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별 인터뷰] 정선옥 한국농업기계학회 회장(충남대 교수)
“농업 AX 골든타임…플랫폼 종속 시 주권 잃는다” 30년 ‘정밀농업’ 외길…“거대 자본 맞설 융복합 플랫폼 구축 시급” “스마트농업정비사 신설·농업기술센터 정규직화로 청년 유입 유도해야”
인구 감소와 고령화, 기후 위기라는 삼중고에 직면한 대한민국 농촌의 해결책으로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이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소규모 경작지 위주의 국내 환경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었으나 현재 첨단 농기계 기술은 농업의 사활을 가르는 핵심 동력이 됐다.
이에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창간호를 맞아 대한민국 농업기계 분야의 최고 권위 학회인 한국농업기계학회를 이끄는 정선옥 회장(충남대학교 스마트농업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을 만났다. 1996년 농촌진흥청에서 국내 최초 무인 트랙터 연구를 시작으로 30년간 정밀농업 외길을 걸어온 정 회장은 본지와의 창간 특별 인터뷰에서 “국내 농기계 산업의 위기 돌파를 위해 산·학·관·연의 유기적인 결합과 현장 중심의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이제는 속도와 생태계 조성의 문제”라며 과감하고 철저한 농업 AX(인공지능 전환)를 주문했다.
대담: 이현우 편집국장
일시: 2026년 5월 20일
장소: 충남대학교
-30년 전부터 정밀농업 분야를 연구하셨는데, 최근 농업 분야에서도 AI가 주목받는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로울 듯하다.
“선진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가던 길이다. 우리도 30~40년 전부터 그런 방향은 제시됐다. 그렇지만 충분한 인력 등으로 고가의 첨단 장비를 서둘러 도입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면서 해당 기술의 현장 도입이 더뎠다.
이후 농업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도 몇 년 전부터 위기감을 느끼며 방향이 바뀌었다. 30년 전에 농업기술이 가야 할 방향성을 공감하고 시작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라도 방향이 잡혀 다행이다. 경지면적이 좁은 한국의 여건상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선진국이 수십 년간 고도화한 기술을 우리가 단숨에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최소 10년 이상은 사활을 걸고 사정없이 뛰어야 한다.”
-국내 스마트 농기계 및 AI 기술의 객관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장밋빛 이야기만 할 순 없다. 존디어(John Deere) 같은 글로벌 거대 자본과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선진국은 수십 년간 필드에서 고장 나고 고치며 업그레이드한 기술이다. 우리는 이제 시작이니, 정부가 지원율을 대폭 높여서 농민들이 부담 없이 첨단 기계를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장 피드백을 쏟아내야 기술이 성장할 수 있다.
진짜 걱정스러운 부분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플랫폼’이다. 농업이 데이터화·시스템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농기계 업체들이 밀리면, 결국 외국산 농업 플랫폼이 국내 안방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대만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플랫폼이 종속되는 순간 국가 토양 정보, 농산물 수급 정보 등 농업 주권을 모두 잃게 된다. 우리나라 농민들의 눈높이가 까다롭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이 눈높이에만 맞춘다면 세계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융복합 시스템을 만들어낼 기회가 있다. 국내 가전제품이 성장한 공식과 같다.”
-많은 기술이 개발됐지만 현장에선 보편화 단계라고 말하긴 어렵다. 결국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일본 등의 거대 자본에 비해 우리의 여건은 약하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과감하게 투자할 필요가 있는 시기다. 그리고 부처 간의 칸막이를 허물어야 한다. 생산자금 지원이나 로봇 원천기술 개발처럼 예산 규모가 큰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가 맡고, 현장 보급과 인력 양성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담하는 유기적 이원화가 필요하다. 산업체 지원은 산업부, 농업·농촌 지원은 농식품부가 하면 된다.
그리고 국내 다양한 농업 관련 정보를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필요해 취득해야 할 정보는 농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며 확보할 수 있다. 생산 과정은 지자체가 수집하고 농민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관리해 통계 등으로 정리하면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농지의 디지털 환경도 빠르게 조성해야 한다. 농기계의 진출입이 가능하도록 기반을 정비하고 디지털 농업이 수행될 수 있도록 전기·통신 제어 등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첨단기술 발전과 현장 보급 확산 등을 생각하면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도 중요하다.
“수확 관련 로봇의 개발 속도가 방제나 제초보다 다소 더디다. 수확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로봇이 과일을 인식하고, 익었는지(숙도) 판정하고, 작물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돌려 따거나 꼭지를 잘라야 한다. 작물마다 메커니즘도 다 다르다. 이 분야는 될 때까지 연구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선진국들은 결론이 나올 때까지 예산과 정책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그동안 단발성으로 과제를 이행해 아쉽다. 최소한 주요 작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와 실증은 정부가 지속적으로 인력과 예산을 집중해야 한다.“
-첨단기술이 현장에 뿌리를 내리려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장에는 관련 조직을 제대로 갖춘 곳을 찾기 쉽지 않다.
“첨단기술이 담긴 제품의 보급 정책은 지속성 부재로 한계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최근 지자체들이 몇 백억 원씩 스마트농업 공모 예산을 따온다. 그리고 본 사업이 끝나면 누군가 문제 해결 등을 위해 계속 관리하고 교육해야 현장에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정작 현장엔 전문 조직이 없다. 5급 팀장 자리 하나 없으니 일회성 행정으로 끝나는 것이다. 국가가 준 마중물 예산으로 지역에 확산하고 농민을 교육하려면, 시군 농업기술센터에 정식 ‘스마트농업팀’을 만들고 전문 지도직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리더(시장·군수)들이 결단을 내려야 일회성 사업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회장으로 취임한 후 ‘중소기업산학협력위원회’를 출범시킨 것도 농산업 발전의 일환으로 보인다.
“국내 사정은 내수 위축과 수출 감소라는 위기를 맞으며 진짜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산·학·관·연이 똘똘 뭉치고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기업들은 산학협력을, 대기업들은 중소·벤처기업들을 품고 ‘패키지 컨소시엄’으로 가야 한다. ‘중소기업산학협력위원회’를 출범시킨 이유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첨단기술이 꾸준하게 개발·보급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특히 스마트 농기계 등을 고칠 ‘디지털 농업 전문 정비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첨단기술이 탑재된 제품들의 확산 속도가 더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현장 맞춤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가.
“고교·대학에서 이 부분을 전공한 학생들이 현장에 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정비소 가서 힘들게 일해도 연봉 4000만 원을 받기 어렵다면 누가 오겠는가. 학생들이 취득한 자격증이 채용 우대 등으로 연계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다. 현장에선 인력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도로 만들어줘야 한다. 우선 ‘스마트농업정비사’ 자격증을 신설하고 취업을 우대해야 한다. 전국 150개 시·군의 농기계임대사업소에 이들을 정규직으로 뽑아준다면 수천 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생긴다. 그러면 고등학교 농기계과와 대학 학과가 자연스럽게 살아난다. 또 전국에 500개가 넘는 골프장이 있고 시설마다 농기계가 수십 대씩 있지만 전공자 채용 의무가 없다. 교육부와 협의해 골프장에 농기계 전공자 의무 채용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AI 농기계 사고 시 법적 책임이나 농촌의 디지털 양극화 우려도 나온다.
“이 부분은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농업인 자격 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농업인 자격을 주되 일정 규모 이상으로 규모화를 갖춘 농가들에게 지원금을 주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농촌 정주 여건을 위해 소농에게 편의장비를 지원하는 것은 맞지만, 첨단 AI 기술 지원금은 실제 농업을 업(業)으로 삼는 규모 있는 농민에게 집중하는 차별화가 필요하다.
법적 책임 소재의 경우, 자율주행 농기계에 조작 기록이 남는 ‘농기계용 블랙박스’ 탑재를 의무화하는 가이드라인 제정이 시급하다. 그래야 통신 오류인지, 기계 오작동인지, 사용자 과실인지를 명확히 가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술 검증 표준 매체’를 표방하며 첫발을 내딛는 ‘한국농업기술신문’에 당부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일상적인 뉴스만 전하는 매체는 이미 많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이름에 걸맞게 국내외 첨단기술의 깊이 있는 전문 정보를 다뤄주길 바란다. 특히 앞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핵심 화두가 될 ‘데이터 및 하드웨어 표준화(Standard)’와 기술 검증 이슈를 선도하는 전문성 있는 정론직필의 매체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