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명균 칼럼] 농업 AI는 정답보다 관점을 바꾸는 기술이어야 한다.
[전문가 칼럼] 전북대학교 생물산업기계공학과 양명균 교수
버튼 하나의 결과와 농업 AI의 가치
AI는 어느새 가까운 기술이 되었다. 문장을 만들고, 이미지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분류하는 일도 이전보다 훨씬 쉬워졌다. 버튼 하나를 누르면 그럴듯한 결과가 나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분명 긍정적이다. AI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업 AI의 가치는 버튼 하나로 빠른 결과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농업은 작물, 품종, 환경, 계절, 농가 조건, 작업 방식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장이다. 같은 작물이라도 재배 시기와 환경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같은 기술도 농가와 시설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따라서 농업 AI는 단순히 답을 생성하는 도구가 아니라, 농업을 더 깊게 읽고 검증 가능한 가치로 연결하는 기술이어야 한다.
정답을 내는 AI보다 질문을 바꾸는 AI
지금까지 농업에서 중요한 질문은 대체로 사람이 정해 왔다. 작물이 잘 자라고 있는가, 병해충이 발생했는가, 수확 시기는 언제인가, 환경 조건은 적절한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이러한 질문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AI 시대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사람이 이미 알고 있는 질문에 더 빠르게 답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미처 묻지 않았던 질문을 발견하는 것이 농업 AI의 중요한 역할이 될 수 있다. 농업 AI의 가능성은 정답을 더 빨리 찾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바라보는 질문과 관점 자체를 바꾸는 데 있다.
사람이 보지 못한 신호를 읽는 기술
AI가 기존의 관점에 새로운 질문을 던진 사례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나타났다. 알파고가 보여준 낯선 수는 바둑에서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온 감각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알파폴드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라는 오래된 과학 문제에서 기존 접근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사례들이 농업 AI의 성공을 그대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AI가 단순히 사람의 판단을 빠르게 흉내 내는 데 머물지 않고, 사람이 미처 보지 못한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농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물의 키, 엽면적, 병징, 재배 레시피처럼 사람이 정의한 특징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러나 영상, 분광, 3차원, 열화상, 환경 데이터가 반복적으로 쌓이면 같은 데이터 안에서도 AI는 사람이 미처 정의하지 못한 생육 변화, 스트레스 징후, 품종별 반응 차이, 환경과 생육의 복합 관계를 새로운 특징으로 제시할 수 있다. 농업 AI의 중요한 가치는 사람이 보던 특징을 더 빠르게 계산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작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여는 데 있다.
농업 AI를 늦추는 두 가지 관성
이러한 관점에서 농업 AI를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할 두 가지 관성이 있다. 첫째는 현장의 어려움을 이유로 새로운 질문을 닫아버리는 경향이다. 물론 농업 현장은 복잡하다. 작물은 균일하지 않고, 환경은 반복되지 않으며, 농가의 조건과 판단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현장을 모른 채 AI가 모든 답인 것처럼 말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반대로, 현장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유만으로 AI를 적용하려는 시도나 AI가 던지는 새로운 관점까지 밀어내서는 안 된다. 현장을 깊이 아는 일은 미래의 질문을 닫는 근거가 아니라, 더 좋은 AI를 만들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현장은 새로운 기술을 거부하는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더 깊어져야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새 기술의 이름을 따라가느라 기반을 충분히 쌓지 못하는 경향이다. 국가 연구 개발에서도 ‘새로운 기술’은 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러나 농업 AI에서 새로움은 단순히 다음 키워드로 넘어가거나 급하게 방향을 바꾸는 일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전 기술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고, 데이터와 표준, 실증 체계가 약한 상태라면 그 위에 다음 기술을 올려도 현장의 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AI 기술이 빠르게 바뀌면서 과거에 개발했다고 생각했던 기술도 새로운 AI 환경에 맞게 다시 정의하고, 다시 검증하고, 다시 연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농업 AI는 한 번 개발하고 다음 기술로 넘어가는 계단식 기술이 아니라, 실패까지 포함한 축적된 기반 위에서 계속 되돌아보고 갱신해야 하는 기술이다.
결국 농업 AI를 늦추는 것은 새 기술에 대한 과도한 기대 만도 아니고, 새 기술에 대한 지나친 경계 만도 아니다. 문제는 열린 관점 없이 현장만 말하거나, 기반 축적 없이 새로움만 말하는 데 있다. 현장은 기술이 검증되어야 할 장소이고, 새 기술은 기반을 건너뛰는 명분이 아니라 기반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기반 연구가 농업 AI의 미래를 만든다
그렇다면 농업 AI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는 AI가 제시하는 낯선 신호를 새로운 질문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그 질문을 현장의 가치로 바꾸기 위한 보이지 않는 기반 연구다. 데이터 수집 방법, 센서 해석 기준, 표현형 정의, 작물과 환경의 관계 모델링, 장기 실증 체계는 당장 어디에 쓰일지 명확하지 않고, 화려한 성과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반이 없으면 새로운 AI 기술은 현장에 들어가는 순간 흔들린다. 당장 쓰임이 선명하지 않은 연구가 모두 먼 연구는 아니다. 오히려 농업 AI에서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이 훗날 현장 적용의 성패를 가르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농업 AI가 버튼 하나로 결과를 만드는 도구를 넘어, 사람이 보지 못한 특징을 발견하고 검증된 가치로 이어지는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반을 더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앞으로 농업 AI, 스마트농업, 피지컬 AI, 애그테크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이름을 빠르게 쫓아가는 일이 아니다. 그 기술이 농업을 어떻게 새롭게 읽게 하는지, 어떤 데이터를 남기는지, 어떤 검증을 거쳐 현장의 가치로 돌아오는지를 묻는 일이다.
농업 AI의 미래는 더 빠른 정답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질문이 데이터와 검증을 거쳐 현장의 가치로 이어질 때, AI는 비로소 유행어가 아니라 한국 농업의 다음 기반 기술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