용해 중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했고 고지대는 수격펌프로 올린다”고 설명했다. 수격펌프는 물이 흐르다 멈출 때 생기는 압력으로 물을 높은 곳까지 밀어 올리는 장치로, 연구진이 개발한 펌프의 무동력 최대 양정은 12m다. 약 4층 건물 높이에 해당한다.

이 대목에서 상용 제품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 기술적 성과로 꼽힌다. 유 연구사는 “상용 수격펌프를 쓰다가 물이 많이 소모되고 물이 새는 등 유실량이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핵심 부품인 웨이스트 체크밸브를 자체 개발해 그 부분을 보완했고 특허출원까지 마쳤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이번 기술로 출원한 특허는 모두 4건이다. ‘밭작물 관개를 위한 모니터링 및 제어시스템’(10-2025-0182493), ‘강우 유출수 집수 및 수처리 장치, 이를 이용한 강우 유출수 처리 방법’(10-2025-0046790), ‘무동력 밭 관개 시스템’(10-2025-0117299), ‘강우 유출수를 이용한 무동력 농업용수 공급 시스템’(10-2025-0166502)이다. 

장수와 합천, 조건이 다른 두 곳에서 따로 검증

연구진은 기후·지형 여건이 다른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과 경남 합천군 2개소에서 2023년 4월부터 2025년 11월까지 현장 실증을 진행했다. 두 곳을 고른 이유가 있었다.

유 연구사는 “지형과 기후 여건이 다른 곳에서 해보자는 판단이었다”며 “장수는 비가 오지 않아도 상시 유출수가 흐르는 중산간지역이고, 합천은 비가 올 때만 빗물을 모을 수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항상 흐르는 곳과 빗물이 모이는 지역으로 나눠 실증했고, 두 곳 모두 물이 부족한 지역이었다”고 덧붙였다.

두 곳 실증 결과 일일 평균 물 부족량은 최대 57% 감소했다. 합천군의 경우 일일 98.3㎥이던 물 부족량이 41.3㎥로 줄었다. 최대 연속 물 부족 일수는 18~21일에서 13~16일로 단축됐고, 통합시스템은 일일 평균 27㎥를 자체 생산해 관개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18개 전지구기후모델(GCM)과 공통사회경제경로(SSP) 시나리오 가운데 SSP2-4.5와 SSP5-8.5를 적용한 미래기후 검증에서도 물 부족량 감소 효과는 지속적으로 확인됐다.

저장된 물의 수질도 농업용수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실증지 처리수 분석 결과 pH 7.87, EC 0.001dS/m, TOC 5.832㎎/L, SS 26.8㎎/L, T-N 0.9㎎/L, T-P 0.0㎎/L로 6개 항목 전부가 기준 이내였다.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처리수 수질 분석 결과

농가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유 연구사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 합천에서 시연했을 때 농가 반응이 괜찮았다”며 “이 기술을 활용하면 중산간과 고지대에서도 용수 확보가 가능하겠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물탱크 습기와 싸운 모니터링 시스템

개발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애를 먹은 대목은 뜻밖에도 물을 모으고 보내는 장치가 아니라, 농가가 물을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확인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이었다.

유 연구사는 “농가에서 물탱크에 물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개발했는데, 실증 과정에서 쓴 초음파식 수위계가 물탱크에 습기가 차면서 정밀도가 떨어졌다”며 “그 부분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해법은 수위를 재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비접촉 방식 대신 물에 잠긴 상태에서 수압으로 수위를 읽는 장치를 택했다. 유 연구사는 “초음파식 수위계에서 압력식 수위계로 변경하면서 수위 측정 문제가 해결됐다”며 “이를 통해 앱 기반 강우 유출수 모니터링 시스템이 원활히 작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장 보급을 염두에 둔 내구성 확보도 과제였다. 유 연구사는 “현장에 적용해 실증하다 보니 집수장치와 하이드로사이클론 등의 내구성이 관건이었다”며 “보급 시 파손되거나 유지가 어려운 문제가 있어, 농가와 현장에서 유지·보수가 편하도록 일반 설비에 비해 유지보수 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연구했다”고 말했다. 

초기 투자비 870만 원…관정보다 싸다

보급 확대의 관건인 경제성에서도 지하수 관정 방식보다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5톤 물탱크 5개를 포함한 무동력 통합시스템의 초기 투자비는 870만 원으로, 태양광 기반 지하수 관정 시스템의 1390만 원보다 37.4% 적다. 연간 운영·유지관리비 역시 75만 원으로 관정 방식(100만 원)보다 25% 낮다. 운영비는 물탱크 청소비 50만 원, 배관·밸브·조인트 및 수격펌프 소모품 교체비 15만 원, 수질 분석 외부 의뢰비 10만 원으로 구성된다.

유 연구사는 “경제성 평가를 해보니 시설 설치비가 800만 원대인 데 비해 지하수 관정을 설치하면 1400만 원가량이 든다”며 “지하수 관정보다 우리 기술이 경제성이 있다고 보고, 그래서 보급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기반 지하수 관정 시스템과 무동력 통합시스템 경제성 비교

2027년 사업 반영 목표…축산·조경·소방용수로도

기술은 이미 정책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연구진은 2025년 12월 농림축산식품부에 정책 제안을 해 ‘가뭄대비 용수개발사업’ 지원 대상에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유 연구사는 “현재 추진 중이며 2027년을 목표로 사업화하려 하고 있다”며 “지자체에서도 이런 기술이 궁금하다며 연락이 온다”고 전했다. 이어 “농식품부와 다시 통화해 보니 지자체 수요가 있으면 반영이 가능하다고 했다”며 “지자체 요구가 이어지면 반영될 수 있다고 보고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적용 분야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유 연구사는 “농업뿐 아니라 축산이나 조경에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농업 외 분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난 대응 임시급수, 특히 소방용수로의 활용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저장해 둔 물을 화재 등 급한 상황에 호스만 연결하면 쓸 수 있으니 그 부분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해외 적용에 대해서도 “충분히 접목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탱크를 단계적으로 늘려 나가는 구조여서 공급 규모도 확장할 수 있다. 유 연구사는 “단계적으로 물탱크를 설치하는 방식이라 웬만한 시골 마을에 충분히 공급할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후속 연구의 무게중심은 기술 개발에서 보급으로 옮겨 간다. 유 연구사는 “빗물 연구는 오래전부터 해왔고 기술 고도화는 확보했다고 생각한다”며 “이 기술을 갖고 과연 얼마나 확대하고 보급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이 기술 보급을 강조해 온 점도 들었다. 유 연구사는 “청장님도 보급을 강조하시는 만큼 후속 연구는 보급 확대 방향의 실증 연구와 신기술 농업기계 지정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극한 가뭄에 대비해 소규모 지하수와 연계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의 확장도 검토 대상이다. 

유석철 연구사는 "우리 연구가 농가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현장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유석철 연구사는 "우리 연구가 농가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현장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온실 내재해에서 빗물, 그리고 농기계 안전으로

유 연구사는 2013년 10월 공채로 국립농업과학원 농업공학부 재해예방공학과에 입사했다. 전주가 고향인 그는 농업기계학을 전공하고 전북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그는 “농촌진흥청이 전주로 이전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전공도 살리고 싶었다”고 입사 배경을 설명했다.

연구 궤적은 농업 현장의 재해와 안전을 관통한다. 2016년부터 재해예방공학과에서 원예특작 분야 온실의 내재해시설 안전성 연구를 수행했고, 지난해 소속 연구실이 밭농업기계과로 편입되면서 생산기반 안전에 초점을 맞춘 연구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현재는 농기계 안전 분야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GPS 데이터를 활용해 농기계 이용 실태를 분석하는 연구로,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시범단지에서 트랙터와 이앙기, 콤바인에 GPS 단말기를 부착해 작업 최적화 수준을 분석하고 있다. 유 연구사는 “백산농협이 하는 농작업 대행에서 콤바인 등에 단말기를 부착해 작업량을 GPS 데이터로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유 연구사는 현장을 다시 꺼냈다. 그는 “기후변화가 극심해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연구가 농가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현장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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