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의 삐딱선] 농지 전수조사·논콩·상생기금…농민이 정부 정책을 믿지 않는 이유

이현우 기자
승인 2026.10.05 08:34수정 2026.10.05 08:34

2026년 가을 농촌은 유난히 뒤숭숭하다. 정부가 진행하는 농지 전수조사를 두고 “결국 땅을 빼앗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마을마다 돈다. 정부가 다시 꺼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논의에는 축산 농가들이 “정부가 이미 가입을 결정해 놓고 의견 수렴 시늉만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농민단체들이 10월 15일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선 이유다.

정부가 9월 29일 내놓은 영향분석에서도 CPTPP에 가입하면 협정 발효 후 15년간 농업 7100억 원, 임업 606억 원(이상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수산업 817억 원(한국해양수산개발원) 등 농림수산업 생산이 해마다 8523억 원 줄어든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효 10년 후 실질 GDP가 미가입 때보다 0.38%p 높아질 것으로 본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는 “충분한 보완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이 말을 믿는 농민은 많지 않다. 농민들이 정부 발표를 듣고 가장 먼저 따지는 건 정책의 내용이 아니다. 이번 정책이 언제 뒤집힐지다.

 

3년마다 접은 논 타작물 정책, 투자비는 농가 몫

농민의 불신은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왔다. 논에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심도록 한 ‘논 타작물 재배’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쌀 과잉을 해결하겠다며 2011년 논 소득기반 다양화 사업을 시작했지만 3년 만에 접었다. 2014~2017년에는 중앙정부 차원의 직접적인 타작물 재배 지원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2018년에는 ‘쌀 생산조정제’(논 타작물 재배 지원 사업)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했다가 이번에도 3년 만에 끝냈다.

정부를 믿고 배수시설을 고치고 콩 수확기를 들여놓은 농가는 사업이 끊기자 설비를 놀리거나 다시 벼농사로 돌아갔다. 정부는 2021년과 2022년에는 지자체와 벼 재배면적 감축 협약을 맺고 참여 농가에 공공비축미 추가 배정, 농가 자금 지원 등 간접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정책은 3년마다 바뀌는데 농민들은 수년에 걸쳐 투자비를 갚아야 한다.

논콩 사례는 더 심각하다. 정부는 2023년 시행한 ‘전략작물직불제’로 논콩·조사료 등의 재배를 적극 권했다. 그리고 2025년에는 벼 재배면적 조정제를 공식 시행해 총 8만ha 감축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논콩이 늘어 콩값 하락이 우려되자 2026년에는 벼 감축 목표를 유지하면서도 ‘수급조절용 벼’에 직불금을 주는 제도를 새로 만들었다. 콩을 심던 농가가 벼로 돌아오면 정부 보급종 종자를 먼저 배정하는 인센티브까지 검토됐다. 불과 1~2년 전 “벼 대신 콩을 심으라”던 정부가 이제는 “콩 대신 벼를 심으면 혜택을 주겠다”고 하는 셈이다. 정부 말을 가장 성실하게 따른 농가가 가장 먼저 손해를 봤다.

 

상생기금 10년간 3255억 원, 목표의 32.6%에 그쳐

시장 개방의 이익을 농업과 나누겠다던 약속도 마찬가지다.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때 정치권은 무역이득공유제 대안으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만들었다. 10년간 해마다 1000억 원씩 모두 1조 원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17년부터 2026년 7월까지 모인 돈은 3255억 원으로 목표의 32.6%에 그쳤다. 그나마 민간기업 출연액(1532억 8000만 원)은 공공기관(1714억 7000만 원)보다도 적었다. 정부는 2027년 예산안에 처음으로 20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대통령이 7월 16일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에서 정부가 먼저 출연하라고 주문한 뒤의 일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통상부가 10년 동안 지키지 못한 약속이 최고 권력자의 한마디에 겨우 움직였다.

 

수많은 해명에도 가라앉지 않는 농지조사 불안

대통령의 한마디로 시작된 농지 전수조사에 대한 현장 불신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은 지난 2월 국무회의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농지를 전수조사하고 강제 매각명령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5월에는 농지법이 개정돼 지방정부의 처분명령이 재량에서 의무로 바뀌었고, 같은 달 18일 건국 이후 처음으로 전국 농지 195만ha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시작됐다. 7월 기본조사에서 조사 필지의 27%인 284만 필지가 위반 의심으로 분류되자 농촌은 술렁였다. 고령으로 농사를 못 짓고 이웃에게 맡긴 땅, 형제들과 함께 상속받은 땅까지 처분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쏟아졌다.

그러자 정부는 9월 21일 당정협의에서 투기가 아닌 관행적 위반은 처분하지 않고 정상화·양성화하겠다며 특별조치법 제정 계획을 내놨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9월 28일 페이스북에 “잘못 알려진 사항이 너무 많고 이로 인한 오해가 재생산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글을 올렸고, 9월 30일에는 전북 남원에서 마을 이장들과 간담회를 열어 “농업인들이 농지 조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가 9월 16일부터 10월 2일까지 낸 농지조사 관련 설명자료와 언론 보도에 대한 해명자료만 7건이다. 이틀 반에 한 번꼴로 해명에 나선 셈이다. 그런데도 현장의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정부는 “투기와 일반 위반을 구분한다는 원칙은 처음부터 분명했다”고 거듭 밝히지만, 한 경제지는 “7개월 만의 유턴”이라고 쓰고 농민들은 이 변화를 또 한 번의 정책 선회로 받아들인다. 장관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 불과 일주일 전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저항과 반발 때문에 모든 정부가 회피했지만 저는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농민은 어느 말을 믿어야 하는가. 정상화의 근거가 될 특별조치법은 아직 국회 문턱도 넘지 않았다. 해명자료가 아무리 쌓여도 법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농민에게는 또 하나의 ‘바뀔 수 있는 약속’일 뿐이다.

 

정부 반대로 하면 돈 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자 농촌에는 씁쓸한 말이 돈다. 경기 이천의 논콩 재배 농가 A씨는 “정부가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면 돈을 번다”고 말했다. 정부가 줄이라는 작목은 오히려 값이 오르고, 늘리라는 작목은 몇 년 뒤 과잉으로 값이 떨어진다는 경험칙이다. 농민들 사이에서 이 말은 농담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됐다. 정책 신호를 거꾸로 읽는 농민이 늘수록 수급 정책은 효과를 잃고, 정부는 더 센 처방을 꺼내고, 농민은 더 의심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정책 신뢰 회복을 위한 제언

정책 신뢰를 되찾으려면 정부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

첫째, 작목 전환처럼 시설 투자가 필요한 정책은 5년 이상 지원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예산 사정이나 그해 작황에 따라 사업을 접을 수 없도록 일몰 기준과 출구 전략을 처음부터 공개해야 한다.

둘째, 정책을 바꿀 때는 기존 참여 농가를 위한 경과 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정부를 믿고 투자한 농가가 정책 변경의 비용을 혼자 떠안아서는 안 된다.

셋째, 수급 정책은 1년 단위 땜질이 아니라 쌀·콩·밀 등 주요 작물을 함께 보는 중장기 수급 계획 속에서 짜야 한다. 콩을 늘리면 콩이 남고 벼를 줄이면 쌀이 모자라는 일은 계획 없이 정책을 냈다는 뜻이다.

넷째, 시장 개방의 이익을 나누는 일은 기업의 선의에 맡겨둘 일이 아니다. 2027년 정부 출연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무역이득공유를 제도화하고 재원 규모와 사용처를 법에 명시해야 한다.

다섯째, 농민의 삶을 흔드는 정책은 설계 단계부터 현장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농지조사처럼 결론을 먼저 던지고 반발이 커진 뒤에 해명과 보완책을 쏟아내는 방식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특별조치법부터 연내에 확실히 처리하고, 대통령실과 주무부처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농업은 한 해 농사로 끝나지 않는다. 씨를 뿌리기 전에 기계를 사고, 땅을 고치고, 판로를 만든다. 그래서 농민에게 정책은 몇 년을 내다보고 거는 약속이어야 한다. 정부가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지 않으면 어떤 보완 대책을 내놓아도 농민은 믿지 않는다. 신뢰는 해명자료가 아니라 지켜진 약속이 쌓여야 생긴다.

이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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