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김병갑 밭농업기계과장
2027년 '8대 작물 100% 개발'로 농촌 소멸 막는다 고추·배추 한 대로 심는 '겸용 정식기' 하반기 양산 본격화 "파편화된 R&D·보급·수출 아우를 강력한 구심체 필요"
벼농사의 기계화율이 99.3%에 도달해 사실상 완전 기계화를 이룬 반면, 2024년 기준 밭농업의 평균 기계화율은 63.3%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중에서도 파종·정식(30%)과 수확(50%) 단계의 기계화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밭농업의 기계화와 첨단 스마트화가 기술 도입을 넘어 대한민국 식량 안보와 농업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마지노선으로 꼽히는 이유다.
본지는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밭농업 기계 개발과 디지털 전환에 주력하고 있는 김병갑 밭농업기계과장을 만나 대한민국 밭농업의 미래와 현장 중심의 애그테크(Agtech) 전략을 들었다.
최근 농업 분야에도 AI와 자율주행 기술 도입이 활발하다. 하지만 수도작(벼농사)에 비해 밭농업은 기계화나 첨단 기술 도입이 상대적으로 더디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장 상황은 어떠한가.
"자동차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을 거쳐 FSD(자율주행)로 진화하듯, 농기계도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이미 벼농사 분야는 5~6년 전 도입된 이앙기 직진 보조 장치가 초기 우려와 달리 잘 활용되고 있으며, 현재 평야 지대에서는 트랙터에 자율주행이 거의 필수로 적용될 만큼 변곡점을 넘었다.
반면 밭농업은 갈 길이 멀다. 밭은 경사지가 많고 돌이 많아 지형 자체가 험난하다. 게다가 작물 종류는 수십 가지인데 작물별 재배 면적은 벼농사의 10분의 1 수준(품목당 5만~6만 ha)에 불과해 농기계 기업들이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기 어렵다. 현재 기계화가 기구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이유다. 하지만 트랙터 부착형 장비를 중심으로 4~5년 내에 밭농업에도 정밀 농업 센싱 기술과 자율주행이 급격히 도입될 것으로 확신한다."
농가들이 고가의 신형 농기계를 구입하는 데 다소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현장의 인식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외국인 근로자 확보에 어려워지면서 농번기에 돈을 아무리 줘도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대란이 일어났다. 인력을 구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안타까운 농가도 있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농가들이 '이제 인력 중심 농사는 안 된다, 기계밖에 답이 없다'고 절실히 깨달았다.
이에 청장년층을 비롯한 농업 현장의 요구에 발맞춰 청장님께서도 특별히 신경을 써주셨다. 지난해부터 총 160억 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8대 작물 전과정 기계화'를 추진 중이다. 파종·정식과 수확이 안 되던 16개 작업 단계에 대해 내년(2027년)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기계를 100% 개발 완료할 계획이다."
이번에 배추와 고추를 동시에 심을 수 있는 획기적인 정식기를 개발해 하반기 양산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다.
"올봄 경북 영양 등 주산지에서 현장 연시회를 마친 '배추·고추 겸용 정식기'다. 고추와 배추는 주산지가 겹치고 재배 농가가 많은데, 농기계 가격이 비싸다 보니 한 대로 두 작물을 모두 심을 수 있도록 경제성을 극대화했다.
현장에서 '배추는 모종이 작아 흙이 너무 많이 덮인다', '고추는 모종이 커서 심고 올라올 때 묘 끝이 다친다'는 의견이 있어 복토량을 미세 조절하고 묘 높이를 25cm 이하로 쓰는 방안 등으로 보완 중이다. 특히 농민들이 '심자마자 바로 물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 기계 뒷부분에 물통을 얹어 정식과 동시에 포기 주위에만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기능을 하반기 양산형 모델에 반영하기 위해 최종 검토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 본격 양산되면 농가에 큰 파급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수확 기계화가 가장 어려운 품목은 무엇인가.
"'고추'다.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 같은 땅속 작물은 캐내는 작업기가 잘 발달해 있고, 콩도 콤바인 수확이 수월하다. 그런데 고추는 한 번에 수확하는 게 아니라 여름철에 빨갛게 익는 순서대로 5~6 번을 손으로 따야 한다. 기계는 줄기째 잘라 한 번에 수확하는 구조라 적용이 불가능해 현재는 정부 개발 대상에서 일보 후퇴해 있다.
다만 최근 국내 로봇 기업들이 지능형 제초·수확 로봇을 실증 중이고, 외국처럼 한 번에 고추가 확 열리는 '일시 수확형 품목 개량'도 연구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AI 로봇 수확의 길이 열릴 것이다."
개발한 농기계의 보급 확산을 위한 전략이 무엇인가.
"그동안은 연구 개발 후 보도자료를 내고 현장 연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전국 6만 ha가 넘는 면적에 비해 몇몇 농가만 참여하는 연시회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홍보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농민 단체장들을 직접 만나보니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는 잘 안 봐도 '카카오톡'은 다 사용한다. 기계가 일하는 모습을 카톡용 짧은 영상(숏폼)으로 제작해 전국의 농업인 단체 톡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할 계획이다. '써보니 진짜 편하고 인건비가 줄더라'는 입소문을 카톡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다."
올해부터 주산지 임대 사업 예산 배분 방식이 지자체로 이양되면서 현장의 목소리가 더 중요해졌다고 들었다.
"과거에는 농식품부가 신청을 받아 예산을 줬지만, 이제는 시·군의 한정된 예산에서 농기계를 살지, 비료를 살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시·군 농기계 임대 사업소 담당자들은 직급이 낮거나 소수 직렬인 경우가 많아 예산 경쟁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농진청에서는 전국 시·군 담당 공무원 연찬회 등을 통해 새로 개발된 밭농업 기계의 우수성을 대대적으로 교육할 예정이다. 농민들이 25%의 임대료만 내고 75%의 보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주산지 일관 기계화 사업'에 밭농업 기계가 대거 포함되도록 지자체 수뇌부와 행정 전반을 설득해 나갈 것이다. 300평 이하 영세 농가를 위한 농작업 대행(임작업) 체계도 함께 다지겠다."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수출에 대한 비전은 어떠한가.
"국내 시장만 바라봐서는 대량 생산을 통한 가격 인하가 불가능하다. 필연적으로 수출해야 한다. 현재 글로벌 시장은 이미 한국 시장 깊숙이 들어온 일본 '구보다' 같은 선진 기업들이 버티고 있고, 뒤에서는 중국이 무서운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다. 중국은 국가 목표로 농기계화를 지정해 각 성(省)마다 100명 규모의 연구소를 두고 있으며, 아태 지역 시장 장악을 위해 국제기구에 매년 100만 달러씩 지원하고 있다. 한국이 1만 달러 내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자본 투입이다.
하지만 우리도 못 할 것은 없다. 과거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저가차로 진출해 지금은 제네시스로 인정받듯, 한국 농기계도 기술 신뢰도를 바탕으로 공세적으로 나가야 한다. 현재 농진청 내 국제기술협력과, 수출농업지원과와 협력해 볼리비아 고산지대 현지 기후와 품종에 맞춘 '감자 전과정 농기계화' 수출 프로젝트를 시범 타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밭농업 기계화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꼭 필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인가.
"R&D는 농진청, 보급은 농식품부와 지자체, 수출은 코트라 등으로 다 파편화돼 있어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 '구심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비전이 있다면 정부 기관, 민간 기업, 수출 기관을 아우르는 '농기계 수출 및 보급 협의체'를 발족해 박자를 맞춰 가고 싶다.
내년까지 기계 개발을 완벽히 마무리하고 사후 관리, 안전 교육, 수출길까지 촘촘히 준비하겠다. 우리 농업의 미래가 걸린 일인 만큼, 밭농업 기계화 현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