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기계산업기사부터 드론까지”…원주 영서고 실습장에 피어난 애그테크의 미래
[인터뷰] 원주 영서고 산업기계과 황민호 교사와 정연성·한두진 군을 만나다
8월 한여름, 강원 원주 영서고등학교 산업기계과 실습장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방학이지만 학생 몇 명이 작업복 차림으로 트랙터 엔진 앞에 모여 있다. 볼트를 풀고, 부품을 늘어놓고, 다시 조립하고, 시간을 잰다. 9월 15일부터 17일까지 대구에서 열리는 FFK(Future Farmers of Korea) 전국 대회와 이달 22일부터 인천에서 치러지는 전국기능경기대회를 앞둔 막바지 연습이다.
전교생 522명, 30학급 규모의 농업계 특성화고인 영서고에서 산업기계과는 트랙터·콤바인·이앙기·경운기 같은 농업기계를 직접 뜯고 고치는 법을 가르치는 학과다. 현재 1학년부터 3학년까지 53명이 재학 중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황민호 교사와 실습장을 지키고 있던 정연성·한두진 군을 만났다.
“농업기계과에서 산업기계과로…이름은 바뀌었지만 뿌리는 그대로”
산업기계과의 뿌리는 농공과다. 황민호 교사는 학과의 내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농공과 하나였는데, 여기서 농업토목과, 농업기계과로 갈렸다. 고등학교 학과 이름은 대체로 대학 학과 이름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는데 대학의 변화에 따라 고등학교 학과명도 함께 바뀌었다. 이름은 산업기계과지만, 우리가 가르치는 핵심은 여전히 농업기계”라고 소개했다.
교육과정은 단계가 뚜렷하다. 1학년은 기초 과정으로 농업기계, 유압기기, 전기(회로) 등이 중심이다. 2·3학년에 올라가면 전공 실무 과목으로 전환돼 ‘농업용 기계 설치·정비’와 ‘건설기계 정비’ 두 축으로 나뉜다. 실제 현장에서 바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짜인 구성이다.
황 교사는 “1학년 때 농업기계·유압·전기를 먼저 가르치는 데는 이유가 있다”며 “지게차든 굴착기든 로더든, 결국 안에 들어 있는 건 내연기관과 유압이다. 기초를 잡아두면 어떤 기계로 넘어가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1학년 지게차부터 2학년 산업기사 필기까지, ‘자격 취득 로드맵’
이 학과의 특징은 촘촘하게 설계된 자격 취득 경로다. 황 교사는 이를 “우리 과의 로드맵”이라고 표현했다. 1학년 때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착기운전기능사, 로더운전기능사를 취득한다. 이어 전국 단위 영농학생축제(FFK)의 농업기계 이론·실무 분야에 출전한다. 여기서 다루는 40문항 시험 내용이 농업기계정비기능사·농업기계운전기능사 필기와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에,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곧 2학년 자격 취득으로 이어진다.
학생들은 또 농업기계산업기사 자격 취득에 도전한다. 농업기계산업기사는 농업기계 및 관련 설비의 제작·수리·정비·성능 시험 등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자격증으로, 농업기계·기계 등 관련 학과의 전문대졸 이상 또는 졸업예정자, 관련 직무 실무 경력 2년 이상 등의 자격을 갖춰야 응시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고교 재학생은 응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자격시험이다.
합격률도 높지 않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Q-NET의 농업기계산업기사 검정 현황에 따르면 2025년도 연간 기준 필기시험 합격률은 24.1%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한 고등학생에게는 농업기계산업기사 응시 자격이 부여된다. 이 학과 학생들이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참여하는 이유다.
황 교사는 “고교생이 농업기계산업기사에 응시하려면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며 “고등학교에서 산업기사를 딴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해 2학년 재학 중인 한두진(18·2학년) 군은 기능대회 입상 자격으로 농업기계산업기사 필기에 합격했고 지난달 23일 실기시험을 치렀다. 9월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 영서고의 2학년 교육과정에는 무인비행장치(드론) 교과도 편성돼 있다. 원주시와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의 AI 역량강화사업 예산을 확보해, 매년 3명 안팎의 우수 학생에게 드론 자격 취득 과정을 지원한다. 교육 시간과 비행시간을 채우면 1종까지 취득할 수 있으며, 나아가 교관 자격이나 다른 건설기계 자격까지 함께 취득하기도 한다.
황 교사는 “농약을 실은 드론을 운행하려면 결국 1종이 필요하다. 주요 농기계 회사들이 방제 드론 기종을 팔고 있으니, 서비스를 하려면 알아야 한다. 본인이 하고자 하면 배울 수 있는 길은 충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학과 사정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다. 현재 재학생은 1학년 20명, 2학년 11명, 3학년 22명으로 2학년만 유독 적다. 황 교사는 “그 무렵 관내 학생 수 자체가 적었고, 적성이 맞지 않아 중간에 학과를 떠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 2학년은 2009년생으로, 그해 전국 출생아는 44만 4849명, 합계출산율은 1.15명(통계청)으로 당시로선 역대 최저였다.
정연성, “형이 상을 받고 해외에 나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그런데 정연성(19·3학년) 군은 일곱 살 터울의 친형을 보고 이 길을 택했다. 같은 학과 출신인 형이 대회에서 상을 받고 후원을 받아 대만에 다녀오는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강렬했다. 정연성 군은 “상을 받고 해외에 나가는 형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였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착기운전기능사, 로더운전기능사, 농업기계정비기능사, 드론 1종 자격을 차례로 취득했다. 필기는 쉽지 않았지만, 대회 준비 과정에서 쌓은 실력 덕에 필기 면제 혜택을 받은 종목도 있었다. 지난해 강원도 기능경기대회에서 은상을, 올해 FFK 강원도대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며 전국대회 참가 자격이 생겼다. 그는 이 대회들이 진로를 결정지었다고 말했다. 정연성 군은 “2학년 때 대회에 나가보고 흥미를 크게 느꼈다”며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때 굳어졌다”고 말했다.
정 군은 이미 취업이 확정됐다. 강원 춘천에 있는 농기계 부품을 취급하는 업체로 10월부터 출근한다. 앞으로 농업기계운전기능사도 추가로 취득할 계획이다.
후배들에게 이 분야를 권하겠느냐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른 일은 AI가 대체한다고들 하는데, 이건 결국 사람이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오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만큼 나중에 더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기계 만지는 걸 좋아하던 한두진, 기능장까지 바라본다
한두진 군은 어릴 때부터 기계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 진학할 학교를 찾아보다 영서고에 산업기계과가 있는 것을 알고 진학을 결심했다. 그는 “농업기계를 주로 다루는 것 같아서 선택했다. 기계 만지는 걸 원래 많이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2학년이지만 그가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은 9개에 이른다.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착기운전기능사, 로더운전기능사, 농업기계정비기능사, 농업기계운전기능사, 드론 1종, 타워크레인운전기능사, 기중기운전기능사, 롤러운전기능사. 여기에 농업기계산업기사 필기까지 합격했고 지난 강원도 기능경기대회에서는 금상(1위)을 받았다.
그의 목표는 농업기술센터의 농업기계직 공무원이다. 현장 실무 능력을 갖춘 기술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대회와 자격 취득을 병행하면서 국어·영어·한국사와 전공 두 과목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
자격증 욕심도 여전하다. 그는 “농업기계 산업기사처럼 더 높은 자격증을 따고 싶다. 산업기사, 기사, 그리고 나중에는 기능장까지 가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 군 역시 후배들에게 이 길을 권하겠다고 했다. “농업기계는 확실히 수요가 있는데 할 줄 아는 사람이 적다. 그만큼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학에도 실습장은 돌아간다
두 학생 모두 이번 여름방학을 대회 준비에 쓰고 있다. 정연성 군은 9월 대구에서 열리는 FFK 전국대회를 준비 중이다. 종목은 경운기 엔진 분해·조립. 정해진 시간 안에 엔진을 완전히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정상 작동시켜야 한다. 반복 훈련 외에는 방법이 없다.
정연성 군은 “방학이라고 쉬면 감이 떨어진다. 여기서 상을 받으면 취업해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다”며 기계를 살펴봤다. 그는 방학 중 운전면허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한두진 군의 여름도 빡빡하다. 8월에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와 9월 FFK 전국대회를 연달아 준비하고 있다. 기능경기대회 과제는 트랙터 엔진과 트랙터 전반, 콤바인 유압회로, 이앙기 전기회로 정비까지 폭이 넓다. FFK 전국대회에는 강원도대회 2위 자격으로 출전한다.
그는 “도대회에서 금상을 받았지만 전국대회는 또 다르다. 방학 동안 손에 완전히 익히려고 거의 매일 나온다”며 각오를 다졌다.
“무한시동을 잡아낸 날, 정말 뿌듯했다”
두 학생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실습을 물었다. 정연성 군은 지난해 트랙터 정비 실습을 꼽았다. 그는 “같이 정비하던 친구가 조립을 잘못하면서 부품이 휘었다. 그대로 조립해서 시동을 걸었더니 시동이 꺼지지 않는 현상인 ‘무한시동’이 났다”며 “겨우 시동을 끄고 다시 분해하면서 원인을 찾았는데, 제어랙이 휘면 시동이 안 꺼지더라. 그걸 다시 펴서 수리를 끝냈다. 기계를 이해하고 직접 고쳐냈다는 게 정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한두진 군은 물어볼 사람이 곁에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막히면 선배들이나 선생님께 여쭤본다. 그러면 늘 잘 풀어주신다. 그래서 실습이 재밌다”고 말했다.
황 교사도 같은 대목을 짚었다. 결국 학생들을 붙잡는 것은 자격증 숫자가 아니라, 고장 난 기계가 자기 손에서 다시 살아나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격증을 많이 딴다고 소문이 나면서 동네 후배들 사이에 입소문이 도는 것도 사실”이라며 “그런데 정말 오래 남는 건 안 되던 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그 맛을 한 번 본 아이들은 알아서 실습장에 나온다. 지금 이 방학처럼...”이라고 말한 황민호 교사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애그테크 분야의 전문 인력 부족 속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경력을 쌓아가는 학생들을 보며 희망이 보였다. 가장 무더웠던 원주 영서고 산업기계과의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