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0억 써서 1억 버는 스마트팜은 가짜"...퍼밋 박선기 대표가 말하는 '경제성'
매출 400억 애그테크 기업 성장한 퍼밋, ‘실속형 스마트팜’으로 글로벌 개척나서
"스마트팜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수천만 원짜리 AI 카메라나 드론이 아니라, 20만 원짜리 장비로 현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농민에게 가장 올바른 답입니다. 10억 원을 투자해 1억 원을 버는 스마트팜은 경제적으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1억 원을 투자해 1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투자 대비 효율(ROI)이 높은 모델이 현장에 뿌리내려야 합니다."
첨단 기술로 포장되기 쉬운 애그테크(AgTech) 시장에서, 스마트농업 종합 솔루션 기업 '퍼밋(FIRMMIT)'의 박선기 대표는 기술 그 자체보다 '현장 경제성'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다.
2017년 설립된 퍼밋은 종자 공급부터 온실 시설, ICT 제어, 재배 컨설팅, 농기자재, 유통·가공에 이르기까지 고품질 딸기 생산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 기업이다. 회사에 따르면 단돈 300만 원으로 시작한 퍼밋은 지난해 매출 400억 원을 기록했고, 올해 500억 원 달성을 앞두고 있다. 박 대표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과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불합리한 농가 설비 구조 개선에서 시작된 창업
박 대표는 퍼밋을 설립하기 전 냉난방공조(HVAC) 분야에서 일한 엔지니어였다.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로 귀농해 1~2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었다. 그는 귀농 생활 중 배관과 온실 설비를 고칠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비싼 인건비 탓에 제대로 된 수리를 받지 못하는 농가가 많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다.
마을 주민들의 비닐하우스 배기팬·유동팬 등 설비 보수를 도우며 점차 농사보다 농가 설비 개선에 집중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농업 설비 단가가 불합리하게 높게 책정돼 있다는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직접 바로잡고자 스마트팜 창업에 나섰다.
엔지니어로서의 기술 경험과 농사 경험, 현장을 다니며 익힌 병해충 지식을 바탕으로 한 사업은 작물 생리와 에너지 관련 난제를 하나씩 풀며 성장했다. 박 대표는 “거창한 목표보다 현장을 고치며 한 단계씩 성장해 왔으며, 기술은 농민이 실제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는 정직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악순환 끊은 ‘수랭식 LED 시스템’
퍼밋이 스마트팜 현장에서 주목한 핵심 문제는 온실 내 '에너지 효율'이다. 기존 공랭식 LED 조명은 발생한 열을 그대로 방출해 온실 내부 온도를 높이고, 이를 식히기 위해 대형 냉방 설비를 무리하게 가동해야 하는 ‘에너지 낭비의 악순환’을 만든다.
퍼밋은 냉각수가 조명 내부를 순환하며 발열을 직접 흡수·배출하는 ‘수랭식 LED 시스템’으로 이 한계를 극복했다. 회사 자체 실증 결과, 수랭식 기술은 온실 내부 온도 상승을 원천적으로 억제해 기존 시스템 대비 전기요금을 38% 절감했으며, LED 모듈을 적정 온도로 유지해 조명 수명도 늘렸다.
11단계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딸기’
한국 딸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지닌 작물이다. 일반적인 엽채류 재배가 4단계 정도의 공정으로 이뤄진다면, 딸기는 관부(크라운) 관리, 잎·꽃 솎아내기, 정교한 양액 제어 등 11단계에 달하는 고난도 기술이 요구된다.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선발 기업이 기술 격차를 유지하기에 유리하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 딸기 연간 생산량은 약 15만 톤 규모로, 채소류 중 최상위권 소득 작목으로 꼽힌다. 업계는 국내 딸기 시장을 약 1조 5000억 원 안팎으로 추산하며,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경우 성장 여지는 더욱 커진다.
효율로 승부하는 조직 운영과 기술 개발
박 대표는 사업 영역이 넓은 스타트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역할 분담’과 ‘자율성’을 핵심 조직 운영 원칙으로 삼았다. 농업계 공직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베테랑 전문가와 젊은 AI·IT 엔지니어를 한 팀으로 묶어 실전 생육 데이터와 첨단 기술의 시너지를 내고, 현재 20개 이상의 주요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기술 개발에서도 과도한 비용 투입을 경계한다. 온실 내 습도 제어나 공기 순환 같은 문제는 반도체 공장 등 산업 현장에 이미 검증된 해법이 존재한다. 박 대표는 “검증된 산업용 기술을 농업 현장에 맞게 응용하는 것이 개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현실적인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성과 겨냥한 ‘월드 퍼밋 딸기 센터’
퍼밋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월드 퍼밋 딸기 센터’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 바이어가 구경만 하고 가는 곳이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성과가 나오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1만 5000평(약 4만 9600㎡) 규모의 수직농장과 육묘장을 조성해 예비 농업인을 위한 실무 중심의 고강도 교육을 진행하고, 관련 분야 우수 기업들과 패키지 형태로 해외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회사는 센터에서만 연 매출 200억 원 이상을 목표로 제시했다.
“따뜻한 온실 밖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박 대표는 청년 농업인을 향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많은 청년 농업인이 온실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만 농사를 배우려 하지만, 실제 현장은 온실이 없는 경우도 많고 높은 초기 투자비라는 벽에 부딪히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따뜻한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실전 유통과 비용 절감 감각을 익힐 수 있는 현장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며 “농업은 부지런함과 효율적인 시스템이 결합하면 정직하게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장인 만큼, 화려한 기술보다 실질적인 수익성과 경제성에 집중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