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농(農)담'] 미국 딸기 농가가 로봇 개발에 직접 투자한 이유
자본 논리에 갇힌 농업 자동화
[글로벌 '농(農)담' : 미래 농업을 담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 최다은 교수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딸기 농가와 유통기업들이 수확 로봇 개발에 직접 돈을 투자했다. 딸기 재배·유통기업 Wish Farms의 Gary Wishnatzki는 수확 인력 부족이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엔지니어 Bob Pitzer와 함께 2012년 Harvest CROO Robotics를 설립했다. 초기 개발 자금으로 조달한 100만 달러에는 딸기 업계의 일곱 투자자가 참여했다.[출처: 1, 숫자 클릭 시 링크 연결]
완성된 농기계를 구매한 것이 아니라 성공 여부도 불확실한 로봇의 개발 위험을 농가가 직접 부담한 것이다. 농기계 기업이 개발하면 농가가 구입하면 될 일을, 왜 딸기 농가가 투자자로 나섰을까. 그 이유는 농업 로봇의 상용화가 노동력 부족의 심각성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틈새시장, 농가에는 생존의 문제
딸기 농가가 직접 로봇 개발에 나선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농업 로봇 기업의 투자가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은 노동력 부족이 가장 심각한 작물보다 하나의 기술을 넓은 면적과 많은 농가에 반복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작물을 우선한다. 딸기 수확 로봇은 농가에는 생산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지만, 기업에는 개발비와 위험에 비해 예상 판매량이 적은 틈새제품이다. 이 간극이 농가를 기술의 수요자에서 개발 참여자이자 투자자로 바꾸었다.
기업이 먼저 움직이는 시장의 조건
미국 농업에서 자율주행과 인공지능 기반 정밀작업 기술이 가장 넓게 상용화된 대표 분야는 옥수수와 대두 같은 대규모 밭작물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3640만 헥타르(ha)에 옥수수가 재배되고 있으며, 2024년 대두 재배면적도 약 3520만 헥타르에 달했다. 하나의 자동화 기술을 수천 만 헥타르의 농경지에 적용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 이미 형성돼 있는 것이다.[출처: 2 · 3]
밭작물은 농장이 넓고 개방돼 있으며 작물이 일정한 간격과 방향으로 재배된다. 농가마다 사용하는 농기계와 작업 방식도 비교적 유사하다. 옥수수와 대두는 성숙한 작물을 한꺼번에 수확하기 때문에 개별 작물의 숙도를 판단하거나 상처를 내지 않도록 하나씩 골라 딸 필요도 없다. 기존 트랙터와 살포기, 콤바인에 위성항법장치와 카메라 및 인공지능 기능을 추가할 수 있어 농장마다 새로운 로봇을 설계할 필요가 적다.
John Deere의 See & Spray가 빠르게 확산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이 시스템은 기존 살포기에 장착된 카메라와 인공지능으로 작물과 잡초를 구분해 필요한 곳에만 제초제를 살포한다. John Deere에 따르면 2025년 202만 헥타르 이상에서 사용됐으며 기존 전면 살포와 비교해 제초제 사용량을 평균 약 50% 줄였다.[출처: 4 · 5]
같은 기술을 옥수수·대두·면화 등 여러 작물과 넓은 면적에 적용할 수 있고, 절감된 제초제 비용을 바로 계산할 수 있어 투자 효과도 명확하다.
고가의 장비라도 매년 넓은 면적에서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헥타르당 비용이 낮아진다. 제조사도 연구개발비와 생산설비 및 정비망 구축비를 더 많은 장비에 나누어 반영하고, 기존 판매망과 정비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시장이 크고 제품을 표준화할 수 있으며 사후 지원체계도 이미 갖춰져 있으므로 기업이 먼저 투자할 이유가 충분하다.
과수·채소류에서는 반복적인 작업부터 상용화
과수·채소 농업은 밭작물과 같은 규모와 표준화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 그러나 이미 시장에 진입한 로봇들을 살펴보면, 작물 전체를 다루기보다 범위가 명확하고 반복적인 작업부터 자동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Carbon Robotics의 LaserWeeder는 채소밭에서 카메라로 잡초를 찾아 레이저로 제거하며, 회사는 2022년 출시 이후 북미와 유럽 및 호주에서 100곳 이상의 농가가 이 장비를 보유·운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출처: 6]
과수원용 자율주행 방제기 GUSS도 과실을 수확하는 대신 정해진 열을 따라 이동하며 약제를 살포하는 작업부터 자동화했다. 2019년 고객 공급을 시작한 GUSS는 2025년 John Deere에 인수됐다.[출처: 7]
수확 로봇을 가로막는 기술과 시장의 장벽
그러나 로봇이 과실을 직접 수확하는 순간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잎과 줄기 사이에서 익은 과실만 찾아 상품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분리하고 이송해야 한다. 놓친 과실은 사람이 다시 수확해야 하고, 손상된 과실은 상품 가치를 잃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짧은 시간 안에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상용화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작고 분절된 시장이다. 딸기 수확 로봇은 사과나 토마토에 그대로 사용할 수 없으며, 같은 딸기라도 지역과 농장에 따라 품종과 재배 방식이 달라 설계와 설정을 조정해야 한다. 특정 수확기에만 사용돼 연간 가동시간이 짧고 생산지역이 흩어져 있어 현장 지원도 어렵다. 결국 대형 농기계 기업에는 개발비에 비해 예상 판매량이 적고 별도의 정비체계까지 필요한 고위험 시장이다. 농가의 필요는 절박하지만 기업이 먼저 대규모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이유다.
농가의 참여로 달라진 로봇 개발
Harvest CROO에서 농가의 역할은 초기 자금 제공에 그치지 않았다. 농가의 참여는 로봇의 설계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존 두둑과 재배 방식을 크게 바꾸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Harvest CROO의 수확기는 16개의 수확 로봇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카메라와 인공지능으로 딸기의 숙도와 상태를 판단하도록 설계돼 있다.[출처: 8] 회사는 2025년 플로리다 상업농장 시험에서 사람의 수확 작업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의 성능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출처: 9] 다만 이는 기업이 발표한 결과이므로, 다양한 농장과 품종 및 여러 수확기에 걸쳐 같은 성능이 반복되는지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농가의 투자가 남긴 질문
미국 딸기 농가의 직접 투자는 시장 규모가 작아 생긴 ‘자동화의 공백’을 현장의 절박함으로 메우려 한 이례적인 시도다.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대규모 밭작물 중심으로 흘러가던 농업 자동화의 흐름 속에서 과수·채소용 로봇의 상용화 가능성을 직접 시험하고 있다.
Harvest CROO의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도 농가가 초기 자본 리스크를 직접 짊어지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개입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대형 농기계 기업들이 과수·채소류(원예작물) 시장에 뛰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제품 개발을 넘어 양산과 지속적인 정비체계 구축, 농가가 감당할 수 있는 로봇 가격 형성이라는 시장의 벽은 여전히 높다. 수익성이라는 거대 자본의 논리에만 맡겨둔다면, 현장의 절박함으로 탄생한 이 기술조차 결국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이 과감한 투자가 단발성 실험에 그치지 않고 결실을 맺으려면, 현장에서 확인된 수요가 대형 농기계 기업의 생산·정비망, 대학과 정부의 공공 R&D 지원 등 더 큰 산업 생태계의 적극적인 개입과 연결돼야 한다.
플로리다 딸기밭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노동력 절벽에 직면한 전 세계 원예작물 농업이 기술을 어떻게 확보하고 시장화해야 하는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준다. 로봇을 기다리던 농가가 직접 개발자로 나선 지금, 이 기술을 지속 가능한 산업으로 완성하는 몫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참고 자료 / 출처]
1) https://wishfarms.com/newsroom-item/harvest-croo-robotics-develops-strawberry-picker-latest-solution-agricultural-robotics/
2) https://www.ers.usda.gov/topics/crops/corn-and-other-feed-grains/feed-grains-sector-at-a-glance?
3) https://www.ers.usda.gov/topics/crops/soybeans-and-oil-crops/oil-crops-sector-at-a-glance?
4) John Deere Investor Day, NYSE 8 December 2025, Transcript
5) https://investor.deere.com/home/default.aspx
6) https://carbonrobotics.com/laserweeder
7) https://www.deere.com/en-us/john-deere-news/john-deere-acquires-guss-automation
8) https://www.harvestcroorobotics.com/technology
9) https://www.harvestcroorobotics.com/press/harvest-croo-demonstrates-commercially-viable-automated-robotic-strawberry-harvesting