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불모지에 ‘황금빛 이삭’…몽골 난제, K-농업기술이 풀다
[인터뷰] KOPIA 몽골센터 오명규 소장…홉드도 볼강군 3500㎡ 벼 시험재배 성공
“영하의 땅, 물조차 차가웠던 불모지에서 벼 이삭이 맺히던 날, 농업부 차관과 현지 농민들은 논둑을 떠나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평균 해발 1600m의 고산지대, 짧은 생육 기간, 강알칼리성 토양, 그리고 산에서 흘러드는 차가운 빙하수. 몽골은 고기와 밀은 자급하면서도 쌀만은 100% 수입에 의존해 왔다. 2023년 몽골의 쌀 수입량은 5만 7900톤(UN Comtrade 기준)에 달한다. 40여 년간 자체 벼 재배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40년의 공백을 메운 것이 대한민국 농업기술이었다. 농촌진흥청 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KOPIA) 몽골센터의 오명규 소장은 몽골 서부 홉드도 볼강군 지역에서 이앙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을 성공시켰다. 몽골 대통령까지 나서 훈장 수여와 감사의 뜻을 전할 만큼 의미 있는 결과였다.
오 소장은 1992년 농촌진흥청 농업연구사로 공직에 입문해 벼와 참깨 등 작물 육종 연구에 몸담았다. 국립식량과학원 과장과 남부밭작물개발부장 등을 거쳐 2023년 4월 KOPIA 몽골센터 소장으로 부임했다. 부임 전까지 몽골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원래는 아프리카 지역 지원을 생각했는데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다. 그래서 마침 공석이던 몽골센터 소장 자리에 지원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오명규 소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몽골 적응 벼 재배 프로젝트’의 뒷이야기와 향후 K-농업 패키지 수출 전략을 들었다.
첫해 심은 벼는 모두 죽었다…2024년의 실패
시작은 몽골 농업부 차관의 요청이었다. 식생활이 바뀌며 쌀 소비는 늘어나는데 자국 재배는 계속 실패하니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정중하지만 절박한 제안이었다.
첫 시도는 2024년이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조건이 불리했다. 몽골 측이 안내한 시험 재배지는 벼농사에 적합한 땅이 아니었다. 오 소장도 이를 알았지만 사업을 미룰 수는 없었다.
이앙까지는 마쳤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토양의 산도(pH)가 지나치게 높은 데다 기온까지 오르면서 벼가 양분과 약제를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 손을 써 볼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결국 그해 심은 벼는 모두 죽었고, 첫 농사는 수확 없이 끝났다. 실패 원인을 파악한 KOPIA 몽골센터는 이듬해 시험포장을 몽골 홉드도 볼강군으로 옮겼다.
“농가도, 논도, 기술자도 없었다”…왕복 3600km의 원격 지휘
볼강군은 생육 기간상 극조생종 재배가 가능한 마지노선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오 소장의 표현대로 "농가도, 논도, 기술자도 없는 무(無)의 상태"였다. 관개시설조차 없었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센터에서 시험포장까지는 왕복 3600km. 상주가 불가능한 거리였다. 오 소장은 현지 직원이 매일 보내오는 사진에 의존해 원격으로 응급처치를 지시해야 했다. 현지 토양은 강알칼리성 토양과 물이 지나치게 잘 빠지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벼 생육에 치명적일 만큼 차가웠다. 장비가 없어 논 조성부터 시비, 수확까지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UAE 사막에서 얻은 힌트…‘육묘 40일로 연장’
돌파구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왔다. 오 소장은 아랍에미리트(UAE) 사막 지대 벼 재배 프로젝트에 담당 과장으로 참여해 성공시킨 이력이 있다.
그는 “UAE가 높은 온도와 긴 생육 기간을 활용한 겨울 재배였다면, 몽골은 짧은 여름 생육 기간과 큰 일교차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조건은 정반대였지만, 극한 환경에 벼를 적응시키는 접근법 자체는 이식할 수 있었다.
여기에 1970년대 국내에서 쓰이던 35~40일 성묘(成苗) 육묘 기술을 결합했다. 육묘 기간을 40일 이상으로 늘려 못자리에서 생육을 미리 진행시키고, 본답에서의 생육 기간을 그만큼 단축하는 방식이다. 알칼리성 토양은 산성 비료와 토양개량제를 적절히 투입해 개량했다. 반세기 전 한국의 육묘 기술과 중동 사막의 실증 경험이 몽골 고산지대에서 만난 셈이다.
1990년대 고랭지 품종 ‘진부올벼’가 답이었다
품종 선택도 관건이었다. 초기 테스트에서는 UAE 성공 품종을 포함해 조생종을 중심으로 5~6개 품종을 들여와 비교 검증했다.
이 가운데 살아남은 것은 ‘진부올벼’ 하나였다. 1990년대 초 한국의 저온·고랭지용으로 개발된 품종으로, 110일 안팎의 짧은 생육 기간과 저온 환경을 견디고 유일하게 등숙과 추수에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이미 주력 자리를 내준 옛 품종이 몽골에서 제 몫을 찾은 것이다. KOPIA 몽골센터는 올해 진부올벼 단일 품종으로 집중 재배를 추진하고 있다.
“오후 3시에 물을 대라”…출수가 멈춘 7월
프로젝트가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은 2025년 7월 중순이었다. 첫 이삭이 나온 뒤 추가 출수가 돌연 멈췄다.
현장으로 달려간 오 소장이 찾아낸 원인은 차가운 관개수였다. 그는 즉시 관수 시간을 다시 계산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이 수로를 따라 이동하며 햇빛에 최대한 데워지도록 ‘오후 3시 관수’ 체계로 전환하고, 냉수해 극복용 특수 시비법과 병해방제를 긴급 적용했다.
수확 역시 맨손에 가까웠다. 탈곡 장비가 없어 콩 탈곡기로 나락을 털고, 선풍기로 검불을 날리고, 낫으로 벼를 벴다. 2025년 볼강 지역에서 이앙기로 모를 심을 때 현지인들이 환호를 질렀던 그 논에서, 마침내 황금빛 이삭이 맺혔다. 오 소장은 “농업부 차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수확 현장에서 논둑을 떠나지 못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고 회고했다.
국민 10%가 본 영상…훈장과 대통령 보고회
성과는 곧바로 몽골 사회의 반응으로 이어졌다. 현지에서 영향력이 큰 유튜버와 주정부 채널을 통해 소식이 퍼지며 몽골 국민의 10% 이상이 관련 영상을 시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몽골 식량농업경공업부(이하 농업부) 잠발체렌 차관이 장관 명의의 최고농업훈장을 수여했고, 2025년 12월 몽골 대통령 주재 보고회에서 성과가 발표됐다. 몽골 총리와 농업부·산업부 장관도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오 소장은 올 7월 이재명 대통령 방문 행사 당시를 특히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현지 교포들이 “몽골에서 한국 기술로 쌀을 생산하게 됐다”며 자부심을 보였을 때다.
그는 몽골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1만~1만 5000ha의 재배 면적 확보를 통해 10년 내 쌀 자급자족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ODA는 상생 구조”… 종자 넘어 통합 패키지로
오 소장은 이번 성과를 국내 농산업의 진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ODA는 수원국의 생산성을 높이는 동시에 우리 농산업이 함께 진출하는 상생(Win-Win)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몽골은 축산이 농업의 85%를 차지하고 가축 사육 규모가 7000만 마리(2022년 기준)에 이른다. 한국산 유전자원(수정란)과 동물용 의약품, 진단키트 수요가 높은 이유다. 벼 재배 역시 종자 제공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논 조성과 관개 시설, 노지 스마트팜 기술, 농기계를 하나로 묶은 ‘통합형 패키지’로 진출해야 한다는 것. 그는 “KOPIA가 현지에서 축적한 기술 검증이 우리 기업의 진출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아시아 시장을 노리는 국내 농기자재·애그테크 기업에 대한 조언도 내놨다. 몽골은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 시장을 잇는 교두보이자, 기후·토양 측면에서 혹독한 조건을 갖춘 테스트베드라는 것이다. 그는 “현지 시장과 규제, 소비자 동향을 파악하려면 현지에 상주하며 인프라를 갖춘 전 세계 22개국 KOPIA 센터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KOPIA 소장들은 현지 정부 네트워크와 인허가 루트를 잘 알고 있어 기업들의 시행착오를 크게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몽골 마트 진열대에 한국 기술로 만든 쌀을”
벼 재배에 성공했지만 향후 풀어야 할 과제는 많다. 2년간의 시험 재배로 가능성은 확인했지만, 등숙률은 아직 30% 수준에 머물러 있다. 통상 85% 이상인 한국의 벼 등숙률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아직 멀다. 생육 지연 문제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시험포장을 상업적 재배 단지로 발전시키려면 넘어야 할 벽이다.
오 소장은 이를 위해 한국농어촌공사 등 관계 기관과 협업해 ‘한국형 벼 재배 단지 및 관개 인프라’를 조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최종 목표는 분명하다. 오 소장은 “몽골 현지 마트에 한국 기술로 생산된 쌀을 정식 출시해 몽골 국민들의 식탁에 올리는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등숙률을 한국 수준의 8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