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농장’… 함안 치유농장 피카그린 청년농 이상엽 대표

온라인 예약 고객 1736명 중 약 150명이 세 번 이상 재방문 30년 된 통나무집 고쳐 체류형 치유 공간 준비

이현우 기자
승인 수정

AI브리핑

경남 함안군 가야읍 치유농장 피카그린은 이상엽 대표 가족이 계절별 꽃·음식·수확 체험과 지역 기관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2023~2025년 온라인 예약 손님 1736명 중 약 150명이 세 번 이상 재방문했다. 피카그린은 30년 된 통나무집을 치유농업센터로 리모델링해 숙박 공간을 마련하고, 11월 암 환자와 가족 대상 2박 3일 프로그램 ‘팜투테이블 그리고 쉼’을 처음 선보인다.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로 꽃꽂이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다.(사진 = 피카그린 제공)
체험 프로그램 중 하나로 꽃꽂이 클래스가 진행되고 있다.(사진 = 피카그린 제공)

농장 예약 기록을 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온라인으로 예약해 다녀간 손님 1736명 가운데 약 150명이 세 번 이상 다시 찾았다. 경남 함안군 가야읍의 치유농장 ‘피카그린(Pick a Green)’ 이야기다. 손님은 대부분 대구·부산·창원·진주 등 인근 도시에서 오지만, 전남 순천과 대전에서 찾아오는 가족도 있다.

피카그린은 1977년 문을 연 ‘동동바구 농장’이 2021년 선보인 치유농업 브랜드다. 단감 농사로 시작해 돼지 방목, 느타리버섯, 사슴 사육을 거쳐 블루베리로 주력 품목을 바꿨다. 2012년 체험농장, 2015년 교육농장으로 영역을 넓혔고 2016년 농촌융복합산업 사업자 인증을 받았다. 농장 규모는 임야를 포함해 약 4만 9500㎡(1만 5000평)다.

농장은 가족 넷이 함께 꾸린다. 사회복지사인 어머니 정경숙 씨가 치유음식과 쌀누룩 발효를, 아버지 이광수 씨가 작물 재배와 시설 건축을, 플로리스트인 아내 최민경 씨가 꽃 프로그램을 맡는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귀농한 청년 창업농 1기 출신 이상엽 대표는 농장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 사진 촬영을 담당한다. 10월 14일 피카그린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함안에서 치유농장을 하게된 계기가 있었나?

서울에서 학교와 회사를 다니며 13년 정도 살았다. 첫 직장은 여의도, 다음 직장은 서울역 근처였다. 도시 생활이 너무 힘들었다. 삭막하기도 했고, 사회초년생이라 월급이 적다 보니 집세와 생활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도 계속 아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열이 한 달 동안 이어진 적도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일궈 오신 농장으로 내려오게 됐다.

피카그린 이상엽 대표.
피카그린 이상엽 대표.

특히, 서울에서 플로리스트로 일하던 아내가 결혼 전부터 농장에 내려와 손님들이 꽃을 직접 꺾어 꽃다발을 만드는 수업을 열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2019년쯤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꽃을 직접 꺾어 만드는 수업은 거의 없었다. 그때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많이 늘었다.
 

세 번 이상 다시 찾은 손님이 약 150명이다. 재방문이 많은 비결은 무엇인가?

계절마다 프로그램이 바뀌는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마트에 가면 블루베리도 사과도 늘 있으니, 정작 언제 나는지는 잘 모르지 않나. 그걸 알려 주자는 생각으로 그때그때 농장과 자연에 있는 것들로 수업을 바꿔 간다. 봄에는 제철 꽃으로 꽃다발을 만들고, 여름에는 블루베리를 수확한다. 가을에는 텃밭 채소를 거둬 바비큐로 즐기고, 겨울에는 말린 꽃으로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든다. 손님은 거의 다 도시에서 오시고 함안 손님은 거의 없다. 부산에서 아이들과 일고여덟 번 오셨다는 분도 있다.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꽃, 음식, 수확 세 가지가 중심이다. 절화 재배지에서 30여 종의 달리아를 비롯해 다양한 꽃을 키우는데, 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운 품종이 많아 현역 플로리스트들도 찾아온다. 꽃에는 약을 전혀 치지 않아 아이들이 마음껏 만져도 된다. 요리 수업은 어머니가 맡는다. 시판 조미료 대신 직접 만든 쌀누룩 발효 양념으로 상추 겉절이를 무치고, 농장에서 키운 표고버섯과 채소로 비빔밥을 차린다.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버섯 채취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버섯 채취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사진=피카그린 제공)

블루베리는 노지와 온실을 합쳐 약 6600㎡(2000평)를 키우는데, 피카그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물이다. 수확 체험은 1인당 500g을 직접 따고 팜카페에서 음료 한 잔을 마시는 방식이다. 평일에는 기관 프로그램, 주말에는 네이버로 예약한 개인 손님 위주로 운영한다.
 

블루베리 수확 체험에 특색이 있다고 들었다.

원래는 직거래로 팔았다. 그런데 블루베리 1kg을 택배로 보내려면 플라스틱 박스가 다섯 개나 들어간다. 남는 것도 없고 자원도 지나치게 많이 쓰는 것 같아 판매를 모두 체험으로 돌렸다. 지금은 손님들께 집에서 다회용 용기를 가져오시라고 안내한다. 다 마신 생분해 컵도 버리지 않고 꽃이나 채소 모종을 심는 화분으로 다시 쓴다. 종이 포장재는 원하는 분만 따로 사시게 하고, 그 수익은 연말에 사육곰 보호시설을 만드는 단체에 기부한다. 아이들 교육하러 오시는 건데 편하다고 일회용품을 쓰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나. 생각보다 부모님들이 더 좋아하신다. 아이들은 자기 통에 스티커를 붙여 오거나 예쁜 바구니를 챙겨 온다.
 

다른 체험농장과 차별화된 점은 무엇인가?

기존 농장은 대부분 논이나 밭 한가운데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웰니스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농장에는 화산사초가 자생하는 버드나무 습지 산책로가 있고, 바오밥나무가 자라는 다육식물원도 있다. 소품과 테이블은 아버지가 목공방에서 하나하나 직접 만드셨다. 스마트팜이 대세인 시대에 우리는 오히려 손으로 하는 고전적인 방식으로 농장을 채워 나가고 있다.
 

지역 기관과 연계한 프로그램도 활발한 것 같다.

2023년에는 한국장애인부모회 함안지회와 함께 발달장애인 대상 10회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25년 가을부터는 함안군보건소, 함안군농업기술센터와 치매 환자 보호자 대상 8회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2026년으로 2년째다.

함안군 보건소와 연계해 임산부 가족 및 난임부부 대상 치유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함안군 보건소와 연계해 임산부 가족 및 난임부부 대상 치유농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보건소와 임산부 프로그램을, 함안군청소년수련관과 학생 대상 다회차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있다. 치매 환자 보호자분들은 매일 환자를 돌보느라 스트레스가 정말 크다. 어머니가 정성껏 식사를 대접하고, 꽃다발을 만든 뒤 인생 사진을 찍어 드렸더니 드레스를 차려입고 오신 분도 있었다. “이 시간만 기다렸다”,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함안에는 치유농업을 하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이 인스타그램을 보고 인스타그램 메시지(DM)로 먼저 연락을 주신다.
 

요즘 가장 집중하는 일은 무엇인가?

치유농업센터를 만들고 있다. 30년 된 통나무집(1층 약 99㎡·30평, 2층 약 50㎡·15평)을 리모델링해 1층에는 요리·화훼 프로그램 공간과 상담실을, 2층에는 숙박 공간을 들인다.

체류형 치유 공간으로 변모 중인 통나무 집 전경.
체류형 치유 공간으로 변모 중인 통나무 집 전경.

새로 짓는 것과 비용이 비슷했지만, 세월이 담긴 집이 너무 아까워 살리기로 했다. 공사 대부분은 아버지가 직접 하신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를 갖춰 최대 8명까지 묵을 수 있다. 아침에는 텃밭 채소를 직접 수확해 샐러드를 만들어 드실 수도 있다.
 

센터가 문을 열면 운영은 어떻게 달라지나?

냉난방이 되는 실내 공간이 생기면 날씨와 상관없이 1년 내내 운영할 수 있다. 또 다회차 수업은 부산처럼 먼 곳에서 매주 오기가 어렵다. 2박 3일 머물며 활동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이라면 그 문제를 풀 수 있다. 앞으로 평일에는 보건소·교육청·복지시설과 연계한 다회차·체류형 전문 프로그램을, 주말에는 일반 손님을 위한 예방적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11월에는 암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2박 3일 프로그램 ‘팜투테이블 그리고 쉼’을 처음 선보인다.
 

피카그린이 궁극적으로 그리는 모습은 무엇인가?

체류형 예방적 치유농장이다. 치유농업에는 발달장애인처럼 전문 프로그램이 필요한 분들을 위한 특수목적형도 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농장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대인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사무실에서는 파티션에 갇혀 있고, 버스와 지하철에는 늘 누군가 있고, 콘크리트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농장에 와서는 혼자 생각할 시간도 갖고, 바람과 자연을 느끼며 쉬었다 가면 좋겠다. 숙소 운영을 시작하는 지금이 피카그린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이현우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 기사

[인터뷰] 정선옥 한국농업기계학회장…ISMAB 2026, 아시아 5개국 농기계 시장·산업 동향 공유[인터뷰] 정선옥 한국농업기계학회장…ISMAB 2026, 아시아 5개국 농기계 시장·산업 동향 공유2026.10.15[인터뷰] 신재훈 농촌진흥청 농업지능데이터팀장 “범용 AI가 못 하는 걸 이삭이가 해준다”[인터뷰] 신재훈 농촌진흥청 농업지능데이터팀장 “범용 AI가 못 하는 걸 이삭이가 해준다”2026.10.14[인터뷰] 서윤경 쉐어그린 대표, ‘SG10’으로 2028년 아시아 5개국 수출 목표[인터뷰] 서윤경 쉐어그린 대표, ‘SG10’으로 2028년 아시아 5개국 수출 목표2026.10.07기숙사 404호 동기들,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 정상에 서다기숙사 404호 동기들, 여성농업인 농기계 챌린지 정상에 서다2026.10.06[인사] 경북대학교 (2026년 10월 1일 자)[인사] 경북대학교 (2026년 10월 1일 자)2026.10.05빗물로 밭에 농업용수 댄다…농진청 무동력 기술, 물 부족량 최대 57% 줄여빗물로 밭에 농업용수 댄다…농진청 무동력 기술, 물 부족량 최대 57% 줄여2026.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