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마트팜] 1767년 치 빅데이터 품은 스마트팜…엔씽 김혜연 대표 “글로벌 농업 표준 세운다”
선도유지 기술과 물류비 절감, 안정적 공급처 발굴로 수익성 증명 자체 빅데이터 플랫폼 ‘N.FARM.AI’ 앞세워 중동·북미 시장 정조준
기후변화와 농촌 인구 감소, 그리고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는 삼중고 속에서 국내 대표 애그테크(Agtech) 기업 '엔씽(n.thing)'이 기술력과 비즈니스 체질 개선을 바탕으로 주목 받고 있다. 엔씽은 지난 2025년 12월, 월간 영업이익 기준 흑자전환(Turnaround)에 성공하며 스마트팜 업계의 과제인 '수익성 증명'을 마쳤다. 고교 시절 프로그래밍에 빠졌던 IT 청년에서 이제는 글로벌 농업 표준 수립을 추진 중인 김혜연 대표를 만나, 엔씽의 혁신적 성장 스토리와 농업의 AI 전환(AX)이 가져올 신유통 생태계의 청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고교 시절 경험, '농업 OS' 구상 계기
경기도 이천 출신의 김혜연 대표는 초등학교 3학년 때 현대전자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처음 컴퓨터를 배우며 웹(Web)에 눈을 떴다.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고교 시절 동네 상점들의 홈페이지를 제작하며 사업가 기질을 나타냈다.
김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명동에서 열린 청소년 벤처인연합회 발대식에 참석했으며, 그곳에서 또래 학생들이 건넨 'CEO' 명함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마음 한구석에 창업에 대한 꿈을 품었다. 한양대학교 전자통신공학과에 입학한 김 대표는 2007년 SK텔레콤 단기 인턴십을 통해 IoT(사물인터넷) 트렌드와 기후변화에 따른 글로벌 산업 변화를 예측하는 분석 역량을 키웠다.
대학 복학 후, 경기도 포천에서 온실(비닐하우스) 시공 사업을 하던 삼촌의 권유로 현장을 밟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에 토마토 온실을 세우고 조인트 벤처를 이끌어가는 중, 재배 전문가의 부재로 두 번째 작기를 완전히 망치게 됐다. 이러한 경험은 김 대표의 비즈니스 접근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됐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제하는 운영체제(OS)가 있듯, 농업에도 누구나 쉽게 작물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표준화된 환경 제어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농촌이라는 공간 제약을 넘어 규격화된 기술로 농업을 혁신하겠다는 결심이 엔씽의 시작이었다"라고 김 대표는 당시의 경험과 생각을 회고했다.
이후 김 대표는 2013년 구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확보한 시드 자금 2,000만 원을 기반으로, 2014년 1월 스마트팜 기술 기업 '엔씽'을 설립했다.
작년 12월 월간 영업이익 흑자전환… 체질개선 비결, 물류비 절감· R&D 내실화
엔씽의 턴어라운드는 연구개발(R&D) 고도화와 고정 수요처 발굴의 긴밀한 상호작용 끝에 탄생한 결실이다.
김 대표는 "그동안 시설 설비 투자와 하드웨어 R&D 지출이 커 적자가 지속됐으나, 선도유지 기술, 물류비 절감, 안정적인 공급처 발굴 등을 거쳐 생산 효율이 극대화되면서 수익성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엔씽은 경기도 이천의 이마트 신선식품 물류센터 주차장 바로 옆에 재배 시설을 짓는 '인근 농장(Near-Farm)' 방식을 도입했으며, 이를 통해 이마트에 바로 근거리에 납품해 기존 70%에 가깝던 물류·유통 비용을 현재 2~3% 수준으로 극적으로 낮췄다.
또한, 컨테이너에 들어가는 핵심 자재 중 하나인 LED 조명 단가를 물류비를 포함해 개당 10만 원 선에서 중국 현지화를 거쳐 3.5달러(약 5,000원 이하) 선으로 95% 이상 낮추며 CAPEX(자본지출)와 OPEX(운영비용)를 대폭 줄였다.
그리고 R&D 내재화를 통해 외부 오염 물질이 완벽히 차단된 규격화된 컨테이너 환경 덕분에 농장 내부에는 대장균 등 500여 종의 유해 균류를 완전히 배제(대장균 수 0)할 수 있었다. 덕분에 여름과 겨울철 채소가 쉽게 무르거나 얼던 현상을 방지해 폐기율은 5% 미만이며, 수확 후 보관 기간을 최대 한 달까지 늘렸다.
엔씽의 기술 인프라: FARM OS, CUBE, GIGA Farm
엔씽의 기술 체계는 소프트웨어인 'FARM OS', 분산형 모듈 컨테이너인 'CUBE', 그리고 이들을 대형화한 물류 통합형 시설인 'GIGA Farm(기가팜)'으로 분류된다.
특히 차세대 핵심 동력으로 부각되는 기가팜은 단일 사이트 기준 4000평 규모로 연간 1000톤 이상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대규모 물류센터형 수직농장이다. 재배뿐만 아니라 가공, 전처리, 물류 유통을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메가 인프라 모델이다.
엔씽에 따르면 일반 노지에서 연간 1~3회 재배가 가능하다면, 기가팜에서는 연간 13~17회 재배가 가능하다. 이러한 재배환경을 바탕으로 동일 면적(1동 기준) 노지대비 연간 60~70배까지 생산량을 끌어올릴 수 있다. 엔씽은 이 독자적인 수직농장 설계 모델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에서 최고혁신상(Best of Innovation)을 수상했으며, 기술신용평가(TCB)에서도 TI-2 등급(매우 우수)을 연이어 획득했다. 특히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환경성적표지(EPD) 인증을 수직농장 업계 최초로 획득해 대기업 파트너들의 까다로운 ESG 조달 기준을 통과했다.
1767년 치 빅데이터 플랫폼 'N.FARM.AI'가 이끄는 유통 AX
엔씽이 구축한 또 다른 차별점은 농업 데이터의 정교한 축적에 있다. 농업 빅데이터 플랫폼인 'N.FARM.AI'는 노지 재배 기준으로 무려 1767년 치에 달하는 방대한 누적 데이터를 품고 있다.
김 대표는 "수직농장은 1년에 최대 17번까지 재배가 가능하며, 서로 다른 조도, 영양액, 온습도로 최적화된 28통의 각기 다른 제어 설정값이 전국의 엔씽 20~30여 개 농장 네트워크를 통해 매일 실시간으로 쌓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통제되지 않는 자연 상태의 노지 데이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데이터의 밀도가 높다"고 덧붙였다.
엔씽은 이 통제된 재배 데이터에 10년 치 전국 기상 정보와 전국 33개 도매시장의 시세 데이터를 연동해 AI가 최적의 출하 타이밍을 제안하도록 설계했다.
과거에는 수직농장 채소가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존재했으나, 기후 변수를 원천 차단하고 식감과 당도, 크기까지 미세 조정하는 기술을 완성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확보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생산 역량(Capa)의 안정적 확대뿐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현재 유러피언 레터스(유럽식 샐러드 채소) 시장의 성장을 미리 예측해 이마트 납품 비율을 높인 엔씽은 삼성웰스토리, 오뚜기 등 급식 및 대형 식품 기업들과 고정 거래선을 다양하게 확장했다. 고정 수요를 예측하고 공장 가동률을 100% 가깝게 끌어올리면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북미·중동을 넘어 '세상을 먹여 살리는 기업'으로
중동 아랍에미리트에 컨테이너형 큐브 팜을 대거 안착시킨 엔씽은 최근 인도네시아 ODA(공적개발원조) 프로젝트까지 영역을 넓혔으며, 궁극적으로 북미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농업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전체 인구의 1% 미만)하고 있어 대형 빌딩형 수직농장 중심의 스마트농업 기업화가 빠르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에 엔씽은 기후와 지형적 장벽을 완벽하게 넘나드는 통합 솔루션으로 차세대 인프라 모델로서 점차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
최근에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과 손을 잡고, 고부가가치 작물의 근간인 '딸기 우량묘 대량 생산 기술'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엔씽의 스마트팜 재배 및 온습도 제어는 100% 자동으로 이뤄지지만, 수확과 포장은 현장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이 부분은 늦어도 2~3년 안에 로봇 자동화 시스템을 전면 적용해 무인 농장 시대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향후 목표에 대한 질문에 김 대표는 “단기적 목표는 국내 생산 캐파 확장 및 북미 시장 안착이며,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국에서는 해외 작물을, 해외 시장에서는 한국 K-푸드(딸기 등)를 사계절 내내 공급하며 세상을 먹여 살리는 글로벌 농업 유통 인프라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