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 원 트랙터, 본전 뽑는 데만 최소 7년"…첨단 애그테크, 농민 선택 주저하게 만든다
[창간 특집 설문] 전문가 36인이 말하는 대한민국 애그테크의 민낯 국내 농업 AI·스마트팜 기술, 현장 체감도 낙제점…초기 구입비 장벽 가장 높아 실험실과 현장 간 성능 괴리와 한국형 소규모·비정형 필지도 걸림돌 데이터 확보와 표준화가 중요…공유형 정책 확산으로 현장 체감 높여야
정부가 농촌 인력 부족과 기후 위기 대응의 마스터키로 ‘농업 디지털 전환’과 ‘농업 AI(인공지능) 보급’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현장 전문가들이 체감하는 보급 실태와 기술 성숙도는 낙제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턱없이 높은 장비 가격, 잦은 센서 오류, 그리고 전무하다시피 한 소프트웨어 AS 체계가 농가 진입의 거대한 벽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농업기술신문은 창간을 맞아 한국농업기계학회 운영위원 등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설문에는 총 36명이 참여했고 AI 어시스턴트인 재미나이를 활용해 전문가들의 답변을 분석했다.
현장 보급률·AS 만족도 최하위
▲현저히 낮은 현장 보급 체감도, 그 이유는?=국내 농업 기계화 및 스마트농업 분야의 최고 권위자 집단인 한국농업기계학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냉정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피지컬AI와 스마트농업 기술 등의 실제 현장 보급 수준’을 묻는 질문에 평균 3.53점(1점 매우 낮은~10점 매우 높음)을 부여하는데 그쳤다. 응답자 36명 중 20명이 3점 이하(3점 9명, 2점 8명, 1점 3명)의 점수를 줬다. 현장 보급이 일정 수준을 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7점 이상을 책정한 응답자는 2명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보급이 더딘 결정적인 원인(최대 3개 선택)으로 ‘초기 구입비 부담(66.7%·24회)’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연구실과 현장 간의 성능 괴리(41.7%·15회)’, ‘한국 특유의 소규모·비정형 필지 환경(41.7%·15회)’이 공동 2위로 지목됐다. 장비 간 낮은 호환성(25%·9회)과 현장 밀착형 코칭 시스템 부재(25%·9회), 불안한 AS와 수리 편의성(22.2%·8회), 고령농의 조작 어려움(19.4%·7회) 등이 뒤를 이었다.
평당 농가 소득이 정체된 상황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첨단 장비를 구매하기엔 ROI(투자 대비 수익)가 나오지 않고, 쪼개진 농지 중심의 국내 영농 여건 때문에 최첨단 기술이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AI 등 애그테크 도입이 농가의 실질적인 순이익 증가로 이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선행 조건을 묻는 질문(최대 2개 선택)에 ‘경지면적 확대’(47.8%·22회)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기 가격의 획기적인 하향’도 26.1%(12회)를 차지했다.
하유신 경북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 못지않게 올라왔다. 하지만 현장의 수많은 변수 때문에 기술 개발과 실제 도입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농가들은 먼 미래의 최첨단 기술보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실용적 기술’을 원한다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데이터 오류나 소프트웨어 장애에 대한 사후관리(AS) 체계의 신속 대응성은 3.58점(10점 만점)에 불과했다. 불안한 사후관리는 농가들의 첨단 장비 구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AI 오작동 사례 중 가장 빈번하고 치명적인 유형으로는 ‘센서 인식 오류(61.1%)’가 압도적 1위였으며, ‘통신 두절 및 신호 간섭(38.9%)’이 뒤를 이었다.
정형화된 일반 도로와 달리 농경지는 비포장 노면의 진동, 흙먼지, 강한 햇빛 반사 등 변수가 가득하다. 이 때문에 쪼그려 앉아 일하는 농민이나 동물을 식별하는 ‘돌발 장애물 회피 알고리즘 신뢰도’는 5.94점, 생육 초기의 미세한 변화를 잡아내는 ‘병해충 판독 능력’은 5.64점으로 평가돼 아직은 실험실 수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설문에 응한 한 학회 전문가는 “현재 국내 AS 인프라는 트랙터나 이앙기 등 기계적 고장 수리에만 맞춰져 있다”라며 “소프트웨어 펌웨어 충돌, 클라우드 연동 장애, 학습 데이터 누락 등 디지털 장애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원인 파악조차 못 해 며칠씩 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BEP(손익분기점) 달성만 6.85년 전망
기기 구입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 시간이 짧다면 현장 보급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 하지만 국내 농업 여건상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보조금 혜택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작업 효율 증대만으로 기기 가격을 회수(BEP 달성)하는데 몇 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하냐’는 질문에 응답자(29명)들은 평균 6.85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10년 이상이라고 답변한 참여자들은 1억 5000만 원에서 3억 원에 육박하는 자율주행 트랙터, 무인 수확 로봇 등 첨단·대형 기기 구매를 전제로 제시했고 과반수의 전문가는 일반적인 스마트 전동기기나 자율주행 이앙기 등 복합 제어 시스템을 도입하면 약 5~7년 내외에서 손익분기점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구매 기기, 농지 면적 등 환경에 따른 변수가 적지 않아 일률적인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특정 작기나 계절에 활용이 집중되는 농업 특성, 높은 생산비와 낮은 소득 등의 국내 농업 환경 등을 감안하면 회수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특히 농가가 정부 보조금 없이 작업 효율 증대만을 기대하고 6.85년을 투자하기엔 투자 위험도가 매우 높은 기간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고 이는 AI·스마트농업 확산의 걸림돌로 이어질 수 있다.
조용진 전북대 교수는 “농업인은 일정 수준의 가격 프리미엄을 수용할 수 있으나, 현행 장비 가격의 1.5배를 초과하면 구매 의향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보급 확대를 위해 단순 가격 지원보다 작업 효율성, 사용 편의성, 유지보수 신뢰성 향상에 중점을 두고 안정적인 운영·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농지에 첨단 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디지털 환경 조성이 미진한 점도 아쉽다. 김용주 충남대 교수는 “국내 농지는 인간 중심적으로 설계된 곳이 대부분”이라며 “로봇이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과수원에서 로봇 작업 환경을 구축하면 단위면적당 생산량을 줄어들 수 있지만 품질은 향상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들이 참여하려면 성공 사례를 보여줘야 한다. 또 참여 농가들에게 또 다른 베네핏이 제공돼야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법은 무엇인가
농업·AI 결합 핵심 과제는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시설·장비 표준화
농업과 AI 같은 애그테크의 결합을 성공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과제로 전문가들은 양질의 데이터 확보와 표준화를 가장 핵심 과제로 꼽았다. 실제 이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41.7%(15명)가 ‘현장 기반 양질의 데이터 확보 및 시설·장비 표준화’를 선택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뛰어난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모델이라도 입력되는 현장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편향돼 있으면 잘못된 예측과 오진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력히 경고했다.
특히 토양관리부터 파종, 재배, 방제, 수확, 유통에 이르는 ‘농업 전주기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해야만 기후와 지형 변동성이 큰 노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유신 경북대 교수는 “농업 AI의 핵심 과제 중 가장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양질의 데이터”라며 “데이터 없이는 AI 개발도, 보급도, 검증도, 정부 정책도 모두 불가능하다”라고 데이터 인프라의 중요성을 못 박았다.
김용주 충남대 교수는 ”농업 전주기 데이터를 알아야 어떻게 할지 결정할 수 있지만 주기별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으면서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하며 체계적인 데이터 확보를 강조했고 또 다른 전문가 역시 기초 데이터 수집과 분석을 활성화하기 위해 목표 데이터가 되는 ‘GPS 기반 수확량 모니터링 시스템’의 조속한 보급이 시급하다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시설·장비의 표준화도 시급하다. 양명균 전북대 교수는 “국가 표준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독자적 기술을 고수하면서 호환성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 주도로 기술 표준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유신 경북대 교수도 “표준화가 되지 않으면 기업은 모듈 개발 등이 쉽지 않다”며 표준화 필요성을 언급했다.
두 번째 과제는 ‘정부 거버넌스 혁신 및 산·학·연 협력 체계 구축(27.8%, 10명)’이다. 전문가들은 농업과 애그테크를 함께 연계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요구했다. 정선우 전남대 교수는 “농작물 생리 등을 잘 모르는 데이터 전문가들 중심으로 진행하면 정확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분야별 전문가들의 융합을 통한 협력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농기계임대사업소 중심 ‘공유형’ 보급 전환…정부 지원 확대도 절실
전문가들은 농업 AI가 농가의 실질적인 순이익 증가로 이어지기 위한 선행 조건으로 ‘경작 면적 확대(47.8%)’와 ‘기기 가격의 획기적인 하향(26.1%)’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한국 농가 평균 경지면적(1ha 내외)과 낮은 장비 가동률로는 보조금 없이 장비값을 회수하는 데 최소 10년에서 15년 이상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하다는 냉정한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농민 개개인에게 비싼 기계를 사라고 강요하는 현행 방식 대신, 농기계 임대사업소나 지역 들녘경영체 중심의 ‘공유형(임대형) 보급 방식’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급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초기 붐 조성을 위한 하드웨어 구매 지원에서 장기적인 ‘서비스(구독형 소프트웨어) 이용료 지원’으로 다변화해야 실효성이 높다는 제언도 힘을 얻고 있다.
정선우 전남대 교수는 “원활한 관리와 유지보수 측면을 생각하면 농기계임대사업소 등을 통한 공유형 보급 방식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농가 규모와 디지털 환경 조성 상황 등에 따라 투트랙 방식으로 운용하자고 제안도 나왔다. 조용진 전북대 교수는 “대농 중심의 개별 보급과 중소농 중심의 농기계 임대 보급을 병행하고 장비 운용과 안전·유지보수·데이터 관리는 통합 플랫폼 기반으로 일원화해 관리·감독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유신 교수는 “앞으로의 보급 전략은 철저히 이원화해야 한다. 수도작처럼 현장 수용성이 높은 품목은 맞춤형 지원 체계를 통해 신속하게 확산시키고, 현장 적용이 까다로운 품목은 실증 중심의 연구를 통해 공백을 메워나가야 합니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예산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명균 전북대 교수는 “개발한 기술과 현장 보급 사이의 갭은 매우 크다. 단기적 성과 또는 당장 필요한 연구와 함께 미래지향적이고 독창적인 연구에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농업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지원과 투자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농가 구매 부담을 줄이고 보급률을 높이려면 당분간 보조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책 당국자의 전문성 향상과 산학연 협력 생태계 구축 필요
정책을 만드는 관료들의 전문성 결여에 대한 쓴소리도 터져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응답자는 “농업 AI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 정확히 AI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실질적인 현장 업무와 기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농기계 산업체의 안일한 태도와 영세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모 대학 교수는 “국내 주요 농기계 업체 중에서도 새로운 기술 개발에 관심이 없거나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라며 “인공지능의 껍데기만 이용하는 수준을 넘어 깊은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선 산업체 단독이 아닌 대학이나 전문 연구소와의 깊은 협력 연구 생태계가 필수적”이라고 제언했다. 아울러 법과 제도, R&D를 통합 관리할 범정부 차원의 AI위원회 설립 필요성도 강력히 제기됐다.
이외에도 AI 오작동으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제조사, 개발사, 농가 간의 책임 소재를 가릴 ‘법적 가이드라인 제정 시급성’은 8.06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자율주행 농기계의 경로 이탈이나 드론 오작동 시 책임 기준이 없으면 보험 상품 설계가 불가능하고, 이는 결국 농가의 도입 의지를 꺾고 제조사의 출시 유인을 저해하는 부메랑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