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종효 칼럼] 고구마 파기에서 조직배양으로
[서종효 칼럼] 전국청년농연합회 서종효 회장(희망토 대표 / 달서상인스마트팜 시설장)
구도심 안쪽 도시재생으로 식물공장을 시작한 지도 꽤 됐다. 달서상인스마트팜, 줄여서 ‘달팜’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처음엔 다들 이상하게 봤다. 시장통 한복판에 웬 농장이냐고. 근처 상인들도 “여기서 뭘 키운다는 거냐”며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막상 문을 열고 들어와 인공광 아래 줄지어 자라는 상추 등 쌈채소를 본 아이들의 반응은 매번 비슷하다. “여기가 농장이라고요?” 몇몇은 진짜 채소가 맞는지 손으로 만져보고 나서야 믿는다.
그럴 만도 하다. 농업 체험이라고 하면 다들 흙 묻은 장화, 고구마 캐기, 딸기 따기부터 떠올린다. 나도 2011년부터 십수 년째 흙을 만지며 농사를 배웠고, 지금도 그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안다. 땀 흘려 수확하는 경험은 앞으로도 농업 교육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런데 요즘 학교 단위로, 가족 단위로 농장을 찾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농업의 모습이, 정작 지금 농업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교과서와 현장 사이의 간극… 첨단 생명공학으로 진화한 농업 현장
실제 농업 현장은 이미 많이 달라졌다. 무균실에서 세포 몇 개로 병에 강한 종묘를 대량으로 길러내는 조직배양, 빛과 양분을 데이터로 정밀하게 조절하는 스마트팜, 유전 정보를 활용해 지역 환경에 맞는 씨앗을 골라내는 기술까지, 이제 농업은 흙을 다루는 일을 넘어 생명공학이자 데이터 산업에 가깝다. 나 역시 국내 농장 운영과는 별개로 중앙아시아 농업기술 협력 사업을 진행하면서, 씨앗 하나 고르는 일에도 얼마나 정교한 데이터와 기술이 들어가는지를 매번 실감한다. 문제는 이런 변화를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볼 기회가 정작 시민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학교 교과서 속 농업과 실제 농업 현장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나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눈빛을 바꾼 스마트팜
달팜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빌딩건물 속에서 조그마한 모종이 큰 상추로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면, 그때부터 아이들 눈빛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냥 신기해서가 아니다. “이게 농업이라고?”라는 질문 뒤에, 농업을 흙 파는 일이 아니라 실험하고 관찰하고 데이터를 다루는 일로 다시 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빽빽한 주택 빌딩 사이에서 채소가 자라는 걸 보며 도시와 농업이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학생은 견학을 마치고 “농사짓는 사람은 다 시골에 사는 줄 알았는데, 이런 것도 농업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농업이 힘든 노동이 아니라 연구원, 데이터 분석가, 재배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되는 아이들도 많다.
농업의 첫인상이 청년 농업인의 미래와 진로를 결정한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청년들이 농업을 진로로 고려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가 무엇이냐에 따라, 실제로 농업 분야에 도전하는 청년의 수도 달라진다고 본다. 청년농업인연합회 회장으로서 정책 논의에 참여하면서 만난 많은 청년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농업이 힘들고 미래가 없는 일이 아니라, 기술과 데이터를 다루는 매력적인 산업으로 보였다면 더 일찍 뛰어들었을 거라고 말이다. 결국 체험교육농장에서 아이들이 보는 농업의 첫인상이, 십 년 후 그 세대가 농업을 바라보는 시선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미에서 스마트 모듈로… 체험교육농장 인프라 대전환 필요
그래서 나는 체험교육농장이 지금과는 다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말에 잠깐 다녀가는 야외활동지가 아니라, 첨단 농업 기술을 처음으로 접하는 창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걸 전국으로 확산시키려면 몇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낫과 호미 위주로 짜인 체험 인프라를 스마트팜이나 조직배양 체험 장비로 바꿀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또한 조직배양처럼 전문적인 생명공학 기술을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풀어줄 교육 콘텐츠와 강사진 양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 차원에서 기존 체험농장에 소규모 식물공장 모듈이나 간단한 조직배양 관찰 키트만 더해도, 아이들이 접하는 농업의 폭은 크게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씨앗 하나를 조작하는 생명공학 기술과, 그걸로 작물을 키워내는 정밀 생산, 그리고 그 과정을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체험교육농장은 사실 하나로 이어진 흐름이다. 이 셋을 따로 떼어 놓고 보면 각자 발전해도, 정작 서로 만나지 못하면 시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야기로 남는다. 아이들이 체험농장에서 조직배양된 묘목을 들여다보고, 도심 속 식물공장을 걸어보며 농업에 대한 인상을 바꾸는 그 순간부터, 우리 농업의 체질도 조금씩 달라질 거라고 믿는다. 고구마를 캐는 손과 시험관을 들여다보는 눈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다음 세대가 그리는 농업의 그림도 더 넓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