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우 칼럼] 잘 자르는 로봇과 잘 키우는 로봇
[정선우 칼럼]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한 원예생명공학과 교수
과수원에 로봇이 들어선다. 카메라가 나무를 훑어 가지의 위치와 굵기를 읽어내고, 로봇 팔이 뻗어 나가 정해진 힘으로 가지를 자른다. 절단면은 매끄럽다. 사람이 며칠에 걸쳐 하던 전정 작업을 기계가 대신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 이런 기술을 오래 기다려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평생 과수를 다뤄 온 농업인들과 함께 보면, 대개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런데 저 가지를 왜 잘랐지?”
전정의 본질적인 질문은 '어떻게 자를 것인가'가 아니라 '어느 가지를 남길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남길 가지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나무에 저장된 양분이 어디로 갈지, 햇빛이 안쪽까지 들어올지, 열매가 몇 개나 달리고 얼마나 굵어질지가 달라진다. 나아가 이듬해 꽃눈이 얼마나 맺힐지, 한 해 걸러 수확량이 들쭉날쭉해지는 해거리가 일어날지까지 이어진다. 전정은 절단 작업이 아니라 한 해를 넘어가는 생리적 판단이다.
지금 농업 인공지능 연구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이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인식하고 움직이는 기술은 빠르게 정교해지고 있지만, 그 작업이 작물에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뒤에 놓여 있다.
돌아보면 지난 15년 동안 농업기술 담론의 주어는 계속 바뀌어 왔다. 인공광 아래에서 계절과 상관없이 작물을 기르는 식물공장이 미래 농업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곧이어 스마트팜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원격 제어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거쳐 무인 자동화로 단계가 올라갔으며, 지금은 피지컬 AI가 새로운 주어가 되고 있다. 기술이 앞장서서 관심과 투자를 끌어온 것은 분명한 성과다. 다만 그 사이 작물 생리 연구는 조연의 자리에 머물렀다.
그 시절의 기록을 하나 떠올려 본다. 2000년대 후반 국내 원예학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식물공장의 기술 수준을 조사한 자료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100으로 놓았을 때 이송장치와 기계설비는 72, 파종·육묘 시스템은 66 정도였고, 공장설비와 환경제어 관련 항목들도 대체로 50에서 60 사이에 분포했다. 그런데 식물공장 전용 과채류 품종을 육성하는 분야는 20에 머물렀다.
식물공장이 기대만큼 퍼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초기 투자비와 전기료 부담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만 기술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하다.
비슷한 구조는 지금도 여러 곳에서 반복된다. 수확 로봇은 색과 크기로 성숙도를 판정하지만, 과실의 당도는 색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이 여러 연구의 지적이다. 겉만 보고 수확하면 당도가 미처 오르지 않은 과실이 함께 딸려 나온다. 관수·양액 제어 인공지능은 센서 값에 반응하지만, 같은 수분 조건도 생육 단계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물 부족에 가장 민감한 시기는 대개 개화기와 착과기에 몰려 있고, 단계마다 지켜야 할 기준선이 서로 다르다. 영상 기반 병해 진단은 눈에 보이는 병징을 읽는다. 그러나 감자 역병균은 감염된 뒤 며칠의 잠복기를 지나서야 증상을 드러내는 반면, 같은 밭의 겹둥근무늬병균은 조건이 맞으면 거의 곧바로 증상이 나타난다. 화면에 병징이 떠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병원균마다 다른 것이다.
기술이 꾸준히 개발되는데도 현장 보급이 더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연구 현장은 인식 정확도와 작업 성공률, 작업 시간으로 성능을 말한다. 농업인은 수량과 품질, 그리고 내년 농사의 안정성으로 판단한다. 두 언어가 서로 다르다. 농업인이 바라는 것은 잘 자르는 로봇이 아니라 내년 농사를 어긋나게 하지 않는 로봇이다. 신뢰는 시연 영상이 아니라 한 시즌이 지난 뒤의 결과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완하면 좋을까.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먼저 데이터가 결과에까지 닿았으면 한다. 지금의 학습 데이터는 대체로 작업이 끝난 직후에서 멈춘다. 그러나 농작업의 결과는 늘 시차를 두고 돌아온다. 엽채류라면 며칠 뒤의 생육으로, 과채류나 식량작물이라면 그 작기의 수량과 상품률로, 과수라면 이듬해의 꽃눈과 수확량으로 나타난다. 인공지능이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학습하려면 이 시차의 끝까지 이어진 기록이 있어야 한다. 작물마다 답이 돌아오는 시간이 다른 만큼, 데이터를 모으는 기간과 연구의 호흡도 그 시간에 맞춰질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함께 쓰면 좋겠다. 우리에게는 오랜 기간 축적해 온 작물생육모델과 재배생리 연구가 있다. 데이터가 넉넉하지 않은 농업 분야일수록 데이터만으로 배우게 하기보다 기존 지식을 함께 넣어주는 편이 유리하다. 생리 연구는 인공지능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 학습을 도와줄 자산이다.
끝으로 성공의 기준을 함께 세웠으면 한다. 인식 정확도 옆에 수량과 품질, 이듬해 생산의 안정성 같은 지표가 나란히 놓일 때 연구와 현장의 언어가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런 기준은 결과를 검증하는 단계가 아니라 무엇을 풀 것인지 정하는 첫 단계에서 만들어진다. 공학 연구자와 원예·작물생리 연구자가 그 자리에 함께 앉는 일이 어쩌면 가장 실질적인 출발점일지 모른다.
사실 이 요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스마트팜 기술의 발전 단계를 나눌 때 그 두 번째 단계는 정의 단계에서부터 인공지능이 생육을 진단하고 농업인의 의사결정을 돕는 수준이었다. 청사진에는 이미 작물이 들어 있었다. 다만 실제 구현의 무게중심이 환경 제어 쪽에 머물렀을 뿐이다.
피지컬 AI가 농업에 자리 잡으려면 정교한 손만으로는 부족하다. 식물이 지금 무엇을 겪고 있는지 읽어내는 눈이 함께 필요하다. 작물 생리는 인공지능 시대에 뒤처진 분야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실제 논밭과 과수원으로 데려가는 통로다.
기술이 앞선 일부 농가에만 머물지 않고 모든 농업인의 논밭에 가 닿는 '모두의 농업'도 여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15년 전의 교훈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일이 없도록, 기술과 생리 연구가 어깨를 나란히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